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9343.JPG
▲ 제주도립미술관은 25일까지 미술관 강당에서 컨퍼런스 <기억투쟁과 평화예술을 향하여> 두 번째 일정을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도립미술관 특별전 컨퍼런스...“공동 학습으로 창작 모색, 동아시아 역사 공유 방법 찾아야”

‘야만의 세월’, ‘정보 독점의 시대’를 지나 시민 촛불로 무능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손바닥 위 작은 기계만으로 세계와 자유롭게 연결하는 오늘날, 예술로서 역사를 기억하는 ‘기억투쟁’은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억투쟁의 과제로 ▲미래 세대 전승 ▲창작 활성화 ▲다른 지역 국가폭력과의 기억 공유 등을 꼽았다.

제주도립미술관은 24일부터 25일까지 미술관 강당에서 컨퍼런스 <기억투쟁과 평화예술을 향하여>를 개최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미술관이 6월 24일까지 진행하는 제주4.3 70주년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의 연계 행사다.

<포스트 트라우마>는 제주와 비슷한 학살의 역사를 경험한 광주(5.18), 오키나와(태평양전쟁), 대만(2.28), 베트남(베트남전쟁), 난징(일본군 대학살), 하얼빈(일본군 생체실험)을 미술로 소개한 전시다. 컨퍼런스 둘째 날은 세 가지 주제(4.3정명, 4.3예술의 미래, 동아시아 평화예술)를 과별로 논의하고 종합 토론하는 순으로 진행했다.

종합토론은 서영표 제주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박찬식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4.3정명 분과),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4.3예술), 최태만 국민대 교수(동아시아 평화예술)가 각 토론 결과를 발표했다.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토론자로 참여했다.

윤범모 교수는 미술을 포함해 4.3 예술이 지속·발전하려면 더 많은, 더 수준 높은 창작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창작 여건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윤 교수는 “역사의 본질, 역사의식을 작품화 할 때 현장 경험이 없으면 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4.3도 애매한 개념 보다는 분명한 주체를 내세우는 개념과 단어가 중요하다”면서 “1979년 탄생한 동인 ‘현실과 발언’은 청년 화가들이 매주 모여 학습했다. 제주의 강요배 화백도 당시 참여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자각이 가능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자양분이 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개인적으로 현실과 발언처럼 최근 한국 전통을 주제로 한 창작 그룹을 운영하는데 성과가 좋다. 개별 작업은 각자 하되, 역사나 진실을 공유하는 데는 공동체가 효과적”이라며 “도립미술관을 포함해 행정이 4.3 작품을 수집하는 것도 좋지만 스터디의 장을 마련해 전시·작품 구입까지 해보는 건 어떠냐. 창작 여건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양질의 작품을 만드는데도 일반적인 지원 사업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IMG_9348.JPG
▲ 제주도립미술관은 25일까지 미술관 강당에서 컨퍼런스 <기억투쟁과 평화예술을 향하여> 두 번째 일정을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이명원 교수는 4.3 포함 동아시아 평화예술에 필요한 것으로 ▲미 체험 미래 세대 계승 ▲다른 지역과 기억 공유를 꼽았다.

이 교수는 지난 4월 제주에서 열린 전국문학인 제주대회 사례를 들었다. 당시 오키나와(메도루마 슌), 베트남(바오닌), 대만(리민용) 문인들이 초청받았는데, 서로의 국가폭력 역사를 알고서 성찰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었다는 것.

그는 “메도루마 슌은 바오닌이 쓴 베트남전쟁 소설 《전쟁의 슬픔》을 읽고, 당시 베트남을 침략한 미군들이 오키나와에서 훈련 받은 병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큰 충격과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청룡부대에 복무하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의 김준태 시인은 17세 나이로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바오닌과 만나 마찬가지로 깊은 소회를 나눴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이런 경험을 살펴볼 때 동아시아 예술의 기억투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과제를 남긴다. 하나는 국가 안에서 기억 계승이다. 체험 세대와 미 체험 세대의 간격을 채우는 계승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국경을 뛰어넘는 기억의 교환이다. 전국문학인 제주대회에서 바오닌 작가는 베트남 전쟁을 조명한 한국 작품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며 “예술은 가해자의 피해, 언어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픈 기억도 작품으로서 표현·공유할 수 있다. 이런 기억의 교환은 국가 차원에서는 어려워보이지만, 예술가와 민중 차원에서는 연대 작업까지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좌장을 맡은 서영표 교수는 “청소년 세대는 국가 폭력을 포함한 여러 역사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4.3을 포함해 공통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정서와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트라우마는 결국 치유가 필요하다. 예술은 이해 당사자들이 기꺼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소감을 남겼다.

더불어 "학계에서도 학문 후속세대가 재생산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술 역시 같은 고민을 겪는 것 같다. 사회과학은 건조무미하지만, 예술은 이와 달리 다른 시각에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예술의 기억투쟁을 높이 평가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