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볍씨학교 9학년(중학교 3) 김화현 양

지난 4월 2일 제주 관덕정에서 열린 역사맞이 거리굿 <순이삼촌-동백꽃지다>에 참여했다. 마임이스트 이경식 선생님과 이모·삼촌과는 함께 연습하고 맞춰봤기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난 소설 《순이삼촌》 속 어린 순이삼촌 영혼을 연기했다. 

공연은 오후 3시부터 시작인데 우리(볍씨학교 학생)들은 1시에 왔다. 다들 갈옷, 한복 등을 입으니 시간이 1947년으로 돌아간 듯 진짜 옛날 사람들 같았다. 공연 시작 시간을 넉넉할 때는 공연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긴장감이 적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오니 한 편으로는 긴장이 되면서 한 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4.3의 아픔을 함께 공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굿 공연을 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4.3을 전승하는데 작게나마 한 몫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점점 공연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동선이 살짝 바뀌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나', '갑자기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 등 온갖 걱정이 들었다. 

첫 시작은 좋았다. 분위기가 신나고 즐거웠다. 나도 함께 춤추고 싶었지만 맡은 역할을 생각해서 꾹 참고 있었다. 해방이 됐다는 기쁨에 ‘만세’를 외친다. 다들 얼마나 기쁘셨을까. 나도 즐거워진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굉음과 함께 순이 삼촌이 쓰러진다. 

나는 어린 순이 삼촌 영혼을 맡았다. 그래서 총파업의 열기, 고무신을 줍는 마음, 굳은 결의를 다지며 입산하는 마음도 표현하지 못했다. 대신 아무 것도 모르고 오빠를 떠나보내는 마음, 오롯이 혼자 남아 당황스럽고 두려운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부모님과 가족과 그렇게 헤어졌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마음은 도대체 어떨까? 어이가 없을까, 화가 날까, 서러울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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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경의 학살 장면. 외국인 퍼포먼스팀 살거스(가운데)가 군경 역할을 맡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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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 학살 이후 마을이 불타 소개령이 내려진 장면. 순이삼촌의 저자 현기영 선생 역할(가운데 오른쪽 모자)이 어린 순이 삼촌의 영혼(김화현 양)을 위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고생 끝에 입산한 사람들이 봉기하는 장면은 속이 시원했다. 다음은 거리굿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인 학살 씬(scene)이다. 사람들이 죽고, 소설 《순이삼촌》 속 저자 역을 맡은 이경식 선생님과 난 무대 앞 쪽에 앉는다. 최대한 혼이 빠진 죽은 이의 마음으로 연기했다. 내 뒤에는 사람들이 죽어 있고, 앞에는 관객들이 보인다. 관객들 사이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다. 그 때의 아픔을 알고 계실까. 혹시 그 때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일까. 마음이 아팠다. 마치 내가 죽은 사람들의 혼이 된 것 같다. 관객 한 명 한 명의 눈을 본다. 다들 이 아픔을 공감할까. 선생님과 손을 잡고 있는데 따뜻하게 진심이 느껴졌다.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다. 그 순간 4.3 당시 돌아가신 수많은 사람들의 혼이 이곳에 온 것 같았다. 힘이 쫙 빠졌다.

마지막은 옴팡밭 장면이다. 목숨을 잃고 쓰러져 있는데 내 옆에 4.3 영혼들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아프다. 다른 친구 배우들이 동백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노란색 나비 모양을 흔든다. 부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면서 아픔이 치유된다. 이경식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어떻게 할까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가자” 라는 말과 함께 내 손을 잡아주셨다.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순이 삼촌들’도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셨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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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현 양. 제공=볍씨학교. ⓒ제주의소리

이제 <애기 동백꽃> 노래가 나오며 거리굿을 마친다. 다들 진달래꽃, 동백꽃, 나비 모양을 들고 춤을 춘다. 꽃도 사람도 분위기도 모두 예쁘다. 정말로 춥고 아픈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날이 온 느낌이랄까.

관객들과 함께 하고 싶어 마주보며 춤을 췄다. 처음에는 조금 민망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아야지’라는 마음 자체도 먹지 않았다. 그러니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즐거웠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웃음이 나온다. 이 기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겠지! 연습한 보람이 있는 거리굿이었다. 이렇게 뜻 깊은 공연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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