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 회피 수법으로 결국 내쫓겨”...영세 세입자들 보호대책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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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젠거리에서 항의 중인 상가 세입자들.
[기사보강=11일 10:30] 제주 바오젠 거리의 한 건물 상인들이 띠를 둘러매고 거리로 나섰다. 건물주가 의도적으로 재계약을 회피해 전부 쫓겨나게 생겼다는 하소연이다.

10일 오후 제주시 바오젠거리에서 제주바오젠상인연합회, 전국상가세입자협회 등 6개 단체와 바오젠거리 인근 상가세입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바오젠거리 내 상가 세입자의 생존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건물주 A씨가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화장품가게를 직접 운영하겠다며 세입자들을 하나 둘 씩 쫓아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A씨가 사용했다는 수법은 임대료 입금 계좌번호를 세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따라서 월 임대료를 송금할 수도 없었고 얼마 후 건물주는 임대료 연체를 이유로 명도소송을 진행했다.

우선적으로 ‘코끼리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모(34.여)씨가 타깃이 됐다. 결국 지난 3일 김씨의 가게는 강제 집행을 당해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 상인들은 입을 모아 이 기간 동안  A씨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개업한지 1년이 조금 지나 생긴 일이다. 개업 당시 투자했던 9000여만원의 권리금과 시설비를 한 푼도 찾지 못하게 됐다.

이 건물을 둘러싼 논란은 작년 1월로 돌아간다. 당시 A씨가 이 건물을 통째로 사들인 뒤 한 달 뒤 재건축을 하겠다면서 점포를 비워달라는 내용증명을 각 세입자들에게 보낸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의하면 5년 미만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맘대로 거절할 수 없지만 ‘건물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한 경우’는 예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납득할 수 없다며 강하게 저항했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결국 당장 내쫓기는 일은 면했다.

그러던 A씨가 새롭게 찾은 방법이 입금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건물주가 계속 재계약을 회피하면서 법원을 통해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강제 퇴거되는 형식이다. 임대차보호법에 걸리지 않고 세입자를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임대차보호법으로 그나마 보호를 받는 5년 이하 세입자들이 이 정도니 그 이상 시간이 흐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19년 전 권리금 1억을 주고 이곳에서 계속 장사를 하고 이쓴 ‘청산의 살자’ 강향임(59.여)사장과 그 옆 화장품가게 ‘아리따움’의 김순영(54.여) 사장 역시 이번 달 최종변론기일 때 건물주와 조정이 되지 않는다면 소송에서 패소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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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젠거리에서 항의 중인 상가 세입자들.
제주환경참여연대는 현행 임대차보호법의 맹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건물주의 잘못된 탐욕을 법이 옳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주환경참여연대는 바오젠 거리의 문제가 비단 이 뿐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최근 이 일대 20군데 점포를 조사한 결과 1년 사이 임대료가 50% 이상 증가한 곳이 8군데나 된 것. 심지어 200% 이상 폭등한 곳도 있었다.

임대차보호법의 맹점과 임대료 폭증으로 인해 영세 세입자들은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영철 제주환경참여연대 대표는 “이 건물 상인들과 달리 자기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속으로만 앓고 있는 분들도 많다”며 “법의 허점을 노린 문제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그에 따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가 이곳을 바오젠 거리라는 특화거리를 지정하면서 문제가 본격화된 만큼, 단순히 시장질서에 따른 것이 아니라 행정이 개입하면서 현재 문제를 발생시킨 셈”이라며 “단순히 건물주와 임차 상인들 문제가 아닌 만큼 이런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승완 통합진보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도 10일 논평을 내고 “제주도 상가임대차보호 조례를 제대로 만들어 임차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제2의 바오젠거리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관광산업이 외형적 요소에만 치중하다보니 바오젠 사태가 발생했다”며 “이번 바오젠 사태를 맞아 제주관광의 방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건물주 A씨는 본인의 직접 영업을 하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해당 세입자들은 이미 건물을 인수하기 전부터 집세가 밀려있는 상태로, 집세를 내지 않아 절차에 따랐을 뿐”이라며 “입금계좌 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건물을 새로 짓게 될 경우 이의제기를 하지 말라는 임대차계약서도 갖고 있다”며 “권리를 강탈한 것처럼 비쳐져서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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