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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노대원 교수 news@jejusori.net 2017년 04월 10일 월요일 08:53   0면

[BOOK世通, 제주 읽기] (52)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노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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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원제 : Unflattening) 배충효 옮김. 책세상, 2016년.
만화책이자 박사학위 논문. 서로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분류법이 모두 가능한 책. 닉 수재니스(Nick Sousanis)의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는 그것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수재니스가 컬럼비아대학교에 교육학 박사학위로 제출한 만화 형식의 논문으로, ‘하버드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책’으로도 알려졌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도 박사학위 논문으로 만화를 심사하여 통과한 것은 최초라고 하니 이 책의 독특한 위치를 잘 알만 하다. 

연구 논문에 대한 형식적인 규범에 얽매이는 우리 학계에서는 감히 만화 형식으로 논문을 써낼 것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신선함을 넘어선 파격성이 이 책을 대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더 큰 이유이다. 물론 수재니스가 만화로 논문을 심사하여 통과하는 과정 역시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역시 논문의 규범적 형식이 이미지보다는 텍스트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위계의 고정관념과 싸우는 것이 이 논문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인 것이다. ‘다른 사유’와 ‘입체적 사유’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그저 그것을 내용적으로만 다루기보다는 ‘다른 쓰기 방식’을 통해 형식적으로도 실현해내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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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62면.

이를테면 그는 만화 형식보다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한 페이지(62면)를 의도적으로 만화들 사이에 끼워두고 있다. (논문 심사 과정에서 적어도 한 페이지는 텍스트여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 페이지는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전통적 위계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이 페이지에서 ‘물속 굴절 현상’은 그림에 반드시 캡션을 넣어야 한다는 박사과정 사무국의 지시에 따른 것이지만, 그에 따라 오히려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도드라지게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책들과 다르게 참고문헌 이외에 ‘작가노트’에서 이미지에 참조했던 만화, 회화, 영화 작품들을 제시한다. 텍스트들이 새로운 사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미지들도 새로운 사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오히려 이미지로 사유하는 방법을 더 잘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를 읽을 때 텍스트만 열심히 읽어나갈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독창적이고 의미로 충만한 배열 방식에도 주목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야만 이 책의 탁월함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구체적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 비주얼 씽킹(visual thinking)임에도 학위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소 추상적인 사유를 전개할 수밖에 없었기에 아쉽다. 다른 사유, 입체적 사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우리의 질문에 이 책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대답을 하기 보다는 그 근본적인 질문을 한층 뜨거운 것으로 만들게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독자들의 대답 역시 저마다 입체적으로 풀어내어야할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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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70면.
이미지와 텍스트에 대한 사유는 닉 수재니스가 만화가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만화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데 열성적이다. 이를테면 70면에서 만화가 전체와 부분의 이미지들의 시스템/네트워크적 구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실제로 그러한 특성을 표현해낼 수 있는 이미지들과 만화적 구성을 제시한다. 또한 그 페이지는 만화가 텍스트의 설명력과 이미지의 구체성을 어떻게 모두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 만화로 그린 만화 이론서인,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가 그런 것처럼, 수재니스의 이 작품도 이론을 만화로도 성공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멋지게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이 비판하는 것은, 우리 삶을 구속하는 ‘단조로움(flatness)’과 입체적 시각의 결여이다. 새로운 관점, 입체적 관점을 도입하여 그 단조로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바로 ‘입체화(unflattening)’이다. “‘입체화unflattening’란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로 보는 행위다.”(40면) 

그렇다면 입체화를 위한 길은 획일화된 사회로부터의 의도된 이탈에만 있을까? 다른 사유를 위해서는 남과 거리를 두어야할까? 수재니스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를 인용하며 진정한 해방은 ‘유대로부터의 탈피’가 아닌 ‘진정한 결속’임을 강조한다. 관점과 관점, 개념과 개념 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창의적 관점과 개념이 싹트는 것처럼, 연대와 결속은 제약이 아니라 동력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마크 존슨(Mark Johnson)처럼 논쟁을 전쟁의 은유로 이해하지 말고 하나의 춤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싸움이 아닌 협업하는 파트너, 차이를 지우지 않는 협력으로 상생하는 관점들의 공존이 바로 그런 춤이다. 단일한 관점의 폭력이 강제되거나 관점들 간의 투쟁만 강조되는 우리 사회의 사유 세계를 입체화시킬 아름다운 춤판을 기대해본다.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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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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