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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속을 날아다니는 벽화 속 나비

오승주 news@jejusori.net 2018년 06월 12일 화요일 10:37   0면
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23)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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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에서 펄럭이던 벽화 속 나비의 날개

벽화 속에 갇힌 나비는
언제나 똑같은 꽃과 나무 그리고 풍경을 보며 생각을 하지
언제쯤 이곳에서 나갈까
나도 한번쯤 날갯짓을 하고 싶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곳에 있던
친구들과 이 세상에서 지워지지
- 어느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시 <벽화 속 나비>
요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과의 대화는 흥미롭다”는 스메르쟈꼬프(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진범)의 말을 흉내 낸다면, “어린 영혼과의 대화는 이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린 영혼들과의 대화는 체력적으로 지치고 영혼이 탈탈 털리지만요.

어린이에서 성인까지 거의 모든 세대와 만나고 있는 제 입장에서 어른과 아이를 만나는 영혼의 상태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성인을 만나 대화할 때는 바람 한 점 없는 강변을 산책하는 기분입니다. 아무리 신선한 생각을 듣는다고 해도 돌멩이 하나 던진 것 이상의 파장이 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날 때는 파도가 거세게 이는 바닷가를 걷는 느낌입니다. 바위의 모양에 따라서, 바람에 따라서, 물결의 흐름에 따라서 부서지는 파도는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위의 시는 중학교 글쓰기 수업 때 나왔습니다. 그것도 5분 만에. 무작정 야외수업을 하자며 아이들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막춤을 추듯, ‘막시(詩) 무한리필’을 해보자고 부추겨 종이와 볼펜만 달랑 들고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그날 40장 정도의 종이에 시가 빼곡히 모여서 무척 배불렀습니다. 아이들은 하복을 입고 있었지만 바람이 거세서 눈치 빠른 3학년 녀석들은 일찌감치 체육관으로 도망쳤습니다. 축구장의 관중석처럼 생긴 구령대 옆에서 좋은 시가 많이 나왔습니다. <벽화 속 나비>는 그 당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압도적인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가 저를 사로잡은 것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가던 때였습니다. 벽화 속에 갇힌 나비는 마치 식물인간처럼 몸은 움직일 수 없으나 생각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초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규율과 강제, 위압적인 선생님들의 모습이 전혀 새로운 공포를 만들어냈죠. 43명이 빼곡히 앉아 있던 교실에서 저는 벽화 속 나비처럼 날갯짓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사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포와 압박은 더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미 벽화 속 나비인데 어떤 부자유를 또 내놓을 수 있을까 의심한다면 당신은 아직 순진한 것입니다. 아직 ‘생각’이 남아 있잖아요. <벽화 속 나비>를 써낸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암담했습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까닭은 제가 현재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는 감정의 절벽과 같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감정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무미건조하고 싸늘한 이성에 휘감긴 채 살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논어 책을 옆에 끼고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하더군요. 그는 “선생님께서 지난 수업 때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고 하셨는데 추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17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의심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수업 때 제 설명을 듣고 ‘멘붕’에 빠졌다고 호소했습니다. 저는 자세를 고쳐 잡고 20여 분간 정성스레 설명을 했습니다. 그 아이의 표정이 평온해지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지혜로워진다는 말을 이제 믿지 않습니다. 최소한 감정이나 공감에 대해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낮아진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교복을 입은 벽화 속 나비 곁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유세차가 지나갑니다. 지방선거를 치르며 쏟아지는 온갖 말들과 장면들에 한껏 시달리고 났더니 벽화 속 나비는 벌써 색이 바란 것 같습니다.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1984》를 뒤적거리다 찾아낸 행복한 미래

윈스턴은 침대 위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오브라이언의 빠른 대답이 곤봉처럼 그를 짓눌렀다. 
- 《1984》
소설 《1984》는 조지 오웰의 유작입니다. 《동물농장》의 대성공으로 난생 처음 생계와 노동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조지 오웰은 외딴 섬에서 마지막 작품을 집필하며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피를 토하면서 타자기로 작품을 손봤고 작품이 출판사에 넘어가고 얼마 안 있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1984》는 정교한 전체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인간’으로 살아가던 주인공 ‘윈스턴’이 자신의 감정과 존재를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붙잡혀 모진 고문으로 영혼이 파괴되고 결국 뒷덜미에 총알이 박혀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윈스턴은 오세아니아에 삽니다. 작품 속 지구는 이스트 아시아와 유라시아, 그리고 오세아니아가 상대를 달리해 전쟁을 하는 상황이었고, 윈스턴은 ‘진부(眞部 : 진리부(眞理部)의 약어)’에서 문서 조작 임무를 수행하는 ‘외부 당원’입니다. 부모님은 어렸을 적에 사라졌습니다. 소설 작품에서 어린이들이 부모의 고발을 도맡으며, 그렇게 훈련되었다는 이야기가 몹시 가슴 아프면서도 의미심장하게 읽혔습니다. 누가 봐도 숙청될 것 같지 않은 윈스턴의 동료 ‘파슨스’는 옆에서 보면 혐오감이 일어날 정도로 지저분하고 어리석고 당에 대해서 맹목적인 충성을 보여주지만 그도 결국 숙청당하고 말았습니다. 잠꼬대로 “빅브라더를 제거하라”라고 외쳤고, 그의 딸이 당국에 고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윈스턴은 프롤(노동자 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줄임말)들이 거주하는 ‘할렘’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구입한 일기장에 첫 글을 쓸 때만 해도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대범해지죠. 소설 속 현 시대 이전의 흔적들을 말해주는 인도양 산호를 사기도 하고, 옛 노래를 기억해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피해 연애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골동품 가게 2층 오래된 침대가 있는 방에는 커다란 그림으로 위장한 최신형 텔레스크린이 있었고,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늙은 가게 주인은 분장한 사상경찰이었고, 체제 전복을 위해 의기투합하고 반란을 위한 비밀 조직이 성경처럼 소중히 한다는 <그 책>을 전해준 ‘동지’ 오브라이언은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1984》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설의 앞 부분에서 윈스턴이 카페에서 우연히 보았던 세 명의 늙은 혁명가의 몰골이었습니다. 

그들이 앉아 있는 탁자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사람들 옆에 앉아 있는 것은 현명한 처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 카페의 명물인 정향나무 향기가 나는 진이 담긴 술잔 앞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중략) 세 명은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윈스턴이 루더포드의 처참한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처음으로 그는 가슴에 전율을 느꼈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몰랐다. 아론슨과 루더포드의 기세가 꺾여 있었다. 
- 《1984》
주인공 윈스턴과 그의 애인 줄리아는 똑같은 운명에 처합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인》에서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가 재판장에서 자신의 분신 같은 젊은 기자와 눈이 마주친 장면과 《1984》의 이 장면은 쓸쓸하고 묘한 동질감을 줍니다. 

고등학생들에게 ‘전체주의’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개인이 전체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체제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수업 시간에서 배운 것 이상의 이해 정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1984》를 소개해 줬더니 ‘고전은 재미없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고전이 어때서?’라고 대답하려다가 그만뒀습니다. 

미래를 왜 이렇게 비참하고 슬프게 그렸는지 속상하고 부당하게 느껴진다면 미국의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맨(David Goodman)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1971년 그는 《1984》의 예언이 얼마나 들어맞았는지 검토한 결과 137개 중에서 80가지가 실현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7년 후에 다시 비교했더니 그 때는 100가지가 실현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다섯 명의 전과자가 사람들로 붐빈 거리를 지나다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CCTV에 장착된 AI가 중국인의 방대한 얼굴 정보 데이터를 분석해 광장에 있던 5명의 범죄자를 판별해 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일도 있습니다. 통신장비 등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인 항저우중헝(杭州中恒) 전기는 생산라인의 노동자들에게 매우 작고 가벼운 무선 센서가 부착된 모자를 쓰고 일하게 하는데, 모자에 달린 센서는 노동자들의 뇌피를 측정해 그들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상태가 안 좋은 직원은 휴가를 보내거나 집중적으로 상담을 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1984》가 던지는 주요한 경고는 ‘전체주의 정치와 기술 발전의 결합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중국은 알다시피 폐쇄적인 독재 또는 과두정치 체제이며 경제 대국이며 기술 강국이기에 《1984》의 오세아니아에 부합하는 모델입니다. 반면 미국은 대표적인 정보기술기업인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가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당시 5000만 유권자의 신상정보를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원한 데이터 분석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에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주커버그는 1984년생입니다. 기술은 중국과 미국이 큰 차이가 없지만 민주주의의 차이 때문에 두 강대국의 풍경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미국에 가까울까요, 중국에 가까울까요? 해묵은 ‘권위주의’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더 심해질 수 있죠. 이대로 간다면 청소년들은 벽화 속에 영원히 박제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청소년 정치 학교’ 비슷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 여기 저기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정치적인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다면 벽화는 깨부숴질 것입니다. 10대들이 《1984》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역설적으로 이 책이 행복한 미래로 가장 빨리 안내해 주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미래는 행복한 생각과 이야기들을 마구 쌓아놓는다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불행의 요소를 찾아내서 하나씩 제거하면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정치에 눈을 뜬, 뜻 있는 어른들이 조금 있지만 청소년들도 눈을 떠야 합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방선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똑똑히 목격해야 합니다. 우리 정치가 가지고 있는 탐욕스럽고 구차하고 기회주의적이고 고리타분한 특징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이 첨단 기술을 소유하게 되는 날을 상상해 보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은 지방선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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