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평화봉사단(단장 강상철)이 지난 2006년 창립한 이후 매년 <아시아협력프로젝트>를 추진해오고 있다. 올 여름엔 ‘대초원의 나라 몽골’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 지난 8월22일부터 30일까지 몽골 중하라 지역에서다. 이번 구성된 제9기 봉사단은 도민 공모를 거쳐 25명이 선발됐고 대학생 6명을 포함해 자연치유팀, 환경개선팀, 문화교류팀, 실무팀으로 구성됐다. 지난 7월초 확정된 단원들은 6회에 걸쳐 사전교육과 팀별 주 1회 이상 준비와 연습 시간을 가졌다. 제9기 제주평화봉사단이 초원의 나라 몽골에서 펼친 봉사와 칭키스칸의 땅 몽골 이야기를 총 10회에 걸쳐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양영길 시인이 본 몽골](8)서낭당 같은 ‘어워’ 오색 휘날리는 그곳에 기대어

방사탑과 동백꽃.jpg
▲ 이번 봉사대의 환경개선팀이 몽골 만달시의 지하로 벽에 현지 스텝들과 함께 그려 넣은 제주 방사탑과 동백꽃 벽화. 액운을 막아주는 방사탑과 제주사람들을 상징하는 꽃 동백이 몽골에 벽화로 탄생했다. /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자연치유센터’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밖으로 나와 보니 다른 팀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치유팀 단원들을 남겨두고 다른 팀원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동안 환경개선팀이나 교육문화팀이 활동하는 곳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하던 차였다. 

현지인에게 부탁하여 환경팀이 작업하는 곳을 들르게 되었는데, 가는 길에 아스콘 포장도로가 있었다. 100여 m밖에 안 됐지만, 며칠 동안 치유캠프와 베이스캠프를 오가는 길이 그냥 흙길이어서 포장도로를 접하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대부분 그냥 흙길이었고, 시멘트 포장도로는 거의 부서지고 깨지고 온전한 곳이 없었다. 이야기로는 영하 30~40도 겨울을 지나고 나면 남아나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겨울이 길긴 하지만 1~2월이 심하고 나머지는 그나마 견딜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4~5월 황사는 가장 힘겹다고 한다. 최근에는 황사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데, 올해의 경우는 7월초까지 했다고 한다. 

겨울과 황사기간이 혹독해서인지 유아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겨울엔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바람이 안 불 때는 영하 40도라는 추위를 실감나게 체감할 수 없지만, 반드시 모자를 써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 중에 울란바토르에서 모자를 안 썼다가 혈관이 터져 고생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지인.jpg
▲ 제주방사탑과 동백꽃이 화사하게 그려진 지하로를 따라 몽골 현지인들이 왕래하는 모습. 금방이라도 진한 동백 향기가 풍겨 나올 것 같다. /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벽화작업팀과 현지 봉사자.jpg
▲ 벽화 작업을 마친 환경개선팀과 현지 스텝들이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환경팀이 작업하는 곳은 너무 낯설었다. 역전에 이르는 지하통로였는데,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느라 많이 혼잡해 있어 나는 좀 어리둥절한 상태로 내려 들어갔다. 현지인의 안내로 지하통로 계단을 내려갔더니 환경팀들이 그려놓은 벽화가 화사한 빛깔로 반겨 주었다. 

하얗고 노란 벽에 ‘제주 방사탑과 동백꽃’이라는 주제로 지하통로 양쪽 벽, 좌우 합쳐 대략 70~80m는 될 것 같은 길을 환경팀과 현지 스텝,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손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방사탑과 돌담길을 컬러풀하게 그려 놓았는데, 처음에는 그냥 시멘트벽이었다고 한다. 

빨간 동그라미 속에 노란 점 몇 개를 그린 동백꽃이 돌담길을 따라 날리고 있는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으로 다가왔다. 새벽에 떨어진 동백꽃을 입으로 쏙 빨면 달콤한 물이 내 혓바닥을 달콤하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게는 아주 생생한 그림이었다. 몽골 중하라에 벽화를 통해 쌓고 피어난 제주 방사탑과 동백꽃. 이곳을 드나드는 몽골인들에게도 나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 보았다. 

내가 갔을 때는 힘든 작업은 거의 끝나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겨주었다. 아이스크림을 꽃다발 건네받듯 받았는데, 몽골에서는 처음 먹어보았다. 
지나가는 행인 중에 한국말을 하는 몽골인들도 있었는데, 한국 생활을 했다는 ‘어유나’(한국 이름 오유나)는 우리들을 아주 반가와 했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어워.jpg
▲ 몽골 만달시 사자바위를 배경으로 서 있는 '어워'. 오색천이 내걸린 어워에는 몽골 민초들의 숱한 애환과 염원이 깃들어 있다. /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만달시 ‘사자바위’의 ‘어워’에 쌓여가는 민초들의 염원

중하라의 마지막 저녁, ‘단원의 시간’에 사자바위로 갔다. 만달시를 대표하는 관광지라고 한다. 차량으로 20분 정도 달려간 곳에는 제주의 오름 높이만큼에서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만달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저물녘이라 햇빛에 눈이 부셔 도시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올라가는 계단 끝에는 ‘라마교’의 탑이 있고 그 옆으로 ‘어워’가 있었다. 사자바위 오른쪽에는 하얀 돌로 몽골의 휘장과 그 아래 ‘만달’이라고 몽골문자로 새겨 넣고 있었다. 

‘어워’는 우리나라 서낭당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염원하면 액운을 때어낸다고 한다. 중턱에 있는 어워까지 가서 보니, 나무기둥에 청색 황색 녹색 적색 백색 천을 두르고 돌을 쌓아 만들어져 있었다. 돌무더기 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지만 해체시켜 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돌무더기에는 주로 청색 천이 많이 얹어 있었는데, 두 개의 기둥이 있는 것들은 하나는 머리처럼 한 곳을 향하여 비스듬하게 놓이고 다른 하나는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두 기둥 사이에 긴 막대를 잇고 거기에도 5색 천을 묶어 놓고 있었다. 돌무더기 위에는 동전과 지전이 많이 놓여 있었으며, 자전거 바퀴, 부서진 지팡이, 못 쓰게 된 망원경도 있었다. 나도 천원 지폐 한 장을 올려놓고 잠깐 눈을 감았다. 

만달시 풍경.jpg
▲ 몽골 만달시 전경 /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노을 만달시.jpg
▲ 몽골 만달시 위로 넓게 펼쳐진 햐얀 구름이 저녁노을과 함께 한폭의 그림을 그려냈다. /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돌아오는 길에 서녘하늘의 구름은 흡사 원폭 구름 같아 셔터를 한참 눌렀다. 뒤돌아보니 사자바위에는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제주 같았으면 산이나 오름, 또는 봉이라는 이름을 가질 만한 높은 곳임에도 워낙 고산지대이고 보니 ‘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느라 ‘어워’ 근처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다른 단원들은 꼭대기까지 가서 더 넓은 초원을 마음껏 눈에 담고 내려왔다. 

저물녘이라 그런지 서늘한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땀을 흘리면서 올라가서 10분도 안 되었는데 금방 서늘해졌다. 그래서일까. 우리들에게 더위는 피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더위와 햇빛을 즐기고 누리는, 그래서 축복이고 자연의 혜택인 것 같았다. 남자들은 할 수만 있으면 웃통을 다 벗고 햇빛을 마음껏 누리려고 했다. 냉장고는 있었지만 냉수는 따로 없었고, 선풍기나 에어컨은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은 있었지만 아이스크림을 먹는 우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는 중하라 주민들과 체육대회와 문화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하라의 마지막 밤은 베이스캠프에서 자고 새벽 열차를 타야 했다. 새벽 3시에 기상 예정이다. 


어워에 기대어
        양영길 

몽골 고원
하늘이 더 가까운 초원의 고갯마루에
가다가 가다가 지질 때쯤
어워가 형형색색의 얼굴로 반겨주었다
파랑 노랑 빨강 하양 푸른 
오색 옷자락 휘날리며 
반겨주었다 

돌 한덩이 얹어 놓고 두 손을 모은다
고개 숙이고 눈은 감았지만
하늘 더 높이 더더 높은 곳을 향하여
침묵으로 외쳤다
대한민국 땅에서 흙을 밟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땅으로 달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