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별명이 '유구라'였던가
혁명을 점화한 자이언트 불상, 도솔암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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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산 도솔암 마애불. 높이 17미터의 거대 암석에 세긴 불상이다. 명치 부위에 감실의 흔적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선운사'의 1연에 해당하는데, 작품에서 시인은 꽃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차가운 겨울 힘겹게 피운 동백꽃을 생기가 오르는 봄날에 느닷없이 떨쳐버리는 장면이란,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져버린 사랑처럼 쓸쓸하다.
선운사 경내로 들어서면, 병품처럼 둘러 친 짙은 초록의 동백 숲이 대웅전 뒤로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묵객들의 발자취가 켜켜이 쌓인 숲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섰다. 특히 유홍준이 '노목의 기품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 수령은 대략 500년으로 잡고 있다'고 해서 동백 숲에 대한 기대는 더욱 증폭되었다.
선운사 동백 숲,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그런데, 앞서 미당이 시로 나타낸 것처럼 '동백꽃은 아직 일러' 조금밖에 피지 않았다. 3월이라 이 북방의 골짜기에는 동백이 제철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선운사 동백 숲에서 유홍준이 예찬한 '노목의 기품'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수령 500년이라고 했지만, 내 판단으로는 동백나무의 수령이 채 200년도 안 되어 보였다. 유홍준의 별명이 '유구라'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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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동백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다. 아직 일러 꽃은 많이 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홍준이 예찬했던 '노목의 기품'도 느낄 수도 없었다. |
솔직히 말하자면, 장사송의 수령이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의 곰솔나무(수령 대략 600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진흥굴도 내부를 들여다보니 바위를 깬 듯한 자국이 남아 있어, 후대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모르고 지나쳤으면 좋을 뻔했다.
장사송과 진흥굴, 글쎄..
실망감을 뒤로하고 산길을 더 오르니 선운산의 중턱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도솔암에 이른다. 주변 산등성이마다 악귀를 막아줄 것 같은 바위들이 버티고 서 있어서, 이름대로 미래에 올 부처가 오랜 세월동안 머무를 만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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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으로 오르는 도중 마주친 장사송이다. 표지에는 수령이키가 23미터에 수령이 600년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
전문가들은 이 마애불상이 고려초에 유행했던 거불(巨佛)이나 마애불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게다가 고려초 문인 이규보가 지은 <남행일월기>에 도솔사 마애불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학자들은 10세기나 11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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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산 도솔암이다. 주변이 바위 산으로 둘러싸여서 불자들이 머무르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비온 날 주변이 안개에 덮여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 했다, |
크고 거친 바위, 소박하고 친근한 부처를 품다
도솔암 마애불이 가슴에 수정이나 경전 등을 넣어 보관하는 감실의 흔적이 있다는 게 눈여겨 볼 점이다. 금등불이나 목불 등의 몸 안에 감실을 만드는 것은 일반적인데, 마애불에 감실을 만드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도솔암 마애불의 감실과 관련하여 "미륵의 배꼽에 비밀 기록이 있는데, 그것을 꺼낸 자는 왕이 된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 설화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이 일대 농민들을 결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