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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해군기지 군 관사 행정대집행 전날인 30일 오후. 활동가와 주민 몇몇이 군 관사 앞을 지켜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마을 전체 울려퍼진 싸이렌...주민-활동가, 군관사 부지 앞 철야농성

강정 해군기지 군 관사 앞은 말 그대로 ‘전운’이 돌았다.

군 당국이 예고한 행정대집행 전날인 30일. 강정 마을 곳곳에는 온몸이 움츠려 들 정도로 찬바람이 불었다.

군 관사 부지 앞에는 지난해 10월부터 마을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이 번갈아가 지켜오던 큰 몽골 텐트(농성 천막)를 중심으로 한 쪽에는 소형 버스, 다른 쪽에는 작은 텐트들이 강한 바람에 부숴 질 듯 흔들렸다.

텐트 한, 두 개는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해 푹 내려앉았다.

소형 버스 앞에는 망가진 분홍색 카누 2개가 놓여 있었고, 의자와 책상, 쇼파, 화분. 자전거 등은 화목했던 가정집 거실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민들과 활동가 10여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군 관사 입구를 지키고 서서 현수막 끈을 다시 동여맸다.

현수막 마다 '주민 동의 없이 강행하는 군 관사 건립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다.

그러면서 군 관사 앞을 지나가는 사람과 자동차 하나하나를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해군기지 반대 활동 현장마다 틀어졌던 노래도 계속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노래 소리가 강한 바람을 타고 마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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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 해군기지 군관사 앞 농성장에는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싸늘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활동가 한명이 농성천막 앞을 지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날 강정 마을에서 만난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대표는 "강정 주민들은 9년째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며 많은 피눈물을 쏟아냈다"며 "이번 군 관사 앞 농성천막 행정대집행으로 마지막 남은 주민들의 피눈물까지 뽑아내는 것 같다.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리적으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주민들의 도움이 되겠다"며 "군 관사는 강정 마을 주민들의 자존심과 같다.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을 공동체를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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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해군기지 군관사 부지 앞 텐트촌에 머물고 있는 영화감독이자 영화평론가인 양윤모 감독. 양 감독은 평화를 향한 주민들의 저항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강정 평화를 위해 앞장서 온 영화평론가 양윤모 감독도 농성천막에서 "강정마을 안길은 마지막 보루다. 이곳까지 내어줄 수 없다"며 "주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대화 도중 마을 곳곳에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행정대집행 반대 운동을 함께하자는 독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피커에서 "해군이 주민들과 행정의 동의도 없이 군 관사 행정대집행에 나서려고 한다. 마을을 뺏길 수 없다"며 "후손들에게 마을을 물려줘야 한다. 마을 주민의 힘이 합쳐져 강물처럼 흐른다면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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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이 마을 방송으로 주민들에게 행정대집행 반대 운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우리는 처음부터 싸우려 한 적이 없다. 주민 동의 없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해군이었다"며 "지금이라도 행정대집행을 멈추고 대화하는 자세를 보이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해군의 대화법은 언제나 '우리는 이 사업을 꼭 해야 한다. 양보해라'였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며 "정말 합리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로 대화에 임한 다면 우리도 강정 주민의 시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대화에 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군 당국은 오는 31일 전경대와 기동대 600여명, 여경을 포함한 일반 사복경찰 150명, 해군이 별도 요청한 육지부 용역 100명 등 1000여명이 행정대집행에 나선다.

강정마을 전체 주민이 1600여명에 이르지만 이른 새벽시간, 군관사 현장 농성장에는 주민과 활동가가 겨우 수십여명에 불과해 해군이 무리하게 인력을 대거 배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취재반 = 김정호·이동건 기자, 오영훈·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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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워진 군 관사 앞 농성 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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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관사 입구 옆으로 펼쳐진 작은 텐트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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