[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29) 하도-종달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한 질은 올레로 이어지고, 올레는 또 다른 생명선이 되어 세계의 올레로 어나간다. 올레에서 만난 우리 고운 인연들, 제주올레는 이처럼 영혼의 삶과 자연의 정령을 이어주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길 무욕의 올레요, 영혼의 올레이다.

필자의 경우, 올레 순례는 차를 음미하는 것과 같아, 둘 보다는 혼자가 최적이었다. 셋보다는 둘이 좋았고, 넷보다는 셋이 좋았다. 하지만 올레 걷기 여행은 되도록 많은 분과 함께 걷는 게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

사람만큼 감정의 변화 많은 무리가 어디 있을까. 하니 내 마음의 올레에서 무엇을 느낄까 하는 선입견보다는, 년·월·일·시와 그날 그 시간의 날씨와 온도 변화에 따라 시각적·정신적 느낌이 다르므로, 마냥 편안하게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관조(위파사나)하면 된다. 구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새는 배낭이 없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즉 걷기 명상하시길 권하여 본다.

독자들은 묻는다. 걸어보니 어느 올레 코스가 가장 좋았는가를, 답한다. 계절·날짜·시간별로 순례를 다 해 봐야만 답할 수 있겠다고, 이는 그만큼 제주올레가 간직한 무언의 말씀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샛바람이었다가, 갈바람이었다가, 마파람이었다가, 때로는 하늬바람이 되어, 높새바람으로 오름마다 봉화 올리는, 대문 없이 올레 하나로 살아가는 꾸밈없는 혼올레 삼춘들, 일순 그림자의 달빛으로도 하늘의 별이 되어 빛나는 올레 마을, 그 올레에 너와 내가 있었다.

섬에서 다시 섬을 이으며, 숱한 밟힘의 고난에도 길섶 제완지(바랭이)처럼 돌팟에 뿌리 내려, 온 섬을 지켜온 칭원한 사람들, 그 설운 이들의 삶의 흔적을 따라, 지난 2022년 1월 6일부터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의 공동 기획으로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가 격주로 게재된 이후, 오늘 순례를 마지막 회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나의 올레 순례는 종애가 움직일 수 있는 한, 매주 1회 계속 이어질 것이다. 더 자세히 살피고 느껴서 기회가 되면 게재되었던 자료를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편집하려 한다.

그동안 애독하며 좋은 질정을 주신 독자 여러분과, 게재 코너를 마련하여 주신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 무엇보다 제주올레를 열어 주신 서명숙 선생과 제주올레를 지키고 순례하는 많은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스물아홉 번째로 연재하는 제주올레 21코스는 2012년 11월 24일 개장되었다. 세화리·연디동산·하도리·면수동·여씨불도할망당·서문동·별방진·한개(하도포구)·중간 스탬프 간세·신동불턱·하도리각시당·원개성창(굴동포구)·토끼섬 입구·멜튼개·감동포·성창여·하도백사장·창흥동·용목잇개·철새도래지·종달리·성창모루·지미봉·두머니개·종달백사장·중동포구·족은몸여·중퉁굴·자리코지·조개왓·소금밧목· 제주올레21코스 종점 까지는 11.3km로써, 28리가 넘는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 사진=윤봉택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 사진=윤봉택

제주올레 21코스 안내소를 출발하면 연디동산 중심에는, 1932년 1월 7일 하도리 해녀 3백여 명이 세화리 오일장 날을 이용하여, 본격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한 항일정신을 기리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이 동산을 지나면 하도리 지역이다.  

‘알도의여’라 부르던 하도리에는 창흥동,동동,굴동,신동,서문동,서동,면수동 등 동네가 많다. ‘노므리골’ 면수동을 지나 운동장 북동쪽에는, 이 마을 본향당인 여씨불도할망당이 있고, 면수동 마을회관을 지나 한질을 건너면 별방밭길 올레이다.

벨방올레 / 사진=윤봉택
벨방올레 / 사진=윤봉택
벨방 삼춘들 / 사진=윤봉택
벨방 삼춘들 / 사진=윤봉택

‘화생이왓’을 지나 ‘호치모루’ 넘어 벨방올레 다하는 곳, ‘벨방진 남문’ 밖 언덕이 ‘거욱대왓’이다. 벨방진성 안으로 들어서면 맨 처음 맞이하는 곳이 제주1호 해녀상을 수상하신 항일운동 좀녜 고이화 할머님 거주지이다. 별방진에서 가장 오래된 서문동 우물을 지나면, ‘알짝물’이고, 북쪽으로 더 가면 ‘한개’라 부르는 별방포구가 있다.

포구 동쪽 성벽에는 ‘들렁물’이 복원되어 있고, 바로 성벽 따라 남쪽에는, 배 내릴 때 돗 잡아 고사를 지냈던, 이 마을 어부와 좀녜를 관장하는 하도리 남당이 있는데, 당신은 ‘남당할으방, 남당할망’이고 제일은 2월 3일이지만, 지금은 자취만 남아 있다.

중간 스탬프 간세를 지나면 바로 신동 불턱이다. 그 동쪽 구물동산에는 각시당이 있는데, 당신은 강진 부산 땅에서 들어온 도걸로도집사의 작은 할망이고, 함께 좌정한 이가 용해부인이며, 제일은 1월 12일, 2월 13일이다.

별방진 남당 / 사진=윤봉택
별방진 남당 / 사진=윤봉택
각시당 해안 / 사진=윤봉택
각시당 해안 / 사진=윤봉택

굴가름 동네의 원개는 돌로 조성되어 있어 정겹다. 문주란 자생지 토끼섬이 바라보이는 해변에 좀녜불턱이 있고, 그 동쪽 5km 지점 지나는 곳에 좀녜 조각상과 함께 ‘멜튼개’가 있다. 해녀콩 자생지를 지나 ‘도리원개’를 건너면, ‘꽝시부리’ 해안 지경이 하도어촌체험마을이다.

하도리 백사장을 지나 ‘성창여’를 따라가면, 창흥동 지역에 제방을 쌓아 동서를 가르는 ‘용목잇개’가 있다. 하도리철새도래지로 알려진 이곳에는 늘 철새들이 날아와 비상을 준비하는 곳이다. 지금은 갈대밭으로 변해 있지만, 종달리 지미봉 서남향 지선까지 해안선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끝점에 용항포가 있었다. 

‘용목잇개’ 건너 종달리 ‘성창모루’와 ‘대조개코지’를 바라보며 지미봉으로 돌아서는 곳이 7km 지점이다. 지미봉 북서향 ‘거멍남도’ 올레를 지나 밧담을 넘으면, 오름 동북 방향이 마을이 처음 설촌되었던 곳이다. 

하도리 철새도래지 / 사진=윤봉택
하도리 철새도래지 / 사진=윤봉택
지미봉 / 사진=윤봉택
지미봉 / 사진=윤봉택

‘오름머리’ 입구에서 지미봉은 그리 높지 않지만, 10분 동안은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정상 능선 중간 지점에는 텃새가 심고 간 하귤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안굼부리’ 바라보며 지미봉 정상에 오르면, 우도에서부터 청산도(일출봉) 제주올레 1~2코스까지 바라볼 수가 있다. 오름에는 지난날 전화가 없던 시절, 우도에서 지미봉과 횃불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위급한 상황을 서로 교신하였다.

지미봉에서 동쪽 능선 따라 ‘두머니개’로 내리면, 썰물 때 배를 임시로 정박시켰던 ‘조랑개’가 정겹다. ‘둥그는모살’ 백사장 해안선을 따라 가다보면, ‘할망집알’과 ‘할망집알불턱’이 보인다. ‘곤여’ 지나 ‘중튼굴’ 중동포구 해안가를 건너 ‘족은몸여’ 끝에는, 들물에는 닿을 수 없는 ‘방망세기불턱·장방데기불턱’이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방망세기불턱 / 사진=윤봉택
방망세기불턱 / 사진=윤봉택
 제주올레 21코스 종점 간세 / 사진=윤봉택
제주올레 21코스 종점 간세 / 사진=윤봉택

‘자리코지’ 지나 ‘소금밧목’ 가기 전에 보면, 해안을 안아 몸살하는 제주올레 21코스 종점 간세가 먼저 올레를 걷고 있는데, 이처럼 제주올레는 처음도 끝도 없이 올레에서 다시 또 우리 삶의 올레로 이어진다. [끝]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입니다.


# 윤봉택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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