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붉은 원숭이 해’ 띠 이야기…모성애·다산·장수·출세·벽사 상징 동물

설 명절과 함께 병신년(丙申年)이 밝았다. 붉은 원숭이의 해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아홉 번째가 원숭이다. 원숭이는 다산과 출세, 벽사(辟邪) 등을 상징한다. 원숭이는 영리한 데다 사람과 가장 닮은 면이 많은 동물이고, 특히 붉은 원숭이는 양(陽)의 기운이 넘치고 열정을 안고 있어 병신년에 태어난 인물은 관심 분야가 넓고 매사에 창의력이 넘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원숭이는 과거 우리 민족의 문화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됐다. 옛 사람들은 원숭이가 간사하고 잔꾀가 많다고 여겨 기피하기도 했다. 원숭이를 동작이 재빠르다는 뜻의 ‘재다’에 원숭이를 뜻하는 옛말인 ‘납’을 붙여 ‘잔나비’라고 낮춰 부른 것도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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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이지번 원숭이 불화. 사람의 신체에 원숭이의 얼굴과 팔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됐다.벽사(辟邪)를 상징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제주의소리

◇ 서유기 ‘손오공’ 친근…원숭이, 다산·장수·모성애 상징 동물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은 반수반인(半獸半人)로 묘사된 원숭이로서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손오공이 삼장 법사(法師)를 호위하기 전에는 구름을 마음대로 타고 여의봉을 휘두르며 천상의 신들까지 때려뉘고 제천왕이 되어 천도복숭아까지 멋대로 따먹던 망나니였다. 

그것이 관세음보살의 분노를 사서 굴속에 갇혔다가 비로소 삼장법사를 호위하도록 자비를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날뛰는 천성을 버리지 못하므로 말을 안 들으면 머리를 죄서 고통을 주는 쇠 올가미를 씌웠다. 

손오공은 그것이 두려워서 마귀를 물리치고 서쪽에서 불경을 얻을 수 있도록 끝까지 법사를 호위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행실을 참으로 절묘하게 묘사했다. 이처럼 우리 민족에겐 원숭이가 잡귀를 물리치는 수호의 힘을 지녔다는 믿음이 있다. 이 때문에 전통미술 작품 속에선 원숭이가 장수와 다산 등 좋은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작품인 ‘백자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국보 93호·사진7)’가 대표적이다. 탐스럽게 여문 포도 넝쿨 사이를 날렵하게 건너는 원숭이를 그렸다. 여기에서 포도알은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결국 포도알을 따먹는 원숭이 그림은 부귀다산(富貴多産)을 뜻한다.

속이 야무지게 여문 석류에 새끼 원숭이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매달려 있는 ‘청자 석류모양 연적’도 씨알이 꽉 찬 석류가 다산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역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로 만능 재주꾼이고, 자식·부부 간의 극진한 사랑은 사람을 뺨칠 정도이다. 각 지방마다 원숭이에 대한 의미 부여와 속설이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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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보 제93호 백자철화포도원숭이문항아리.(白磁 鐵畵葡萄猿文 壺). 조선 후기 철화백자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걸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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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송이와 넝쿨 사이를 원숭이가 날렵하게 날아 다닌다. 국보 제93호 백자철화포도원숭이문항아리의 원숭이 그림

◇ 조선왕조실록, "제주서 원숭이 길들여"…제주에선 ‘납날’ 낭 자르지 않아 

제주도에서는 원숭이날을 ‘납날’이라고도 한다. 특히 이날에는 나무(낭)를 자르지 않는다. 이날 자른 재목으로 집을 짓거나 연장을 만들면 좀이 많이 슬게 된다고 전해 내려온다. 전남에서는 원숭이날을 좋은 날이라 해서 이날은 노동을 줄이고 가무와 음주를 즐기는 곳이 많았다.

전북 부안에서는 정월 초하루와 같이 원숭이날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밖에 나가는 것을 삼가기도 한다. 즉, 이날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일어나서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비를 들고 부엌 네 귀를 쓸고 다시 마당 네 귀를 쓰는 등 수선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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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 토우. 잡스런 것을 쫓기 위해 만든 ‘잡상’이다. ⓒ제주의소리
경남 사천에서는 원숭이날은 귀신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외출을 삼간다. 부산 기장에서는 원숭이를 까불고 잔머리 잘 쓰는 짐승이라고 인식해 이날은 재수가 없는 날로 여겨 만사를 조심하는 등 각 지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아무튼 우리의 선조들은 원숭이가 한반도에 자생하지 않아 낯선 동물로 인식하면서도 민화, 토우, 무덤의 호석에 원숭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매우 친근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 전등사 추녀, 경복궁 추녀마루 기와에서 각각 원숭이 상을 볼 수 있다. 이밖에 회화, 도자기, 문방구, 인장과 탈춤까지 등 예상외로 다양한 곳에 원숭이의 흔적이 있다. 원숭이가 지닌 지혜와 재치를 본받고자 하는 조상들의 뜻이 숨어있는 게 아닌가 짐작된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는 원숭이를 길들이고 사육했던 기록이 있다. 물론 원숭이가 자생했다는 기록은 아니다. 인간에 의한 강제 방사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대왕 시절 원숭이를 제주에서 키웠다고 기록됐다. 세종 16년(1434년) 4월 11일, 세종은 전라도 감사에게 원숭이를 제주에서 정성스레 키우라고 지시했다.

세종은 “첨치중추원사 김인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원숭이 여섯 마리를 길들였는데, 지금의 이붕 목사에게 전해줬으니 출륙하는 사람이 있으면 명심하여 풀이 무성한 섬에 풀어놓은 후 사람들이 잡지 못하게 번식시키라”고 명했다.

2년 후 세종 18년(1436년) 6월 16일자에는 제주안무사 최해산이 원숭이와 노루를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김인과 이붕 제주목사 이후 한동안 원숭이가 제주에서 사육됐던 것으로 보인다. 

‘나비박사’ 석주명이 쓴 <제주도 수필>에도 원숭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태조 3년(920) 일본에서 국내로 원숭이를 들여온 이후 연산군(1494~1506) 시절까지 꾸준히 수입했고, 제주에서도 꾸준히 번식을 시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석주명이 어떤 문헌을 인용해 태조 3년에 원숭이를 제주로 들여왔다는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엔 섣부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석주명의 <제주도수필> 내용 등을 비춰보면 제주도에 한때 원숭이가 살았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제주에 온 원숭이들의 번식 성공 여부는 기록에 확실하게 남아있지 않아 토착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닌지 추측될 뿐이다.

◇ “잔나비도 낭에서 털어질 때 싯나”, 자만하지 않는 새해 되기를… 

현재 제주에는 제주고등학교에 교육용으로 사육 중인 원숭이 7마리와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의 퍼시픽랜드에서 관광객들에게 공연하는 원숭이 3마리 등이 있다.   

그러나 제주고등학교 역시 동물자원과(옛 축산과)가 폐지되면서 학교 동물원에 사육 중이던 47종 275마리의 동물들은 대부분 보금자리를 옮겼고, 유일하게 긴꼬리원숭이 7마리만 남아 오는 2017년 전북 정읍시에 문을 열 예정인 국가영장류자원센터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다. 

▲ 제주고등학교에서 사육 중인 긴꼬리원숭이. 내년 전북 정읍에 문을 열게 될 국가영장류자원센터로 보금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원숭이는 모성애·다산·장수·출세욕 등을 상징한다. 원숭이가 12지(十二支)에 자리하고 있는 뜻은, 재주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소인배가 되기보단 노력에 노력을 더하는 사람이 되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바라는 부와 명예가 뒤따를 것이리라. 

제주에는 “잔나비도 낭에서 털어질 때 싯나”(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자기에게 아무리 자신 있고 쉬운 일도 지나치게 자만하면 실수할 수 있다는 교훈이 담긴 속담이다. 이 속담을 가슴에 새기고 붉은 원숭이해의 힘찬 기운으로 무탈한 2016년과 기쁜 설 명절 아침을 맞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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