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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고등학교'에 다니는 '하이드 학생'에게

오승주 news@jejusori.net 2018년 07월 10일 화요일 13:48   0면
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27《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27.jpg

고등학교 남학생의 욕망에 관한 딜레마

공부하러 도서관에 왔는데 드는 생각
시작하기 전에 만화책이나 볼까?
1시간 동안 만화책만 봤다. 

겨우 겨우 마음을 다잡고
열람실에 왔는데 드는 생각
이거 하나 끝내고 게임이나 할까?
1시간 동안 게임만 한다. 

이제 진짜 공부해야지 하면서
책을 펼치는데 드는 생각
집중도 안 되는데 잠이나 잘까
1시간 동안 잠만 잔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집에 갈 시간
하. 오늘도 공부 못했다.
- 어느 남자 고등학생의 시 <공부의 어려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과 함께 문학 수업, 글쓰기 수업을 몇 년 동안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중학교 3학년 여학생과 고등학교 1,2학년 남학생이었습니다. 각각 다른 이유로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남학생은 ‘정규교육’의 마지막 매듭답게 은연중에 세뇌를 많이 당했습니다. 진로 교육 프로그램이 학생을 통과하고 나면 감정과 욕망이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학생의 감정과 욕망을 힘겹게 소생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멈칫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소생한 감정과 욕망으로 인해서 그의 학교생활은 더 불행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 무책임한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각자의 몫과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감정과 욕망을 제거해야 하는 쪽에서도, 결코 불필요하지 않은 감정과 욕망을 소생시켜야 하는 쪽에서도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최종 판단은 학생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마음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어렵사리 고등학생의 욕망을 뒤흔들어놓았더니 학생은 시 하나를 내뱉었습니다. 시험을 앞둔 학창시절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공감 가득한 이야기에 제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학창시절뿐이겠습니까? 만화 마감을 앞두고 카페에서 창작에 몰두하는 만화가, 형식만 다를 뿐인 작품들을 작업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화예술인, 보고서와 기안서 마감을 앞두고 열중하는 직장인, 누구 하나 ‘일탈’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으며 부처님 손바닥보다 넓은 욕망의 뒤편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욕망을 안다는 것은 내가 욕망에 예속돼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이겠죠. 고등학생의 시는 바로 그 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지킬 박사가 되고자 하지만 언제나 교활한 웃음을 짓는 하이드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하이드’의 시점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다시 읽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원고를 소리 내서 읽고 있는데 여덟 살배기 제 아들이 “아빠, 나 지킬박사와 하이드 알아요. 아침에는 지킬 박사, 저녁에는 하이드 맞죠?”라고 거듭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마음먹고 붙잡으면 한나절 정도면 읽을 수 있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처음 펼쳤다가 마치 영혼의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책을 집어든 날 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야 ‘찰칵’ 하며 수갑이 풀리는 듯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은 <보물섬>이라는 소설로 스타가 되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실버 선장’은 순수한 악 자체인 ‘하이드’를 예고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자신의 내면에서 선한 존재와 악한 존재를 절단하려고 했던 최초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우스에게 대항하다가 몸이 둘로 잘린 인류의 조상 ‘티탄 족’이 떠오릅니다. 

이전부터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 때 돈을 주고 악당을 고용해 자신과 자신의 명예를 보호해왔지. 그런데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그렇게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네.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짐짓 점잖은 척 행동하다가 악동처럼 한순간에 그런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지고 자유의 바다로 곧장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이 말일세. 
- 지킬 박사의 마지막 편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지킬 박사는 맛난 음식을 실컷 먹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처럼 하이드로 변신하는 약을 먹고 살의(殺意)를 맘껏 쏟아냅니다. 어차피 한 모금의 약을 먹고 점잖은 지킬로 되돌아오면 그만이니까요. 변신 약은 마약처럼 지킬을 지배했습니다. 하이드가 내면을 장악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챈 지킬이 다량의 약을 복용해 지킬로 돌아왔지만 이미 하이드에겐 변신약 따위는 필요 없었습니다. 지킬은 음독자살로 생을 끊음으로써 비로소 욕망의 반란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소설 작품에서는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신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강조돼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이 일로 한몫 잡겠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신사 체면에 공연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 액수를 말해보시오.’ 그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 가족에게 1백 파운드를 배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그자는 끝까지 버틸 기세였지만 우리가 내뿜는 악의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받아들이더군요. 
- 엔필드(주인공 어터슨 변호사의 친척이자 런던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의 증언, 같은 책
문학고전 작품은 행간에 매우 의미심장하고 깊은 메시지를 숨겨 놓았기 때문에 메모를 하면서 정독해야 하고, 미심쩍다 싶으면 읽었던 곳으로 되돌아가 주변을 살펴봐야 합니다. 지킬이 하이드로 타락하는 이야기가 소설의 골자를 이루지만 하이드가 살아남기 위해서 이성을 발휘하는 모습이야말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숨겨진 주제입니다. 
내면은 순수한 악마 그 자체이면서 겉으로 천사표 이미지를 완벽하게 연출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진실한 사람’과 ‘진실을 연출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글쓴이인 스티븐슨은 이 점에 대해서도 단서를 남겨놓았습니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어터슨 변호사 자신이 바로 열쇠입니다. 

“나는 카인의 이단에 끌린다네. 내 형제가 악마에게 가겠다면 나는 굳이 말리지 않겠네.” 
그는 이처럼 기이한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다. 이런 성격 때문에 그는 인생의 막다른 곳까지 내몰린 자들이 마지막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로 남아 최후의 순간까지 훌륭한 영향을 줄 때가 많았다. 
- 같은 책
선과 악이 내면에서 조화를 이루고, 그 지독한 모순이 마음에 생생하게 뿌리를 내려서 한 그루의 아름드리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난 사람만이 진실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조건은 글쓴이가 숨겨놓은 또 하나의 진실입니다. 

자신의 숙주를 잡아먹는 유데러스 세트(Euderus Set) 말벌처럼 자신의 숙주를 잡아먹어버린 하이드의 왕성한 생명력은 어쩌면 인간 욕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는 한마디로 욕망에 도전했던 인간 이성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그려낸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 이성에 대한 욕망의 ‘승리 선언문’입니다. 

제가 왜 고등학교 남학생의 비틀거리는 욕망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는지, 인정을 받은 것처럼 안도감이 드는 작품입니다. 왜곡된 욕망과 그것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 그리고 범죄행위는 어쩌면 이성의 오만에 대한 반작용이자 경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10대들의 욕망을 왜곡하고 질식시키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층 강화된 진로 교육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의 욕망을 통제하는 일에 손을 떼야 하며, 그들의 욕망을 숨 쉬게 하는 방향으로 정교하게 가다듬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킬 고등학교에 다니는 하이드 학생이라면 욕망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듯, 욕망이 없어지면 생명도 시리기 때문입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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