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섬’ 제주도는 예부터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경제·사회활동에 참여해왔다. 비정규직 증가, 경제불황, 양극화 심화 등 출구가 보이지 않는 국내 경기악화 속에 열악한 육아환경은 비단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1차산업과 서비스업 편중 등 불리한 산업구조와 양성평등 인식이 부족한 지역사회 분위기 속에 제주여성들은 일과 육아 모두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주의소리]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앞둬 출산부터 육아, 재취업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속에 워킹맘(working mom)들이 부딪치는 현실 문제와 대안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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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엄마들은 하루 평균 5시간 넘게 집안 일에 할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직장까지 더할 경우 더욱 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 ⓒ제주의소리

[제주여성, 워킹맘의 눈물] ② 가사·가족돌봄 여성 압도적...‘이인삼각 자세’ 필요


사례 1. 5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30대 C씨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소중한 첫 아이를 보며 ‘정말 잘 키우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작은 생명을 책임지는 부모, 엄마라는 위치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매일 매일 느끼고 있다.

C씨는 "육아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했는데 무엇이 옳은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인터넷에서 추천한 분유나 장난감을 구입해봤지만 내 아이와는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정보가 믿을 만한 정보인지 혼란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평소 생각해온 육아방식과 많은 부분이 달라 지금은 선뜻 요청하기가 망설여진다.

C씨는 “(시어머니는)남편의 아기 시절을 떠올리시며 ‘애들은 놔두기만 해도 잘 큰다’고 말씀하시는데, 시대가 지난 지금은 예전보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겠냐”고 말했다.

설상가상 젖도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인터넷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각각 다른 의견에 혼란만 더해졌다. 

모유 수유를 계속 하고 싶지만 주변에서 ‘요즘 분유는 좋아졌다’고 권유하면 ‘그런가’하는 생각으로 복잡해진다.

C씨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작고 많이 먹지도 않아 자꾸 비교하게 된다.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 시간에 맞춰 먹이고 재워보는데도 발달이 좀 늦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례 2. 제주시 아라동에 사는 D씨는 2년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학벌과 만족스러운 살림사정에 육아도 어려움 없이 해낼 것 같지만, 속사정은 정 반대다.

3살 큰 아이가 12개월 된 동생을 괴롭히고 때리면서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동생은 아직 손길이 필요하기에 집안에서 D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형은 어린이집에 맡긴다.

그녀는 “큰 아이는 내가 ‘하지마’라고 꾸짖고 엄하게 소리쳐도 오히려 반항심만 생기는지 괴롭힘을 멈추지 않는다”며 “대체 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속으로는 ‘잘 달래서 멈추게 해야지’라는 생각이지만 울음바다에 집안이 엉망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욱 해져 크게 화를 내고만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다”는 D씨는 “이럴 때 남편이 나서서 도와주면 좋겠지만, 아이들 문제는 온전히 자신에게 맡겨놓는 남편이 야속하다”고 털어놨다.


불안정한 고용, 저임금, 육아부담이란 ‘3중고’에시달리는 제주 워킹맘들이 겪는 또 하나의 고민은 ‘아이 키우는 방법’이다.

특히 ‘아이는 엄마가 알아서 키우면 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제주에서는 여성들의 고충이 더욱 크다.

(재)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지난 1월 20일 발표한 ‘2014 제주도 여성·가족 실태조사’에는 워킹맘들의 고충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내와 남편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과 가족돌봄 시간을 비교한 결과, 아내는 하루 약 3시간 20분을 가사노동에 할애하는 반면, 남편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0분에 불과했다.

자녀 통학, 병원 동행 등과 같은 가족구성원의 일생생활에 할애하는 시간인 가족돌봄 노동시간도 가사노동과 비슷하다. 아내는 가족돌봄 노동에 약 2시간을 할애하는데 반해, 남편은 40분에 그쳤다. 

종합하면 기혼 제주여성은 하루에 평균 5시간 20분 동안 집안일을 하지만, 남성은 1시간 30분밖에 하지 않는다. 소소한(?) 살림에 아이 키우는 일까지 도맡다시피 하는게 제주여성들의 현주소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제주 워킹맘들은 말 그대로 ‘알음알음’ 자녀를 키운다.

먼저 결혼한 친구나 선후배, 직장 동료와의 대화 속에서 정보를 얻고, 그래도 부족하면 인터넷을 뒤적인다.

제주 어머니들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제주맘’은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 각각 6만8000명, 3만2000명의 회원을 보유할 정도다. 이 밖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인터넷 공간에서 육아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이것 뿐인 육아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오명녀 제주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똑같은 아이가 하나도 없을 만큼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다”며 “인맥으로는 병원, 학교 등의 간단한 정보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고 인터넷은 공통적인 일반 사례나 우수한 특정 사례가 많아 그대로 따르기엔 무리”라고 밝혔다.

오 센터장은 가장 기본적으로 ‘내가 부모로서 자세가 돼 있느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부부가 함께 받는 '부모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정경제를 위해 일에 매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손으로 작은 생명을 책임 있는 인격체로 만들겠다는 책임감을 부모교육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 센터장은 “부모교육을 받은 엄마, 아빠들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자녀가 필요한 사랑’을 주는 방법을 배운다. 결국 부모교육을 모르는 가정보다 일과 양육을 균형 있게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부모교육 마저도 여성 중심이라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고 조언했다. 서로의 발을 묶고 달리는 이인삼각(二人三脚) 처럼 아빠와 엄마가 교육과 육아에서 동등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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