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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의 ‘특별자치’는 유효한가

강정홍 junghong43@naver.com 2016년 06월 21일 화요일 08:10   0면
<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10년 동안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들

‘두 개의 물음’과 ‘하나의 답’

역시 시간은 변화를 동반합니다. ‘진정한 현재’는 비판적 의식에 투영된 상(像)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이른바 ‘특별자치’를 철저히 타자화해 따져봐야 합니다. 오래된 스크랩을 뒤져 ‘그 당시에 했던 이야기’ 중에서 ‘오늘에 다시 말하고 싶은 대목’을 되풀이 하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언감생심 ‘회고적 감상’은 주제넘습니다.  

이른바 ‘특별자치’를 해석하는 방식은 하나의 ‘개념적 틀’에 의해 규정됩니다. 어떤 개념적 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개념적 틀을 ‘참여의 원리’에 의한 ‘주민자치의 확대’에 둡니다. 그게 바로 판별기준입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특별해도 이미 특별한 게 아닙니다. 거기선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선 ‘특별’과 ‘자치’를 나눠 생각해야 합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저는 여기서 두 개의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왜 나는 남과 다른가?’, ‘왜 나는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는가?’ 전자는 ‘특별의 의미’에 대한 물음입니다. 후자는 ‘자치의 의미’에 대한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이른바 ‘특별자치’가 ‘특별하기 위해선’ 독립과 자율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특별자치’의 두 개의 축

‘왜 나는 남과 다른가’는 ‘자기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제주특별법 제1조에 명시된 ‘제주도의 지역적 역사적 인문적 특성을 살리고…’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그건 독립성의 문제입니다. ‘왜 나는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는가’는 ‘자기결정성’의 문제입니다. 이것 역시 법 제1조에 있는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그건 자율성의 문제입니다. 여기서의 ‘나’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이른바 ‘특별자치’의 두 개의 축입니다.

‘자기정체성’은 그의 행위가 드러나는 ‘모든 것의 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갖지 않고서는 ‘자기결정성’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역시 대답은 물은 곳에 있고 물음은 대답한 곳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답은 이외로 간단합니다. ‘자치’를 축소하고 ‘자기결정권’을 논할 수 없습니다. ‘자기결정권’없이 ‘자기정체성’은 형성되지 않습니다. ‘자기정체성’이 없는 자치제도는 무의미합니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합니다. 

이른바 ‘국제자유도시’라는 것도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능력의 계발을 전제로 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지역사회개발은 ‘지역사회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는 지역주민들의 자아의식’을 관념적 토대로 합니다. 여기서 ‘국제적 기준…’ 운운은 정말이지, 가당찮습니다. 그건 ‘변두리 콤플렉스’일 뿐입니다. 이 ‘경쟁시대’에 믿을 건, 역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주민들의 창조적 활력’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국제자유도시’가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개발’이 되도록 ‘자주적 결정’과 ‘행위적 책임성’이라는 지방자치의 민주적 원리를 전면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퇴영의 요인’과 ‘자기 파괴적 속성’

그러나 아쉽습니다. 이른바 ‘특별자치’는 당초부터 그 자체에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거칠게 이야기해서, 그 하나는 ‘태생적 퇴영의 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 파괴적 속성’입니다. 그게 바로 일부에서 한사코 ‘특별하다’고 우기는 ‘특별함’입니다. 그건 오늘날의 우리들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태생적 퇴영의 요인’은 역설적이게도 지나친 낙관주의의 산물입니다. 그건 ‘지방정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기초로 합니다. 지방행정계층을 단층화하고, 지방행정을 강화하면, 지역주민을 위한 지역사회개발이 손쉬울 것이라는, ‘최선의 지방정부 구성’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건 대단히 순진한 생각입니다. 행정계층의 단층화는 또 다른 권력의 집중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독선과 독주, 그리고 부패를 부릅니다. ‘최선의 지방정부 구성’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 이상으로 ‘최악의 지방정부’가 구성될 수도 있습니다. 잘 뽑는다고 하지만, 뽑아놓고 보면, 엉망인 때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툭하면 ‘지사의 능력과 청렴성’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바로 그것을 말함입니다.

‘자기 파괴적 속성’은 반면에 회의(懷疑)의 산물입니다. 그건 일부 기초의원들의 ‘눈꼴사나운 행태’에 실망한,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지나친 비관주의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변함없이 ‘풀뿌리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아예 시군의 자치권을 무참하게 거세해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입니다. ‘더러운 목욕물을 던지면서 아이까지 던져버린 꼴’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가슴 치는 특별자치의 한계’입니다.

행정계층의 단층화는 또 다른 권력의 집중

시군을 폐지해 그 자리에 그대로 이른바 ‘행정시’를 두는 것은 시장 군수를 뽑고,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주민의 투표권’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건 가히 혁명적입니다. 주민의 투표권을 바탕으로 한 자치조직권과 자율권의 확보 없이 지역사회 내부에서만 자율권과 자발적인 참여를 권장하는 것은 상호모순입니다. 광역자치권을 확대했다고 하여 기초자치권을 없애는 것도 논리적 모순입니다. 행정계층의 단층화로 주민들의 지방행정에의 접근을 쉽게 한다고 하지만, 주민들의 지방행정에의 참여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방법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것 역시 한낱 허위의식일 뿐입니다. 형식은 실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단계별 제도개선’이라는 이름으로 4천5백여 건의 권한과 사무가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됐다고 하지만, 그 의미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른바 ‘특별자치’의 성과를 따질 때마다 왜 그것부터 들고 나오는지, 저는 그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큰 숫자는 주민을 놀라게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같은 숫자의 사용에서 그 어떤 논리적 정당성도 찾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민들 입장에선 그건 통치의 영역일 뿐, 자치는 아닙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건 ‘지사의 권한’의 문제입니다. 행정계층의 단층화와 함께, 지역주민들의 극복해야 할 권력의 또 다른 집중입니다. ‘제왕적 지사’라는 말도 그래서 우연이 아닙니다.

지역사회발전은 주민들의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자기결정의 역동적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치 확대를 외면하고 ‘자기 결정’을 논할 수 없습니다. 지방행정 조직체계를 능률성과 효율성이란 명분 아래 ‘비용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방자치를 ‘지역개발’과 등치시켜 판단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지역의 인습과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의 과잉’은 오히려 우리 삶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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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7월 1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참여의 원리’에 의한 ‘주민자치의 확대’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고쳐 입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아깝더라도 내다버릴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이른바 ‘특별자치’도 예외가 아닌 듯싶습니다. 우리를 지배해온 그 완고한 사유의 바리케이드를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덫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국제자유도시’라는 것도 ‘행정규제의 폭넓은 완화’로 ‘제주의 땅’을 세계시장에 내놓아 얻어지는 것이라면, 반드시 재고돼야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역시 ‘참여의 원리’에 의한 ‘주민자치의 확대’입니다. ‘참여’는 단순히 공적인 합의를 제공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민자치이고,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을 산출하는 ‘사회정치적인 실천의 산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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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 강정홍.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물론 지방행정체제가 그 지역의 역사적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조건에 지나치게 구애될 때는 이상(理想)과 미래를 망각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현실과 지역주민들의 염원을 무시한 ‘정치적 설계’가 지나치게 강조될 때는, 그 제도는 미래의 실효성을 상실하고, 별개의 의미와 기능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논의해온 ‘최악의 지방정부’, ‘제왕적 지사’ ‘의회의 관료화’ 등등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변한 건 ‘개발의 이름’으로 파괴된 우리들의 아름다운 자연뿐인 듯싶습니다. 덩달아 인문환경마저 거칠어지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 강정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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