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주 항몽유적의 분포상과 문화콘텐츠화 방안

(1) 항파두성과 성내 항몽유적

항파두성은 제주 항몽유적 가운데 가장 중추적 위상을 차지한다. 제주 삼별초의 항몽활동, 더 나아가 고려의 대몽항쟁도 항파두성이 여·몽연합군에 의해 함락됨으로써 종식됐던 것이다. 이어 제주가 몽골의 직할령으로 들어갔고, 몽골족의 제주경영이 100여 년 동안 지속됐다. 항파두성은 제주가 한때나마 몽골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날에 와 항파두성과 그 주변 항몽 관련 유적이 ‘제주항파두리항몽유적지’라는 이름으로 1997년 사적 제396호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항파두성만이 존재감을 드러낼 뿐, 성내에 자리잡은 항몽 관련 유적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아니, 주목은커녕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현재, 항파두성의 성내 항몽 관련 유적은 확인되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대궐터’, ‘검성이왓’〔劍師田〕, ‘장군이왓’〔將軍田〕, ‘돌쩌귀’, ‘장털’, ‘기와가마터’, ‘안오름 망대’, ‘옹성물’, ‘구시물’ 등과 같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들에 대해 각각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대궐터’: 김통정 등 제주 삼별초 지휘부의 본영(本營)이 들어선 시설물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여기는 1973년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주변정리가 이뤄지는 한편, 1978년 ‘항몽순의비’도 세워졌다. 지금은 전시관과 관리사무소도 들어서 있고, 항몽순의비 외곽으로 凸자 형태의 돌담장이 70㎝ 폭으로 설치돼 있다. 통상, ‘내성’으로 일컬어왔었던 곳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궐터는 2011년에 시굴조사가 이뤄졌다. 그래서 다른 곳과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고급유물이 수습됐다. 곧, 상감청자의 접시·잔과 중국제 자기 등이 출토됐던 것이다. 특히, ‘고누놀이판’도 나왔다.

원래 ‘대궐터’라 함은 왕이 거처하는 궁궐이 들어선 곳을 말하나, 제주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제주 경우는 왕이 거처하던 궁궐이 지어진 적이 없었음에도, 속칭 ‘대궐터’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이들의 예로는 서귀포시 강정·서홍동의 ‘대궐터’도 들 수 있다. 이들 대궐터의 공통점은 주변 일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기와와 아울러, 고급 청자와 자기 등과 같은 상급유물이 출토되곤 한다. 그런 만큼, 제주 지역에서 속칭 ‘대궐터’라 함은 주변 일대에서는 가장 커다랗고, 위용스런 건물이 들어섰던 곳이란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겠다._#22 내성지의 대궐터도 항파두성의 17곳 건물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물, 또한 가장 돋보이는 고급유물을 사용한 시설물이 들어섰던 곳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대궐터는 제주 삼별초 지휘부의 본영이 설치됐던 곳이라 한다.

한편, 삼별초가 애초에 왕을 옹립했으나, 제주 삼별초가 항몽 활동을 전개할 때는 이들의 왕이 존재치 않았음을 유의해야 한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몽골과의 강화를 맺은 고려의 왕정, 곧 개경정부에 반기를 들고 새로이 삼별초정부를 수립했다. 이때 삼별초는 승화후 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항몽거점을 진도로 옮아갔다. 이후 온은 진도 삼별초가 항몽거점으로 삼았던 용장산성이 원종 12년(1271) 5월 여·몽연합군에게 함락될 때 무참히 살해되고 말았다. 곧, 김통정이 진도 삼별초의잔여 세력을 이끌어 제주로 들어오고, 이어 시작한 항파두성의 축조는 모두 승화후 온이 세상을 뜨고 난 다음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항파두성의 성내 대궐터 경우도 제주에서 통상적으로 일컫듯이, 왕이 거처하는 궁궐이 들어섰던 곳이 아니고, 성내에서 가장 커다랗고, 위용스런 건물이 들어섰던 곳이라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최근에 들어와 대궐터를 ‘궁성’으로 칭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마치 제주 삼별초에게 왕이 존재했음을 연상케 하는 용어로서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종전처럼 주변 일대에서 가장 커다랗고, 위용스런 건물이 들어섰던 곳을 뜻하는 대궐터라 하거나, 혹은 ‘대궐터’에 들어섰던 건물의 기능 및 역할과 관련해 총지휘자 및 지휘 본부가 있는 군영(軍營)을 뜻하는 ‘본영(本營)’이라 칭함이 어떨까 한다.

‘대궐터’ 외에도 군 막사, 물자 보관 창고, 무기고, 일만 민가도 항파두성내에 들어섰다. 이는 현재 발굴조사와 구전 및 지명을 통해서 확인되는 17개소의 건물지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항파두성내의 시설물은 좀 더 심층적이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발굴조사를 거쳐야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 ‘장군이왓’: ‘장수왓’이라고도 한다. 항파두성의 북쪽 지역이거니와, 현재 하귀로 이어지는 큰길의 동쪽 일대를 일컫는 속칭의 지명이다._#24 삼별초의 지휘소, 혹은 장수의 야영장이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195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장군이왓에 ‘장수항아리’, 곧 돌로 만든 항아리가 있었고, 삼별초 장수가 물을 담아 마시는데 이용했다고 한다.

• ‘돌쩌귀’: 내성 ‘대궐터’의 ‘순의문’ 앞 광장에 전시돼 있는 석제유물을 말한다._#25 애초, 항파두성 안팎에 산재해 있었다. 항몽유적지 정비 과정에서 수습해 현재의 위치에 모아두었거니와, 그 수가 10개에 이른다. 모두 현무암으로 거칠기는 하나, 다듬질 과정을 거쳤다. 원형으로 오목하게 파여 있는 홈들이 눈에 띤다. 문을 끼워 받쳤던 구멍이라고 한다. 곧, 항파두성의 4곳 성문을 달았던 밑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장털’: 북동 쪽 성벽 인접의 ‘안오름’ 일대와 남쪽의 ‘장털못’ 지역을 통틀어 ‘장털왓’으로 일컫는다._#26 2개소 건물지 구역과 1개소 가마터도 확인됐다. 이 지역은 동편에서 서편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한편, 항파두성의 성내에서 지대가 자강 낮은 곳으로 동북부 쪽 성내 물은 모두 모여들게 돼 있다. 자연적으로 연못이 형성돼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도 물이 고여 있었던 흔적과 아울러, 물이 남북 쪽의 작은 내로 빠져나가는 지점도 확인된다. 여기에서는 기와·도기 편이 수습되기도 했다.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면적의 규모가 9000㎡를 훨씬 넘는다. 그래서인지, 연못을 만들어 삼별초 지휘부가 배를 띄어 즐기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더욱이 김통정장군은 장털못 주위에 자당화도 심었다고들 한다. 자당화는 산수국을 일컫거니와, 제주에서는 ‘도체비꽃’이라 부른다. 또한 삼별초의 국화로 본다. 그래서 도체비꽃을 '망한 꽃'이라 해 집에 심지 않는다. 삼별초가 망했기 때문이다.

장털못 동쪽의 밭에는 감옥이 있었고, 여기에는 군법을 어긴 병사와 적의 포로를 가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지명도 속칭 ‘옥터’라고 한다.      

장털은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물이 가득 고여 있었는데, 토지를 활용코자 토성을 무너뜨리자 작은 골짜기가 돼버렸다고 한다. 이보다 50년 앞서 장털을 농경지로 이용코자 매립했고, 1950년대 한때는 저수지로 만들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제주 삼별초 경우는 장털의 물을 항파두성과 성내 건물의 축조, 생활용수 등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장털 일대는 삼별초와 관련해 무궁무진한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을 뿐 아니고, 성내의 건물배치·군사주둔 상황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드러날 만한 곳이라 하겠다. 그런 만큼, 2010년 들어와 시굴조사가 이뤄졌고, 앞으로도 계속 발굴조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_#27

• ‘기와가마터’: 항파두성 주변에는 기와를 굽던 가마 흔적이 각각 성안과 성 밖의 두 곳에 있다. 성안의 경우는 ‘장털’이라 칭하는 곳 일대에 위치한다._#28 여기는 자연경사를 그대로 이용해 축조했던 것 같다. 지형이 서쪽은 높고 동쪽은 낮다. 이 가마터에서는 많은 양의 기와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이들 기와는 항파두성 내외 건물에 주로 사용됐으며 성벽 담 줄기에도 일부 쓰였다고 한다.

 

• ‘안오름 망대’: 안오름은 성의 북동 편 성벽 가까이에 위치한 표고 186m, 비고 15m 정도의 자그마한 오름이다. 이름이 성안에 있는 유일한 오름이라는 데서 붙여졌다고도 하나, 그보다는 넓게 들린 구릉지 안에 있는지라 안오름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더 지배적인 것 같다. 정상부에 서면, ‘대궐터’ 주변을 제외하고는 동·서·북쪽의 바다까지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제주 앞바다는 물론이고, 서쪽의 비양도, 더 나아가 추자도 근해까지 오가는 선박들도 다 관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안오름 정상부에는 망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옛적부터 전해져 내려왔었다._#29

통상, 구전에 따른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반신반의하는 편이다. 안오름 망대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해왔었는데, 2010년 발굴조사를 통해 망루의 건물지가 확인됐다._#30 그동안, 안오름 정상부의 경우는 조망권과 관련해 망대가 들어설 만 곳으로 추정되어 왔었던 참에 망루의 역할을 했다고 보이는 시설물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또한 소형의 건물지도 드러났다. 여기는 망루 관련 부속건물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서는 기와 편과 각종 자기·도기 편도 수습됐다.

안오름 망대의 확인은 제주 삼별초가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군사활동을 벌였고, 이들의 규모도 상당수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삼별초군이 안오름 정상부의 망대에 올라가 제주 앞바다와 추자도 근해까지 오가는 선박들을 관망하며 보고했다고 상상해 보는 것도 허구가 아니라고 하겠다.

• ‘옹성물’: 항파두성의 삼별초군이 음용수나 생활용수로 썼던 용천수였다. 항파두성은 구릉 상에 축조됐고, 성내에는 음용수를 얻을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삼별초군은 본성 밖 용천수를 이용코자 반원형으로 보조성을 축조해 용천수를 보호함과 아울러, 이용했다._#31 기록을 통해서도 “(항파두)성 안에는 솟아나는 샘이 있어 크게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_#32 라는 내용이 확인된다. 여기서 말하는 성내의 샘물이 바로 ‘옹성물’과 ‘구시물’로 이해된다.

옹성물 경우는 성의 북쪽 ‘극락사’라는 사찰 안에 있는 샘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물줄기가 가늘지만 예전에는 세차게 솟아 흘렀다고 한다. 삼별초가 주둔할 때는 김통정장군과 귀족들만 사용했었다고 한다. 삼별초 몰락 후에도 근처 마을 사람들은 제사나 굿 등 집안에 정성을 드려야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편 옹성물은 이름이 옹성 안에 있다고 해 붙여졌다. 반면, 옹성물이 일찍이 ‘오생물’, 혹은 ‘오성물’[五生水]이라 일컬어졌음을 들고, 옹성물이라는 이름은 인위적으로 항파두성과 관련시켜 붙여졌다고 보기도 한다._#33 현재 두 개의 물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돌담울타리를 둘러놓는 등 잘 정비되어 있다.

• ‘구시물’: 항파두성 삼별초군이 음용수나 생활용수로 썼던 용천수였다. 성의 북동쪽 앞, ‘옹성물’ 동쪽 길가에 위치하거니와, 옹성물과 함께 성내에 있었다._#34 삼별초군이 항파두성을 쌓을 때부터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물을 최대한 활용코자 3칸의 물통을 두었다고 한다. 곧, 처음 칸은 마시는 물, 이어 순서에 따라 음식물 재료를 씻는 물, 빨랫물, 가축용 물로 구분ㆍ관리해 썼다는 것이다. 흘러 나간 물은 농업용수로 이용했다. 제주는 물이 귀했던 만큼, 물 관리에 철저했던 것이다.

삼별초군이 물의 보호를 위해 반원형의 보조성도 쌓았던 것 같고, 구시물이 들어선 동산을 ‘구시물동산’이라 일컫는다. 특히, 샘물이 솟는 곳에서 북쪽으로 2.5m 가량 내려간 지점에서 고려시대에 설치했다고 보이는 ‘목조구유통’이 출토됐다.

목재구유 경우는 사각의 테두리 각목과 곽 내부였는데 4개의 널판으로 구성돼 있었고 바닥 널판의 면적은 470×265㎝이었다고 한다. 목재판 밑은 널판 중앙부에 각목이 놓여 있었고 20㎝ 가량의 황색점토를 다져놓은 것으로 봐 고정된 구유였다. 1993년 2월에는 물통 북쪽에서 두터운 나무판자들도 발견됐다. 삼별초군이 물을 지키기 위해 설치했던 막사의 흔적으로 추정한다. 삼별초가 얼마나 중요하게 관리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한편, 구유는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이다. 이에 구시물 북편 목조구유통은 삼별초군이 설치·사용했으며, 구시물이라는 명칭도 구유의 제주방언에 해당하는 ‘구시’에서 따와 붙여졌다고 하겠다.

구시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으며 물맛이 좋아 상수도가 보급된 뒤에도 마을사람의 음용수로 쓰였다. 1928년 큰 가뭄으로 식수난을 겪었을 때 주변의 유수암, 광령, 장정 등지에서도 물을 길러왔었다. 한때는 마을청년들이 물 배급을 할 정도로 물을 길러오는 사람이 많았다고도 이야기한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시멘트로 정비돼 있고 정주석 모양의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으며 울타리도 둘러져 있다.

항파두성과 성내 항몽 관련 유적은 저마다 제주 삼별초의 항몽활동과 행적, 더욱이 제주의 역사와 경관 및 생태의 정체성도 엿볼 수 있는 스토리를 품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들 항몽 관련 유적에 대해 보다 더 이해를 넓히는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복원ㆍ정비 및 활용화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례로, 항파두성의 성내 항몽 관련 유적을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계해 순행하는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탐방객의 흥미와 탐구욕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로 꾸며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된다면, ‘제주항파두리항몽유적지’의 탐방이 현재처럼 1시간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루 내내 하더라도 시간이 빠듯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