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보궐선거 앞둬 5백만 부산표심 앞세워 정부 압박

2005APEC 정상회의 유치경쟁이 부산 승리로 끝난 가운데, 그 결과와 선정과정의 의혹을 떠나 부산의 유치전략은 열정을 넘어 "해도 너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황 변화에 따라 수시로 논리와 태도를 바꿨고, 은근히 지역감정까지 부추키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언론은 제주에 대해 근거가 희박한 헐뜯기로 '네거티브 전략'에 앞장섰다. 한 언론이 사설로 주창했듯이 자치단체와 정가, 지역언론, 시민단체가 한마디로 APEC 유치에 '올인'했다. 말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은 올인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부산은 심지어 상황이 불리해지자 심의일정까지 연기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결과론이지만 어쩌면 APEC 선정 심의위가 부산의 연기요청을 받아들일 때부터 승부는 났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자.

4·15총선 전까지만 해도 부산은 조속히 개최지를 결정하라고 재촉했다. 개최지결정이 총선 이후로 늦춰진다면 정상회의 준비가 촉박하다는 명분이었으나 지역 언론은 '총선연계설'을 집중 부각했다. 특히 지역 정치권에선 "부산에서 표를 얻으려면 APEC를 부산에 달라"며 노골적으로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부산의 이런 움직임은 오래전에 시작됐지만 멀리 갈 것도 없다.

'3·12탄핵의 주역'으로 온 국민의 분노를 산 박관용 국회의장은 지난 2월16일 서울지역 출향인사 간담회에서 "부산이 아니면 안된다"며 '모 아니면 도'식의 극단논리를 폈다.

같은달 24일에는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이 총선 공약으로 부산 유치를 내놨다.

청와대서 '분산개최설'이 흘러나온 3월8일 부산시와 부산유치위는 "분산돼도 정상회의는 부산에서 열려야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3월24일 부산시의회는 '대정부 건의문'을 통해 "부산시가 최적지인데도 일부 시·도가 뒤늦게 뛰어들어 인적·물적 낭비가 빚어지고 있다"고 경합도시를 자극한 뒤 "각종 인프라에서 절대 우위인 부산을 선정하라"고 다그쳤다.

한나라당 부산시당이 총선공약으로 부산유치를 발표한 것은 3월29일이었다.

이랬던 부산이 총선후 완전히 태도를 바꾸었다.

틈만 나면 정부를 재촉하다가 돌연 '개최지 결정 연기' 주장을 들고나온 것이다. 부산에서 여당이 패배한 반면 제주는 압승을 거둔 상황을 의식한 카드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총선 결과를 개최지 선정과 연결지으려 한다는 근거없는 '정치적 고려설'을 집중 제기했다. 정치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객관적 기준에 따라 개최지를 선정하라는, 그럴듯한 요구였다.

한편으론 부산시장, 경남지사를 뽑는 '6·5보선'을 무기로 꺼내들었다. 이쯤되면 부산이 도대체 뭘 요구하는지 헷갈릴 판이다.

4월19일. 개최지 결정을 위한 선정위 4차회의 하루 전날이었다. 오거돈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선정위 이홍구 위원장을 만나 부산개최의 당위성 설명과 함께 연기 요청을 했다. "정치적 고려가 감안될 경우 부산이 불이익을 본다"는게 이유였다. 뒤집어 보면 부산이 비교열세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같은날 부산유치위도 성명을 내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APEC개최도시를 결정하라"고 가세했다.

20일에는 한나라당 부산 당선자들이 외교통상부를 방문, 제주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최도시로 결정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은 선정위도 들러 부산지역 당선자 17명 명의의 촉구문을 통해 "부산유치가 불가피하다"고 힘을 과시했다.

역시 같은날 우리당 부산시당도 성명을 내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선정'을 주문하면서 동시에 "동남경제권 공동이익과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지향하는 참여정부의 국가발전전략 차원에서도 부산개최는 당연하다"는 이중논리를 폈다.

부산의 전략은 주효했다. 개최지 결정이 6일 뒤로 늦춰진 것이다.

오히려 부산의 집중공세는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부산지역 당선자들은 22일에도 외교통상부·선정위를 방문 "선거결과에 따른 정치적 배려를 감안하면 안되며, 개최능력 등 객관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또 이날 정동영 의장과 간담회를 가진 부산지역 비례대표·지역구 당선자들은 "부산으로 가느냐, 제주로 가느냐에 따라 재·보궐선거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압박했으며, 이튿날 부산지역 여·야 당선자 16명은 "국익차원에서 부산개최는 당연하다"고 포위망을 좁혔다.

22일에는 또 부산당선자들이 외교통상부와 준비기획단을 찾아가 "부산이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말했다가 정부 관계자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촌극이 빚어졌다.

겉으론 '객관적 결정'을 강조하면서도 은근히 정치적 압박도 가하는 '이중전략'을 편 것이다.

24일에는 울산시와 경남·북이 청와대와 외교통상부에 공문을 띄워 부산유치에 힘을 보탰다.

입에 맞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동원했다.

지역언론은 한술 더 떴다.

총선전 '조기결정론'을 부르짖었던 지역언론은 철저하게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했다.

회의·숙박시설, 공·항만등 인프라 면에서 제주가 절대열세라는 그들의 주장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지역 언론은 심지어 기상이변때 각국 정상들이 '섬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고립설'까지 퍼뜨렸다.

특히 한 신문은 사설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을 꺼내든뒤 스스로 얼굴을 붉히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듣기가 민망한 것은 이번 4·15총선 결과 제주도가 열린우리당에 많은 지지를 보내주었으므로 APEC 회의 개최도 제주로 결정해 '보은'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이다.

정말 황당한 논리이다. …중략…. 예컨대 제주도는 공항 안전시설에 문제가 있고 무엇보다 정상회담 장소로 제기한 모 호텔이 너무 협소해 사실상 '부적합'에 가까운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APEC 유치에 '올인'한 부산은 이날 저녁 샴페인을 터트리고 떡을 자르고 한마디로 잔칫집 분위기다. 그러면서 미안했던지, 끝까지 경합을 벌인 제주에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어쩌면 '쇼'나 다름없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일련의 상황을 제주도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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