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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영웅 김동수씨가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세월호의 진실은 내가 꼭 밝힌다”

“제 휴대전화에 적힌 좌우명입니다. 저는 노란리본도 세월호 배지도 달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가 세월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밝히는데 여러분이 함께해 주십시오”

수척한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은 파란바지의 의인 김동수(51)씨의 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무 그늘을 벗 삼아 앞 마당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세월호참사대응 제주대책위원회와 기억공간 리본(re:born)은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생존자를 대표해 참석자들 앞에 선 김동수씨는 2년 전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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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영웅 김동수씨가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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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대응 제주대책위원회와 기억공간 리본(re:born)은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김씨는 “나는 살아있는 시체다. 가족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나쁜 생각을 할 때 가족들이 이를 막는 일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세월호에서 살아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본 그 광경과 팽목항에서 모습이 떠오른다. 그 당시 해양수산부는 무관심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씨는 “학생들이 나라의 구조를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국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느냐. 해경 특공대는 빈 몸으로 왔다 빈 몸으로 갔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 자리에 생존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얘기를 꺼내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생존자들도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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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대응 제주대책위원회와 기억공간 리본(re:born)은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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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대응 제주대책위원회와 기억공간 리본(re:born)은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또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4.3사건도 50년 이후에야 진실이 외부에 알려졌다”며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 모든 가족에게 돌려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8분 세월호 침몰이 시작되자 선내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감고 단원고 학생들을 끌어 올려 구조하다 부상을 입었다.

보건복지부는 1년이 지난 2015년 6월18일 2015년도 제2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김씨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이후에도 김씨는 트라우마를 겪고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추모공간 ‘기억공간’은 지난 2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추모하는 행사를 이어간다. 이날 행사는 ‘두 해 스무네달’를 주제로 체험행사와 문화공연이 펼쳐졌다.

16일에는 제주시청 상징탐 앞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그 봄날을’을 주레로 세월호 참사 2구기 추모문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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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지윤씨가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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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대응 제주대책위원회와 기억공간 리본(re:born)은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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