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작은 몸부림이 끝을 향한다. 한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고, 피부는 까맣게 타다 못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함께 걷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700여명의 참가자 모두 멈추지 않고 걸었다. 지난 27일 제주시청에서 출발한 동진과 서진은 어느새 서귀포시 하례와 중문 숙소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걷고 또 걸은 사람들 대부분은 고단한 하루 일정을 마무리 했다는 사실에 숙소에 도착하자 미소를 지었다.
더러는 표정이 굳었다. 평화대행진이 끝나면 강정과 세월호, 용산, 밀양 모든 사실이 잊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빠진 걸까? 그들은 아쉬워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몇몇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더러는 시원한 물에 목욕을 하기 위해 달려갔다. 또 몇몇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호박에 톳무침, 깍두기와 콩나물국. 평소 같았으면 반찬투정을 할 만한 아이들도 군말 없이 맛있게 먹었다.
물집이 심하게 잡히거나 다리를 삐어 다리를 저는 사람, 피부가 너무 타서 진정제를 바르는 사람까지.
한 쪽에서 "사기꾼"이란 말이 큰 목소리로 들려왔다.
깜짝 놀라 찾아가봤더니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여성이 발에 물집으로 만신창이가 됐음에도 "난 괜찮다. 별로 아프지 않다"고 말하자 그 모습을 본 다른 남성 참가자가 장난스레 "사기꾼"이라 말한 것.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아픈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겼다.
평화대행진에 참가한다고 편한 운동화와 옷가지를 고르고 골랐지만, 장기간 행군에 성한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다친 발을 찍기 위해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 밀자 너도나도 숨겼다. 그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저보다 힘든 사람 많아요”
“별로 크게 다치지 않았어요”
“참을 수 있어요”
부모에게 투정부릴 만한 어린 아이들도 이를 꽉 깨물었다.
누가 봐도 힘든 상황이지만,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오히려 취재하는 기자가 난감(?)했다.
누군가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고, 다른 누군가의 삼촌이 됐다. 또 다른 누구에겐 ‘내 새끼’ ‘강아지’같은 존재가 됐다.
오후 7시15분. 해가 뉘엿뉘엿 기울더니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숙소 곳곳에 빨래가 널렸다. 빨래 중간중간에는 노란티셔츠가 자리했다.
노란 티셔츠에는 '강정에 평화'란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있었다.
밥을 먹고, 목욕을 하는 등 개인 일정을 마친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눴고, 아름다운 노을을 같이 바라보기도 했다.
대화는 서로 힘들다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어떤 곳이 아름다웠어. 오늘은 누가 어떤 행동을 해 즐거웠어. 오늘은 누가 물집이 잡혀서 잘 걷지 못했어...
서로를 위로하다 못해 치유했다.
조금 전까지 무더위에 걸었던 힘든 생각은 모두 잊어버린 듯 다음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2015년 7월31일.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의 마지막 날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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