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주특별자치도가 30년 만에 추진한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후 미래를 대비한 교통정책 추진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자동차와 도로 위주의 기존 교통정책을 사람 중심의 교통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때맞춰 제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람 중심의 선진 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은 그만큼 중요하다. <제주의소리>는 ‘사람 중심의 선진 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차고지증명제 △불법 주·정차 단속 강화 △공영주차장 확보 △일방통행 등 4가지 정책을 중심으로 [송년기획-교통정책, 사람이 중심이다]를 5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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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매 순간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곳으로 꼽히는 제주시 노형오거리. ⓒ제주의소리

[송년기획-사람 중심의 제주교통문화] ① 선진교통문화의 시작은 '걷기 좋은 도시'

약 10년 전만 해도 제주는 한 시간 생활권이었다. 제주 섬 끝에서 끝까지, 자동차로 웬만한 곳은 한 시간이면 오고 갈수 있었다. 소위 ‘운전할 맛 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사이 제주는 ‘교통지옥’으로 변했다. 러시 아워(rush hour)에 차를 끌고 도로에 나가기 무섭다는 얘기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제 제주에서도 ‘통하는’(?) 얘기가 됐다. 

제주는 차량 통행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시민들의 보행이 편리한 환경은 더더욱 아니다. 차량도 사람도 원활하지 않은 통행 환경이 문제다. 이 때문에 선진교통 인프라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도민과 관광객들은 이처럼 교통체증 문제 해결 방안을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교통 체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로만 넓히면 되지만, 사회적 비용 등을 생각해야 한다. 대기오염 해결과 주차문제 등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당장 도로를 넓히는 것이 아닌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선진 교통 인프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당연. 

2013년 제주에 등록된 자동차 대수는 20만2026대. 지난해 기준 자동차 등록대수는 40만637대로, 4년 동안 무려 15만대가 증가했고,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10월말 기준 제주 1가구당 차량대수가 약 2.17대다. 전국 평균은 1.03대에 불과하다. 제주가 전국 두배를 훌쩍 뛰어 넘는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차량이 최대 17.7%, 최소 7.1%가 증가했다. 

차도 폭 확장 등 교통 인프라가 확대된 것도 아니다. 사실상 제주·서귀포시 동(洞)지역은 차도를 넓히고 싶어도 더 이상 넓힐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차량이 늘어나면 갈수록 차가 막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일본만 시행하는 ‘차고지 증명제’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도입, 2022년 1월1일이 아니라 2019년 1월1일로 3년 앞당겨 전면 시행하려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주도의회에서 제동이 걸려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 제주에 들어선 제주형 대중교통 우선차로.

2017년 1월1일 이후 배기량 1600cc 이상 신규 중형차의 경우 차고지가 있어야 구매할 수 있다. 2016년 중형차 등록대수 1만279대에서 2017년 6848대로, 약 33.4%가 줄었다.  

30년만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따라 제주시 아라초 사거리와 광양사거리를 잇는 중앙로에 ‘제주형 대중교통 우선차로’가 생겼다. 출퇴근 시간대 우선차로를 이용하는 버스는 일반차로의 승용차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한다. 
 
우선차로제와 차고지 증명제에 대한 도민들의 평가는 아직 엇갈리고 있지만, 선진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고민에서 출발한 정책이라는 점은 결코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 

불법 주정차 단속 강화 목소리도 높다. '잠깐만' 또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도로에 버젓이 세운 차량 한대가 유발하는 교통체증은 무시할 수 없다. 한편으론 주차공간이 없어 불가피하게 도로에 차를 세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도내 공영주차장은 1358곳에 3만6394면. 민간 주차장을 모두 합쳐도 22만5000면 수준이다. 이는 제주도내 차량 절반 수준으로, 실제 절반의 차량은 도로가와 골목길 등에 주차해야 하는 상태다. 주차장 확보가 절실한 이유다. 

생활도로(이면도로)도 개선해야 한다. 이면도로는 주거지 주변 폭 9m 미만의 도로를 뜻한다. 이면도로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불법 주차 차량은 교통체증과 함께 보행길을 위협하는 존재다. 

▲ 주차구역이 아닌 도로에 버젓이 주차된 차량들.
이면도로를 일방통행로로 지정하는 것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도로 한쪽 면은 주차할 수 있도록 하고 교통흐름은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일부 주민들의 반발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통 흐름이 원활해지고, 교통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도 일어나고 있다. 

행인들은 앞뒤로 다가오는 차량이 아니라 한쪽 방향만 주의해도 안전한 보행길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안전한 보행로가 확보돼 걷기 편한 길이 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부 진통을 겪더라도 더 늦기 전에 선진교통 인프라를 위해 무엇인가 획기적인 교통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여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선진교통 환경이란 결국 ‘사람들이 걷기 좋은 도시’를 의미한다. 차량운행만 편하고, 걸어 다니기 힘든 도시는 결국 차량 증가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걷기 좋은 도시환경 조성으로 차량 증가율은 감소하고, 대중교통 이용률 증가를 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넓고 안전한 인도의 확보가 최우선이다. 또 원활한 교통흐름을 통한 대중교통 편의성을 높이고, 주차장 확보와 함께 불법 주·정차 단속 강화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은 필수다. 어찌 보면 '걷기 좋은 도시'는 차량 운전자들로 하여금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만큼 교통 체증이 심각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자동차를 처음 만든 유럽 등 서구도 우리나라보다 교통 흐름이 원활하다. 

유럽 등 선진국 대도시의 경우 오래전부터 도시가 형성돼 더 이상 차도를 넓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보다도 도로가 좁은 나라가 태반이다. 하지만, 곳곳에 여유로운 광장이 있고, 널찍한 인도가 있다. 우리처럼 차도를 넓히기 위해 인도를 줄이는 코미디를 만들진 않는다.

오히려 차도를 줄여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었다. 자연스레 차량 증가가 억제돼 대중교통과 자전거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평일 도로를 달리는 차량도 상당수는 택시다. 걷기 좋은 도시가 돼 많은 사람들이 걷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골목상권에 이르기까지 지역 상권 전반이 살아날 수 있다.

먹거리, 볼거리는 사람들이 걸으며 즐기는 것이지 차를 타고 이동하며 즐기는 콘텐츠가 아니다. 실제 차량 통행금지를 통해 상권이 살아난 국·내외 사례는 차고 넘친다.
▲ 미국 뉴욕 도심권. 차도보다 인도가 훨씬 넓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차량 대부분이 택시다.

인구 1600만명의 세계적인 도시 미국 뉴욕의 경우에도 도심권 차도는 인도보다 좁다. 또 편도 2차선(왕복 4차선) 도로를 일방통행 4차선 도로로 변경해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차량이 뉴욕을 달리지만, 교통흐름은 우리나라 서울 등의 대도시보다 더 훨씬 원활하다. 인도는 넓고 차량 흐름은 원할해 '걷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 도시·교통행정 전문가인 제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황경수 교수는 “선진교통문화는 대형차량, 소형차량, 대중교통 각자의 원활한 흐름을 조성하고, 사람들이 걷기 편해야 한다. 쉽게 말해 ‘예상 가능한 교통 흐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세계적인 대도시 미국 뉴욕의 경우 다이어트(diet)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차도 폭을 줄여 인도를 대폭 넓혔다. 차량 운전자에게 일부 불편함을 줘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이에 맞춰 보행로를 확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선진교통을 걷기 좋은 도시라 표현할 수 있다. 차량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해 사람들이 걷게 만들면 환경오염과 차도 개선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감축한 사회적 비용을 걷기 좋은 도시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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