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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긴 상흔, 역사 자원으로 활용할 방안은?

김태일 교수 news@jejusori.net 2016년 04월 09일 토요일 10:00   0면
[제주 근대건축 산책] (23) 4.3사건 당시 학교 피해와 흔적들 下 - 문헌자료에 근거한 피해학교시설의 복원

#. 문헌자료로 본 일제강점기 학교건축의 특징분석

국가기록원의 일제강점기 학교도면아카이브 자료 분석 

4․3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학교의 당시 이미지를 복원하는 것은 토벌대 주둔 및 주민수용소, 학살 장소로 이용되었던 시설로서의 학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기록으로 정리해 둔다면 향후 역사교육자료로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로써의 가치 때문에 의미 있는 작업이다.

4․3사건은 1948년 4월1일을 기점으로 발생된 비극적인 역사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학교는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학교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제강점기의 학교건축도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학교도면은 국가기록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공하고 있는데 제주도 학교건축물에 대한 자료는 전무한 상태이다. 그러나 당시 행정체계를 고려할 때 제주도는 전라도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점과 당시 대부분의 공공건축물은 표준도면에 따라 학교건축물을 건축했다는 점에서 국가기록원이 제공하는 광주와 전주의 학교도면을 참고하는데 큰 오류는 없을 것으로 판단해 이들 자료를 중심으로 당시의 학교의 공간과 구조, 재료 등을 유추하여 도면화 작업을 했다. 

그림1와 그림2은 국가기록원의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콘텐츠에서 제공하고 있는 광주사범학교부속초등학교 공작실신축공사 설계도와 전주사범학교부속 국민학교공작실 신축공사설계도로써 지붕 등에서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지붕은 목조트러스 구조에 기와 등으로 마감됐다. 내부는 목재로 천정을 마감했고, 바닥은 콘크리트 기초위에 목조기둥을 세워 바닥을 형성하고 벽체는 기초위에 세워진 목조기둥 사이에 목재를 사용하여 뼈대를 만들어 흙 등으로 채웠다. 내부와 외부는 목재로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건축의 외장마무리와 동일한 수법을 적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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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광주사범학교부속초등학교 공작실신축공사 설계도(출처=국기기록원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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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 전주사범학교부속국민학교공작실신축공사설계도(출처=국기기록원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콘텐츠). 

이와 같은 구조형식은 1941년-1945년 도면으로 추정되는 대구사범학교 부속국민학교교실 기타증축공사 설계도에서도 교실의 바닥 및 지붕형식을 잘 파악할 수 있다(그림3). 특히 1926년에 지은 근대 건축물인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에 있는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교사(등록문화재 제57호)와 비교한 결과 외부 마감이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고 도면화 작업에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그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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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3] 대구사범학교부속국민학교교실기타증축공사설계도(자도,평면,소옥복,지형복 1941년-1945년추정) (출처=국기기록원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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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4] 등록문화재인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교사의 전경(출처=네이버 대한민국여행사전).

일본식 목조양식의 교실건축과의 비교

구체적인 지붕과 기둥의 구조적인 결합방식의 특징과 교실의 내부 및 외부의 마감형태 등을 파악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의 일제강점기 학교도면아카이브 자료와 근대목조 교실의 양식과 비교하여 특징을 도출해 도면화 작업에 참고하였다. 건축도면자료 집성집에서 제시하고 있는 일본식 목조교실의 기초-1층과 2층바닥-지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지붕 등 상세한 부분에 있어서 목재의 결합방식에 차이는 있으나 트러스의 구조 및 벽체 구성 방식 등에 있어서 전반적인 형식은 국가기록원의 일제강점기 학교도면아카이브 자료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림6). 특히 교실외부 마감의 경우, 건축도면자료 집성집에서 제시하고 있는 마감형식으로 볼 때 목조기둥을 세우고 사니에 보조 목조뼈대를 세운 후 흙으로 채워 초벌정도로 마감한 후 누름대 비늘판으로 마감하는 형식으로 마무리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그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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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5] 건축도면자료집성의 목조교실양식 사례(출처=산업도서편집부(1974),건축구조Ⅰ, 산업도서출판공사,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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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6] 목조 트러스의 기본구조(출처=산업도서편집부(1974),건축구조Ⅰ, 산업도서출판공사,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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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7] 그림 목조건축의 누름대 외부마감형식(출처=건축자료연구회편(1984), 건축설계자료집성10, 보성출판사, P73).

#. 제주지역 피해학교사진으로 본 건축양식 특징 비교

앞서 전라도지역의 학교도면과 문화재로 등록된 학교건축을 중심으로 건축의 양식에 비교 정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제주지역 학교건축의 특징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졸업앨범 등에 남아 있는 건축 관련 사진을 중심으로 건축외관과 재료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비교분석사례는 고산국민학교, 북촌초등학교, 서귀초등학교, ,신촌초등학교, 중문국민학교 5개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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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국민학교는 구조체는 목조이며 지붕은 기와형식의 교실이다. 총6학급규모의 학우에 출입구가 있었고 운동장에 집결해 있는 학생규모로 볼 때 고산은 규모를 제법 컸다는 것을 추정할수 있다. 학교건축의 양식은 기본구조는 목조로 외부는 누름대형식의 마감, 지붕은기와를 사용한 모임지붕형식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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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8] 서귀포공립보통학교 목조 형식. ⓒ김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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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9] 서귀포공립보통학교 목조 및 내부, 외무마감형식. ⓒ김태일

서귀국민학교의 경우 2008년 발간된 제주도 교육청의 「4․3사건 교육계 피해조사 보고서」에 교육시설의 규모와 건축적 특징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 않으나 지난 2011년 8월 31일 제주도정뉴스에 소개된 자료에 의하면 서귀국민학교는 1920년 2월 1일 인가되어 신입생 197명으로 개교하였는데 원래 개교명칭은 서귀포공립보통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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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0] 서귀국민학교의 전경 이미지와 출입구 이미지. ⓒ김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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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1] 교실내 이미지. ⓒ김태일

이후 서귀북공립심상고등소학교, 서귀북공립국민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50년 6월 1일에 서귀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당시의 조회 사진을 통해 개략적인 학교시설의 형태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중앙에 출입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좌우대칭형식으로 좌우에 각각 3-4개 교실이 배치되는 편복도형식의 학교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주요 구조체는 목조이고 지붕은 모임기와지붕형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신촌초등학교와 중문초등학교도 학생수에 따라 학교시설의 규모는 상이하지만 거의 유사한 형태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흥미있는 점은 대부분 학교의 중앙 출입구 부분의 양식이 박공형식을 갖는 반면 신촌초등학교의 경우 모임지붕형식에 학교본체 중앙부분이 2층구조로 되어 있는데 용도는 분명하지 않다. 

제주도 교육청의 「4․3사건 교육계 피해조사 보고서」에서 제시된 피해학교의 하나인 서귀국민학교를 대상으로 도면화작업을 하였다. 서귀국민학교는 2연대가 주둔하였던 학교이며 학교의 규모는 3개교실정도로 작은 규모의 학교로 추정된다.

#. 나가며

혼란의 시기였으며 동시에 근대화로 이행해 가는 변혁의 시기였던 1940년대와 1950년대는 제주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잊힌 시간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4·3사건이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인적 물적 피해를 입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제주사회는 물질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 대립과 투쟁에 가치관도 크게 변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전쟁은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제주사회에 또 다른 변화를 안겨준 사건이기도 했다. 피난민이 제주로 몰려오게 되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주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과 지원정책이 추진되었고, 미약하나 4․3의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정책적 노력도 시도되었다. 예를 들면, 난민정착사업에 의한 난민주택과 후생주택, 그리고 4․3 원주민 복귀주택 등이 좋은 사례이다.  

4·3 사건이 남긴 상혼의 흔적은 은식처를 비롯해 주둔지, 희생터 등 수많이 남겨져 있다. 특히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피해학교의 기록들과 상혼의 흔적들은 현재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장소이자 공간이기도 하며 지워지지 않을 4·3사건의 역사적 흔적들이기도 하다. 학교시설이기에 더욱 살아있는 교육적 자료로 의미 있는 역사 자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유적 및 건조물에 대한 다양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필요 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4․3사건 피해학교를 비롯한 관련유적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여 보존하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조물을 생동감이 있는 평화교육시설물로 활용할 경우, ①가능한 한 인위적인 건조물을 새롭게 건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②이념적인 건축물 건립이라는 이름아래 거대하고 비인간적인 평화시설물이 되지 않도록 평화교육시설물에서 요구되는 인간적 숭고함과 엄숙함이 상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③평화교육시설물 건립에 따른 효율적인 전시계획수립을 위해 적어도 수년 전부터 수집 및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건축자료연구회편(1984), 건축설계자료집성10, 보성출판사
산업도서편집부(1974),건축구조Ⅰ, 산업도서출판공사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2008), 「4․3사건 교육계 피해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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