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여명이 손을 맞잡고, 서귀포시 강정 해군기지를 둘러쌌다. 평화의 띠였다. 현장은 세상 그 어디보다 평화로웠다.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지난 27일 오전 10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동⋅서진으로 출발했던 참가자들은 6일만에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조우했다.

1일 낮 12시30분 해군기지 앞에서 참가자들은 서로를 반갑게 맞이했다. 일일이 손뼉을 마주치면서 인사를 나눴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며칠사이 새까매진 서로의 얼굴을 보고 '빵' 터지고 만 것이다. 

이어 참가자들은 동진과 서진으로 나뉘어 해군기지 정문 앞 길에 마주보고 섰다.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눈 뒤 동진과 서진은 갑자기 서로를 노려봤다.

각자의 행진이 더 대단했다고 기싸움을 벌였다. 은근한 신경전이었다. 그만큼 이번 평화대행진은 참가자들 스스로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서로 질 수 없다고 경쟁하던 동진과 서진은 어느새 손을 맞잡았다. 거대한 인간띠가 만들어졌다.

인간띠는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해군기지 정문 앞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기싸움은 순식간에 끝나고, 동진과 서진의 깃발 교환식이 열렸다. 

서진과 동진의 단장 조경철 강정마을회장과 강동균 전 회장은 각 대열을 이끌던 큰 깃발을 교환했다.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조 회장과 강 전 회장은 깃발을 힘차게 흔들었다.

이어 조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고된 행군이 드디어 끝났다. 5박6일동안 모두가 고생했다. 우리 모두 완주했다”

환호성이 강정마을을 뒤덮었다. 평화로웠다.

이어 강정 해군기지 투쟁 노래가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노인부터 청년, 어린아이까지 춤과 함께 완전히 하나가 됐다.

그럼에도 춤과 노래는 계속됐다.

고된 강행군에 물집과 부상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도 몸을 들썩였다. 작렬하는 태양보다 분위기가 뜨거웠다.

고권일 강정마을 부회장(해군기지반대대책위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일본 오키나와 얘기를 꺼냈다. '1%로도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격려의 메시지였다.

그는 “오키나와 주민들도 군사기지 반대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오키나와도 평화대행진이 있는데, (그 역사가)30년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오키나와 주민들 만의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10만명이 모여 오키나와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키나와는 일본 인구의 1% 정도다. 그들은 계속된 싸움으로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시의원을 선출했고, 시장을 뽑았다. 이젠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 우리나라의 1%다. 평화대행진이 앞으로 계속된다면 제주라는 1%가 우리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목청을 돋웠다. 

고 부회장은 “오는 3일이면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3000일을 맞는다. 앞으로 6000일, 9000일...그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참가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응원의 말이 들려왔다.

“내년에 봐요”

유난히도 무더운 2015년 여름. 뙤약볕 아래 5박6일동안 제주도를 걸어서 한바퀴 돈 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5시 '강정 해군기지 투쟁 3000일 문화제'를 끝으로 모든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