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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 공연예술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제주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이 3년 연속 참가한다. 올해는 한국을 대표한 '코리안시즌'의 일원으로 참가해 더욱 의미가 크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은 7월 1일 오후 7시 30분 제주문예회관에서 영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쇼케이스 무대를 가진다. 왼쪽부터 최지안, 윤정현, 양호성, 송해인, 전성혜, 오유정 팀원. ⓒ제주의소리

[인터뷰]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3년 연속 참석하는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

평일 장맛비가 내리는 제주민속촌 안쪽에서 빗소리를 뚫고 경쾌한 꽹과리와 징소리가 들려온다. 주말같으면 가득 차 있을 객석에는 비옷을 입은 몇명의 관객뿐이지만, 사물놀이 공연팀도 관객도 신명을 아끼지 않는 공연과 박수로 쉴새 없이 교감했다.

지난 25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소재 제주민속촌에서 만난 무대 주인공은 '노리안마로'라는 명칭으로 더 익숙한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The KPAD- Korean Performing Arts Development) 공연팀. 

공연이 끝나고 땀으로 뒤범벅된 몸을 기대어 휴식을 취할만도 하지만 이내 바쁜 대화가 오간다. ‘반 박자 빠르게 가보자’, ‘여기선 이런 식으로 치는 게 더 좋겠다’ 등등의 이야기가 오고간다.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의 최근 하루는 오는 7월 말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축제 참가를 위해 출국을 앞두고 '제주민속촌 공연'과 '해외공연 준비’의 반복으로 쉴 틈 없이 바쁘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은 8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올해로 3년 연속 에든버러로 향한다. 1947년부터 시작돼 지금은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축제로 손꼽히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축제 기간 동안 1600만명 이상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1년 전체 관광객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단 한 달 만에 모인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한 달 동안 지역이 1년 간 살아갈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설명이 농담이 아니다.

전세계 51개국 2600여개 공연팀이 펼치는 약 4만9000회 공연 가운데 제주에서 온 전통예술공연개발원도 당당히 포함돼 있다. 그것도 3년 연속으로 말이다.

제주민속촌에서 만난 전통예술공연개발원 팀원들은 ‘정신없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2년 동안 1월이면 축제 참가 여부가 결정이 돼 준비하는데 차질이 없었지만 올해는 4월이 지나서야 확정됐다. 당연히 이런 저런 절차를 생략하거나 앞당길 수 밖에 없어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당장 출국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평소보다 배 이상의 에너지를 쏟고 있는 전통예술공연개발원 팀원들이다. 송해인 연출담당은 “연습은 기본이고 영상작업, 의상·장비 제작, 홍보 등 각자 팀원들이 맡고 있는 역할마다 함께 준비해야 해서 조금 바쁘다”고 애써 밝게 웃어보였다.

빠듯한 일정에도 3년간 빠지지 않고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보일 수 있지만 결코 순탄하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처음 에든버러에 갔던 2013년은 어땠는지 물어보자 팀원들은 에피소드를 술술 풀어냈다. 

오전 10시에 공연을 배정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은 밤새 축제를 즐긴 사람들이 잠든 시간이라 모객에 애를 먹었던 기억, 공연장으로의 이동거리를 고려하지 못한 채 숙소를 멀리 잡아 힘들게 생활했던 경험, 한 달 간의 타국 생활로 인한 어려움과 실수 등 무수히 쏟아내는 추억에 팀원들 모두 웃음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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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 사진제공=전통예술공연개발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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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 사진제공=전통예술공연개발원. ⓒ제주의소리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나다. 1947년 국제 페스티벌에 참가하지 못한 팀들이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을 벌인 것이 출발이 됐다는 프린지 페스티벌은 자유분방함과 참신성을 바탕으로 이제는 본 행사를 넘어서는 명성을 가지게 됐다. 국내에서는 1999년 <난타>가 프린치 페스티벌에 최초로 참가했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참가비만 지불하면 누구나 참여해 공연할 수 있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도 2년 전 그렇게 시작했다. 다만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난타', '점프' 등을 해외에 유치한 국내 글로벌 공연기획 전문기업 에이투비즈가 에든버러 최고 극장으로 손꼽히는 ‘어셈블리’와 손을 잡고 올해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코리안시즌(Korean Season)을 개최하면서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이 공연 단체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서 ‘코리안시즌’이 개최되는 것은 축제 역사 6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0개 팀이 신청한 가운데 하땅세, 아름다운공연, 더패트론, EDx2무용단과 전통예술공연개발원 등 5개팀이 낙점됐다.

대한민국 이름을 내걸고 여는 무대에 당당히 포함되면서 올해는 명실상부하게 한층 높아진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 이에 앞서 뉴욕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2014-2015 오픈 스테이지 작품에서도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기대를 높였다. 위상과 기대가 더 높아진 만큼 책임감도 더 커졌다. 

지난 2년과 비교하면 훨씬 좋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셈. 더욱이 나름의 고정팬도 더욱 늘어나면서 전통예술공연개발원 팀원들 스스로 공연에 거는 기대가 점차 높아져가고 있다. 녹록치 않은 여건에서도 말이다.

기종석 무대·소품담당은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아 당초 올해는 (에든버러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었는데, 코리안시즌에 참여하게 되면서 한 번 더 도전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윤정현 영상·홍보담당은 “2년간 꾸준히 찾아오는 현지 팬들도 있고, 얼마 전에는 현지 팬이 SNS를 통해서 ‘올해도 방문하느냐, 와서 공연을 보여달라’고 응원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가장 시간 팀을 이끌어온 양호성 씨는 “한 달 일정이지만 에든버러에 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용에서부터 준비 모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매년 갈 때마다 3000팀 이상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에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큰 자극을 받는다. 일종의 새로운 동력을 얻는 셈”이라며 “갈 때는 ‘힘들다, 힘들다’해도 다녀오면 ‘다음에도 가볼까’라고 생각이 드는 곳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라고 설명한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이 에든버러로 가져가는 작품은 ‘이어도 : 더 파라다이스’(Leode : The Paradise)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3호인 ‘제주큰굿’을 기반으로 제주인의 가슴시린 감정이 스며있는 ‘이어도 설화’를 입혀 만들었다.

제주큰굿은 ‘신들의 섬’ 제주의 무속의례 가운데 최대 규모로, 무속인의 신굿과 일반 가정 큰굿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한국 굿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다.

문화재청도 '제주큰굿'과 관련, “제주 사람들의 인생관, 우주관, 자연관을 비롯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으며, 굿의 춤, 노래와 사설 모두가 문화재적 가치가 높고, 특히 사설은 중세어연구를 위한 국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한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이 제주큰굿을 공연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전 세계 수많은 문화가 ‘빅뱅’처럼 충돌하는 공간에서 제주의 문화, 나아가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콘텐츠가 제주큰굿이라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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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의 '이어도 - 더 파라다이스' 공연 모습. 사진제공=전통예술공연개발원. ⓒ제주의소리

2013년 푸다시(PUDASI)라는 제목으로 초연을 올렸고, 매해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보완하며 ‘이어도: 더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이어도 : 더 파라다이스’는 4부에 걸쳐 진행된다.

'이어도 : 더 파라다이스' 이야기는 옛날 어느 제주 여인이 자맥질을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저승길에 오르며 바다의 용신과 이어도의 신들이 그녀를 위로하는 1부 ‘바다-미여지 뱅뒤에서 이어도 가는 길’로 시작한다.

소녀 혼령의 넋을 위로하고자 대별왕, 소별왕, 자청비, 영등할망 등 제주의 신이 등장하는 2부 ‘한풀이-생불꽃, 환생꽃, 번성꽃 드리는 할망도리’, 이승을 떠나기 전 지상에 이별을 고하며 반야용선과 함께 극락의 섬 이어도로 향하는 3부 ‘상생-그리움 다 풀어 신 곳갈라’, 끝으로 이어도에 도착한 소녀를 신들이 마중하는 환희의 춤판 4부 ‘이어도-굿 끝나시난 조상덜 막판으로 도진했져’ 순서다.

제주큰굿, 현대무용, 영상, 사물놀이 등 각기 다른 예술이 제주인의 삶을 상징해온 ‘이어도’라는 그릇에 담겨 하나가 된다. 슬픔과 환희를 오가는 에너지는 세계인들도 단박에 빠져드는 마력이 있다.

전 세계 8만5000명에게 문화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The Culture Trip’은 2013년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의 무대를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10대 공연’이라고 극찬했으며, 1880년부터 영국의 문화소식을 전한 언론매체 ‘The Stage’는 2014년 그들의 공연에 별 네 개를 선사했다.

2600여개의 팀이 폭포수 솟아나는 공간에서 3년간 자리를 지키며 점차 입지를 다져가는 그들의 공연은 사실상 또 다른 ‘한류’나 다름없는 셈이다. 나아가 ‘제주를 넘어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포부는 단순한 자아성취, 수익창출을 넘어 영국을 향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오유정 음악담당은 “어느 (문화, 예술)단체라도 자기가 노는 터전이 아닌 더 큰 많은 무대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욕심은 가지고 있다. 제주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우리를 알리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많은 분들이 느끼겠지만 해외로 가면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한국을 알지 못한다. 제주는 더더욱 모른다. 저희들도 에든버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Are you Japanese?(너희들 일본인이냐)’, ‘Are you Chinese?(너희들 중국인이냐)였다. 한국의 어느 문화공연팀이 나가더라도 이런 인식의 벽은 존재할 것이다. 어렵지만 우리가 자꾸 나가서 알리려는 이유 중의 하나도 긴 안목으로 볼 때 세계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라고 설명했다.

낯선 영국 에든버러에서의 지난 경험은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동력을 불어넣어줬다. 그리고 도전의 씨앗을 계속 심을 수 있었던 것은 도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은 2009년부터 매월 첫째 주 수요일마다 ‘허튼굿’ 정기공연을 개최하며 도민들을 만나고 있다. 수년간 새로운 예술과 전통예술의 융합을 시도해온 노력에 적지 않은 도민들이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에든버러 참가 일정이 뒤늦게 잡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도 많은 팬들이 후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큰 힘이 됐다. 여기에 오랜 시간 동안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제주민속촌과 대한항공, 제주큰굿보존회도 도움을 줬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이 영국 에든버러를 넘어 해외공연 같은 더 큰 꿈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온전히 고향에서 보내주는 응원 덕이다. 

전통예술공연개발원 팀원들은 2000년부터 시작해 길게는 15년 동안 호흡을 맞춰왔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표현이 식상할 만큼 이제는 호흡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이런 유대관계가 바탕이 됐기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연은 빈틈없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탄탄한 무대 속에서 흥겨운 에너지가 탄생한다.

‘이어도 - 더 파라다이스’는 여인을 위로하는 흥겨운 사물놀이 마당으로 마무리 된다. 꽹과리, 장구의 박자가 빠르게 요동치는 동안 역동적인 에너지는 무대와 관객을 휘돈다. 흥에 취해 두들기는 무대를 보며 관객은 어깨를 들썩이고 그 모습에 무대는 더욱 뜨거워지는 순환을 반복한다.전통예술공연개발원 무대의 끝은 언제나 팀원, 관객 모두가 하나가 돼서 뛰어노는 환호성이 장식한다.

“와서 보면 알 수 있다. 몸치인 제 아버지도 공연에 오면 몸을 들썩이신다”, “묵은 것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분”이라는 팀원들의 말에는 자신감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영국에 떠나기 전 미리 공연을 만나볼 수 있는 ‘이어도 - 더 파라다이스’ 쇼케이스 공연은 7월 1일 저녁 7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다. 두 번의 후원공연에서 보여준 사랑에 대한 감사마음을 담은 무대라고 설명한다. 축축 처지는 더위를 상쾌하게 씻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색한 분위기로 시작한 인터뷰는 수다와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팀원이 “어이구, 누가 보면 시장통인 줄 알겠네”라고 한 마디 던진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빈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리를 뜨기 전, 인터뷰 내내 ‘아줌마’ 웃음을 보인 오유정 음악 담당이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신나는 무대를 기대한다면 이날(7월1일) 꼭 오세요.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거 하나 만큼은 저희가 자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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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의 공연 모습. 사진제공=전통예술공연개발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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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통예술공연개발원의 공연 모습. 사진제공=전통예술공연개발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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