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26) 이어도 침략 야욕을 숨기지 않는 중국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어도해양과학기지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어도해양과학기지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1월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국제 온라인 지도 ‘오픈 스트리트 맵’에는 우리나라 명칭으로 표기돼 있던 이어도를 중국 명칭인 ‘쑤옌자오(苏岩礁·소암초)’, 이어도 과학기지는 ‘쑤옌자오 과학기지’로 표기된 일이 있었다. ‘오픈 스트리트 맵’은 전 세계 누구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편집에도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소스 방식으로 운영되어 정보의 오류를 거르는 장치가 없다. 문제는 오픈 스트리트 맵이 의외로 많은 세계인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지도라는 사실이다.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단호히 대처했다. ‘이어도’를 ‘쑤옌자오(苏岩礁)’로 표기하고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쑤옌자오 해양과학기지’로 명명한 것은 어불성설이고 주권 침탈”이라고 꼬집었다. 그뿐만 아니라 재빨리 오픈 스트리트 맵의 구조를 분석해 ‘쑤옌자오(苏岩礁)’로 잘못 표기돼 있던 이어도를 한국 명칭인 ‘이어도’와 세계표준 명칭인‘ieodo’로 수정했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 중국 당국이나 네티즌들은 이어도에 대해 침략적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우리 도민은 물론 온 국민과 행정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름을 선점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명칭은 존재의 집이고 실체의 근거’이다. 만약에 제대로 명칭을 가지지 못하면 존재 자체의 실체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국제사회는 18세기까지는 한국의 동해를 ‘동해’로 불렀다. 그런데 그 후 강대국이 된 일본이 외교력을 발휘해 우리 바다인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발 빠른 대처로 최근에는 동해를 일본해와 같이(병기) 사용되고 있다.

최근 오픈스트리스맵의 형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어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어도는 ‘말 그대로의’ 섬(島)은 아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의 전설과 신화 속의 이어도는 글자 그대로 섬이었다. 이어도는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생활이고 문화이다. 제주 문화 속에는 이어도가 설화, 소리, 속담 등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도민들이 이처럼 이어도를 섬으로 명명해 사유하고 호칭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 지리적 해저 지형물이 아니라 제주도민들의 살아 숨 쉬는 영혼의 쉼터, 즉 ‘궁극의 장소’로서의 섬(이어도 鄕, Ieodotopia)으로 제주도민들에게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어도는 제주의 오랜 생활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제주 정체성의 상징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어도는 한·중·일 3국 중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존재한다. 마라도에서 149km 떨어진 수중 암초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해양영토의 최전선으로 그 상징적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서로 마주 보는 대향국으로서 한국과 중국 사이의 거리가 배타적 경제수역인 200해리의 두 배인 400해리가 되지 않아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과 중국의 거리는 236해리밖에 안 된다. 이어도가 이 겹치는 부분에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경우 대체로 중간선 원칙이 통용되는 것이 국제법상의 관례이다. 그러나 중국은 중간선 원칙을 거부하고 이어도가 중국 관할권에 있는 바다라는 억지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어도 주변 해역은 남한 면적의 60%로 중국이 장악하게 되면 우리나라 남방해역은 중국의 內海(내해)가 되는 꼴이다. 우리나라 유조선, 무역선, 곡물 수송선 등 대부분이 이어도 항로를 거쳐 세계로 나가고 세계에서 들어온다. 만약 중국이 이 항로를 봉쇄하면 한국경제는 1~2달 이내에 거덜 난다는 예측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1996년 유엔해양법협약 가입 이래 이어도 관할권을 놓고 수십 차례 국장급 혹은, 차관급 협상을 해왔으나 진전이 없었다. 이어도는 반듯이 사수되어야 한다. 한 뼘의 바다도 중국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중국이 얕잡아 볼 수 없도록 더욱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국제법적 논리, 역사적 권원 등을 체계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병행해 더 중요한 일은 이어도가 우리의 바다라는 확신을 국민들의 심전에 심어주는 작업이다. 그 수단 중의 하나가 노래를 만들어 국민들이 부르게 하는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 그 노래는 이런 점에서 성공했다.

아주 오래전에 제주 사람들이 노동요로 불렀던 이어도 민요가 있다.  

이어도허라 이어도허라
이어 이어 이어도허라
이어 말허민 나 눈물 난다
이어 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갈 거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해라

제주 사람들은 오랜 시대부터 중국과의 왕래를 위해 이어도 항로를 개척했다. 이어도는 제주민들에게는 하나의 랜드마크로서 항해를 가능케 하는 척도였다. 민요는 이어도가 예부터 해남에서 제주를 거쳐 중국 강남으로 가는 중간쯤 어디에 있다고 전한다. 이어도는 제주도 서남쪽 중국으로 가는 항로 중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위치한 곳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강남은 중국 송나라 때 최고의 곡창지대로 가장 잘사는 지역이고 문화도 융성했다. 해남은 전라남도 해남을 말하며 해남의 관두량은 당시 최고의 사무역 항이었다. 해남에서 강남으로 가는 절반쯤에 이어도가 있다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이어도를 지나 중국과 왕래가 잦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이어도 항로가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중국과의  교역이나 국마 진상을 위해 자주 왕래했던 항로라는 근거를 말해 준다. 9세기 무렵 당나라 한퇴지가 남긴 기록에는 중국의 핵심지대인 양자강 하구의 주산 군도는 탑모라(탐라인) 해민들이 목숨을 걸고 모여들었던 곳이라고 적고 있다. 아마 이들이 중국 강남으로 가기 위해 이어도 뱃길을 거쳤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조선 성종 때 추쇄경차관으로 왔던 최부는 아버지 상을 당해 급히 고향인 나주로 돌아가던 중 보름 동안 망망대해를 표류한다. 표류 나흘째 되는 날, 최부는 흰 파도가 높이 치는 백해(白海)를 지나게 된다. 그때 최부는 정의현감 채윤해가 한 말을 떠올린다.

“제주 늙은이들 말에 의하면 하늘이 맑은 날에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 멀리 서남쪽을 바라보면 바다 밖의 외떨어진 곳이 흰 모래를 띈 듯하답니다.”

최부는 흰 모래가 아니고 하늘을 찢을 듯 높이 치는 파도에 부서져 흰 바다를 보고 한 말이라고 깨닫는다. 그러면서 뱃사공의 우두머리가 고려 때 원나라에 조공을 가려면 명월포에서 순풍을 타고 직항로로 7일 밤낮 사이에 하얀 바다를 지나 큰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갈 수 있는데 표류하여 직항로로 가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얀 바다가 지금 이어도 과학기지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을 항해하는 배들이 10척이면 6~7척이 조난을 당했다고 한다.

중국이 내세우는 이어도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산해경(山海經)』이 유일할 뿐 관련된 문화예술에 관한 생활상이나 관습의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은 이러한 빈약한 근거를 나름대로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중국해’라는 노래를 지어 “중화 문명이 ‘쑤옌자오(이어도)’에서 비롯됐다”라는 왜곡된 역사를 전파하고 있다.

나는 이어도를 전 국민에게 홍보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노래야말로 이어도를 전 국민의 가슴속에 각인시키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2012년 이어도연구회에서는 작사가 양인자, 작곡가 김희갑 선생에게 의뢰해 노래 제작에 나섰다. 이 두 분은 부부이다. 그분들과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직원을 시켜 이분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자료를 보낸 후 직접 그분들을 만나러 용인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전국적으로 택시 파업을 해서 찾아가는 데 애를 먹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1시간 40여 분을 기다리게 한 송구함도 잊은 채, 소중한 해양영토 이어도를 우리 손으로 지키기 위해 이어도를 노래로 제작하고자 하는 뜻을 간곡히 설명했다. 인연이 닿으려고 했는지 오래 기다리느라 불쾌했을 텐데도 이어도에 대한 나의 설명을 강의처럼 열심히 들어주셨다.

최근 양인자 선생님으로부터 『그 겨울의 찻집』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양인자 선생님이 쓴 노래 중 총 30곡에 대해 노랫말이 탄생하게 된 사연과 노랫말을 수록했다. 16번째 이야기는 이어도 노래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 소개됐다. 영광스럽게도 나에 관한 이야기도 자세히 써주셨다. 히트곡 제조기 양인자, 천재 작곡가 김희갑 선생이 만들어 주신 노래는 가곡 ‘이어도’와 가요 ‘이어도가 답하기를’ 이다. 김희갑 선생은 이 노래가 가요무대에서 불리는 걸 상상하며 간주곡에 이어도 민요를 삽입하기도 했다. 가곡 ‘이어도’는 요새 가요계의 스타인 김호중과 한국의 꿀포츠라고 하는 김성록,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권성동이 맡았다. 그 당시 김호중은 무명 인사였는데 작곡가인 김희갑 선생은 이 사람의 타고난 재능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김 선생의 예언대로 김호중은 최고의 스타가 됐다. 김희갑 선생도 향수, 그 겨울의 그 찻집, 열정 등등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었는데 천재 작곡가 반열에 놓아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것 같다.

/ 사진=알라딘
/ 사진=알라딘

이어도
노래 : 김호중, 김성록, 권성동

아득한 바다, 바다 저 멀리
우리의 터전 펼쳐지는 곳
먼바다, 푸른 물여울 바람으로 불어와
나아가라 갈 길을 일러주네
어둡고 막막한 세상살이
가슴에 불씨 꺼질 때
눈을 들어 보기만 해도
한세상 걸어가는 길 하나를
보여주는 이어도
파도가 잠들지 않고 용솟음치는 것은
내 님이 바로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지


이어도가 답하기를
노래 : 김국환

너를 불러보았다 이어도
그리워서 불렀다 이어도
한라산이 열리면서
바닷속에 숨겨 놓은 연인
마라도 남남서쪽 일백사십구 킬로
4미터 물속 아래 숨바꼭질하는 그대
오늘도 내일도 안녕하신가?
너를 불러보았다 이어도
그리워서 불렀다 이어도
파도가 밀려와 그대와 그대 말을 전한다
무사마시 무사마시
무사마시 무사마시
난 언제나 여기 있어요
난 언제나 당신의 것이에요

노래 제작이 완료되자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제작발표회도 했다. 언제 들어도 노랫말도 좋고 곡도 좋다. 요즘 유명해진 김호중과 김성록, 권성동이 부르는 가곡 ‘이어도’를 듣고 있노라면 잔잔한 먼바다를 항해하는 기분이 든다. 김국환 선생이 부르는 ‘이어도가 답하기를’은 그 나름대로 신나고 재미가 있다. 불가사의한 것은 히트곡 제조기라 할만한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로 만들어진 이 곡이 히트하지 못하고 묻혀 있다는 것이다. 간혹 가요 ‘이어도가 답하기를’을 부른 김국환 선생도 이어도연구회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방송이나 행사장에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지만 고마운 노력도 아랑곳없이 이 노래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나는 김희갑 선생의 확신대로 언젠가 이 두개의 노래가 크게 히트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당시 무명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최고의 가수가 된 김호중이 초심으로 돌아가 가곡 ‘이어도’를 힘찬 목소리로 불러주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나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가끔 이 노래를 접하곤  한다. 여전히 좋은 노래다. 김희갑 선생께서 건강이 좋지 않아 실버타운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빨리 쾌차하시길 바라며 김희갑 선생님 생전에 이 노래가 히트하길 빌어본다.


#고충석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