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가 봅주] ⑦ 삼도2동 '제라진'...9월5일까지 서현 ‘그림책 바다’ 展

‘제주가 과연 문화예술의 섬인가?’ 이런 질문에 선뜻 동의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기에 문화예술은 생존 다음의 문제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금언처럼 문화예술의 섬으로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은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더욱 가깝게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일상에서 문화가 더 이상 ‘큰 맘 먹고 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 때 제주도는 문화예술의 섬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제주의소리]는 누구나 환영하는 유명 공연뿐만 아니라 소소하지만 그만의 매력을 간직한 공연, 전시, 공간 등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한다. 무엇이든 먼저 체험하고 나서 소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문화적 소양이 깊지 않은 문화부 기자의 솔직담백하면서 쉬운(?) 설명이 사족이 아니길 바란다. [한번 가 봅주]는 '(공연·전시·공간에)한 번 가보자'는 의미다. <편집자주>


‘덥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해변과 숲에서 더위를 피하고, 혹은 ‘나가면 고생’이라는 마음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기며 사람들은 한여름을 보낸다.

특히 지금은 학교들도 방학이어서 아이를 둔 부모들은 ‘이 더위에 어디로 갈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부모들의 고민을 덜어줄 적당한 장소를 이번 [한번 가 봅주]에서 추천한다. 신나게 뛰어놀아도 전혀 문제되지 않고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책도 쌓여있다. 물론 에어컨도 빵빵 터진다. 바로 그림책갤러리 제라진(이하 제라진)이다.
IMG_0542.JPG
▲ 삼도2동에 위치한 그림책갤러리 제라진은 그림책 작가 서현 초청전 '그림책 바다-놀아라, 아이들!'을 9월 5일까지 열고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삼도2동 모이세해장국 건물 2층에 위치한 제라진은 7월 11일부터 9월 5일까지 그림책 작가 서현의 작품을 모은 ‘그림책 바다-놀아라, 아이들!’전을 개최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서 작가의 대표작 ‘눈물바다’와 ‘커졌다’를 만날 수 있다. 책 뿐만 아니라 작품 속 캐릭터의 탄생 과정이 담겨있는 원화,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공간, 눈물바다 애니메이션, 카드 만들기 등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국내 그림책 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서 작가는 1982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출판사는 작가를 ‘인물의 단순한 감정과 욕망을 살펴서 통쾌한 상상력으로 버무리고 치유하는 힘이 돋보인다’고 소개한다.

더불어 ‘누구나 혼자서 신나게 상상의 나래를 펼 때가 있듯이, 작가도 혼자 꼬물꼬물 상상하기를 즐겨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씨앗을 그 속에서 찾는다’고 설명한다.

‘눈물바다’, ‘커졌다’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평범한 남자 아이다. 하지만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다.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위로받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리고, 키가 작아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두 일종의 결핍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아이가 결핍을 채우는 방법을 판타지(Fantasy, 공상)처럼 그려낸다. 주인공이 자면서 흘린 눈물은 온 마을을 삼킬 만큼 불어난다. 키가 크고 싶어 식물처럼 맨발로 흙 속에 서있던 주인공은 ‘잭과 콩나물’ 마법나무 뺨치듯 쑥쑥 자란다.
IMG_0512.JPG
▲ 제라진 내부. ⓒ제주의소리

IMG_0525.JPG
▲ 서현 작가의 '눈물바다' 중 한 장면.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주의소리
IMG_0521.JPG
▲ 서현 작가의 '커졌다' 원화. ⓒ제주의소리

두 상황 모두 난장판이 벌어지지만 시작부터 내내 울상이던 아이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진다. 그리고 밝은 표정 그대로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통쾌한 상상력으로 치유한다는 표현이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서 작가 작품에 끌리는 이유는 스토리만이 아니다. 재치 있는 작화실력은 매력이 넘치다 못해 팡팡 터지는 수준이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적 상상이 담긴 다양한 표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작가는 ‘피식’하고 웃음 짓게하는 그림을 가득 넣어놨다.

눈물로 만들어진 바다 위 장면은 이번 전시의 백미. 방주에 구멍이 뚫려 ‘멘붕’ 온 노아와 동물들, 둥둥 떠다니면서 목욕하는 선녀와 나무를 힘겹게 붙잡으며 선녀를 쳐다보는 나무꾼, 자신의 간을 손에 쥐고서 거북이 등에 타고 이동 중인 토끼 등 각각의 캐릭터들은 역동적인 포즈와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보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커졌다'에서는 예수, 부처, 마호메트, 단군 등 각 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익살스럽게 배드민턴을 치면서 웃음을 선사한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꼬박꼬박 만화를 챙겨보는 기자 역시 그림을 보면서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고 서 작가가 마냥 가볍게만 그린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원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구도, 색감, 연출 모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우연히 발견한 원화 속 메모 내용(그저 그런 만화스타일로 그림을 끝내지마라)은 재미와 내용을 모두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의 다짐일 것이다.

건물의 큰 기둥은 울보 주인공으로 변신했고, 눈물바다 파도는 커다란 종이로 세워졌다. 한 구석에서는 눈물바다를 영상으로 상영한다. 작품 캐릭터를 직접 그려보는 팝업카드, 소원 키재기 자 만들기도 준비돼 있다. 아이들이 놀기 딱 좋은 환경이다. 
IMG_0534.JPG
▲ 작품 전시물을 배경으로 뛰어노는 아이들과 어머니. ⓒ제주의소리
IMG_0516.JPG
▲ 서현 작가 작품 원화. ⓒ제주의소리
IMG_0529.JPG
▲ 체험 프로그램. ⓒ제주의소리
제라진 또한 이곳에 온 아이들이 맘껏 놀아주기를 바라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무언가. 잠시 쉴 때는 탄산수와 하귤로 만든 ‘제라진 하귤주스’를 마시면서 목을 축이자. 한 잔에 2000원이지만 맛은 가격보다 훨씬 좋다.

이곳은 지난해까지 단란주점이었다. 하지만, 간판만 그랬지, 8년째 빈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제주시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빈 점포나 집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빈집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변신의 대상으로 선택됐고, 2014년 9월 13일 제라진이 탄생했다. 단란주점을 그림책 갤러리로 바꾼 이들은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 제주’다.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은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림책미술관을 지역에 만들어보자며 뭉친 시민단체로 현재 제주, 서울, 청주에 구성돼 있다. 

특히 제주는 세 지역 가운데 유일하게 전용 공간(제라진)을 마련하면서 제주도민들의 문화 저력을 뽐냈다. 신수진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 제주 사업팀장은 “그림책만을 전시하는 갤러리는 전국에서 제라진이 유일하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신 팀장은 “제라진의 콘셉트는 '맘껏 뛰어노는 공간'이다. 전시 작품 뿐만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그림책, 저학년부터 고학년, 성인도 볼 수 있는 그림책도 다수 구비하고 있다”며 망설이지 말고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 아이와 함께 제라진을 찾아가자. 땀을 식히면서 흥미로운 그림책도 읽으니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격이다. 그러다 동문시장과 중앙로상점가도 들러 장도 보고 음식도 먹고, 땅거미가 꺼지면 아이 손을 잡고 탑동바다를 구경해보자.

길이 딱딱 뚫리고 세련된 주택과 건물이 즐비한 동네도 좋지만, 그곳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매력을 원도심은 지니고 있다. 제주시민들이 아직 모르는 멋진 장소들이 원도심에는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제라진도 그 중 하나다.

그림책갤러리 제라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쉰다. 별도 직원 없이 시민모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순번 근무를 한다.

문의: 064-757-2014, http://gerazine.blog.me.
IMG_0515.JPG
▲ 서현 작가가 원화에 남긴 메모.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