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화폐 모델'로 급부상한 제주의녀 김만덕 조명 활발…11~12일 학술대회

조선 정조때 아사 직전의 백성을 구휼한 제주 의녀(義女). 1739년 출생. 1812년 사망.

양가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적 부모의 죽음으로 천애의 고아가 되고, 기녀로서 크게 성공했으나 가족의 명예를 위해 성공이 주는 명성과 안일한 행복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린 인물.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으로 출중한 수완을 발휘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거상(巨商). 조선 후기 어려움의 대명사격인 '갑인년(1794년) 흉년'에 전 재산을 내놓아 1100여명을 살려냄으로써,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는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를 일찍이 몸으로 실천한 주인공.

임금이 상을 내리겠다고 하자 '금강산 유람'이 소원이라며 유혹(?)을 뿌리친 소박한 성품의 소유자. 입경(入京)해 내의원 의녀가 된 파란만장한 삶.

제주인들이 전설처럼 우러러보는, 정조실록 등에 나타난 김만덕의 '이력서'다.

그러나 김만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매년 10월이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만덕제가 봉행되고, 제주도에서 해마다 만덕봉사상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지만 그의 발자취를 속속들이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김만덕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를 고액 화폐 모델로 삼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 이율곡 이퇴계 이순신... 다음은 김만덕?

사실 10만원권 고액 화폐는 아직 발권계획 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태. 여성계가 고액 화폐 발행이 결정되면 화폐 모델은 여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앞다퉈 그 모델을 찾기 시작하면서 김만덕은 급부상했다.

현재 1만원권 화폐에는 세종대왕이 새겨져있고, 이율곡(5000원), 이퇴계(1000원), 학(500원), 이순신(100원), 벼(50원), 다보탑(10원) 등 다른 화폐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과 동식물, 문화재 등이 등장한다. 단 하나, 여성만 없다.

이렇게 보면 여성의 화폐 등장 가능성도 높다고 하겠다. 특히 화폐발행을 담당하는 한국은행도 여성 선택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계 입장도 나뉘어져 '김만덕의 경쟁자'가 한둘이 아니다.

율곡 이이 선생의 학문을 연구하는 모임인 율곡학회는 화폐 모델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신사임당을 꼽고 있다. 현모양처만 용인되던 시대에 유학을 했고, 학문적으로도 일가를 이뤘으며, 이율곡이라는 대학자를 키워낸 교육자로서 시대를 앞서 나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상이라는 것이 율곡학회의 입장이다. 특히 올해는 신사임당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신사임당이 훌륭한 어머니상을 구현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가부장적 여성상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신사임당 vs 유관순·허난설헌·김만덕…여성계 이견 팽팽

이들은 그 대안으로 유관순, 허난설헌, 김만덕, 명성황후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 중심엔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회장 김경애 동덕여대 여성학과 교수·시민연대)가 서 있다. 김교수와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함께 시민연대를 발족하고 다양한 '여성인물 새겨넣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만덕 기념사업추진위도 지난 3월 이후 도내 여성단체와 함께 김만덕을 새 지폐의 모델로 선정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만덕을 소재로 한 토론회가 제주에서 열려 '김만덕 새겨넣기 운동'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제주국제협의회와 김만덕기념사업회, 제주국제협의회가 공동으로 11~12일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21세기 제주사회와 여성'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여는데, '의인 김만덕의 현대적 재조명'이 그중 한 주제로 채택된 것.

시민연대 회장인 김경애 교수가 '김만덕 삶에 대한 여성주의적 재해석'을 주제로 발표하고, 현승환 제주대교수는 '21세기에서 다시보는 김만덕'을 발표한다.

"즈믄장아기와 자청비가 혼합된 아름다운 여성…조상으로 둔 제주인 큰 자랑"

김만덕의 생애를 연구한 김 교수는 발표문에서 김만덕을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진정한 승리자"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김만덕을 신화속 '즈믄장아기'와 '자청비'에 비유했다.

김 교수는 "만덕은 억척스러운 제주도 여성의 전형인 신화의 즈믄장아기와 같이 시대를 뛰어넘으나 시대와 불화하지 않으면서도, 당차고 창의적이며 강한 의지력과 탁월한 능력으로 여성에게 부과된 경계를 뛰어넘은 여성"이라고 극찬했다.

또 "자청비처럼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개방적인 아름다운 여성이기도 했다"면서 "만덕은 제주도 신화에 나타난 제주도여성의 원형인 즈믄장아기와 자청비가 혼합된 아름다운 여성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있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특히 "전통적인 여성성의 특징으로 보는 부드러움과 아름다움, 타인에 대한 보살핌과 나눔의 미덕, 전통적인 남성성의 특징으로 보는 시대를 꿰뚫어 보는 이지적 능력, 강한 의지력을 함께 가진 양성적 인간"이라고도 했다.

그는 따라서 "만덕은 여성주의를 신봉하는 현대 여성에게 삶의 사표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며 "만덕을 조상으로 둔 것은 제주민들에게 큰 자랑이자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귀감이 아닐수 없다"고 '김만덕 모델'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전 재산 내놓고 백성 구한 박애정신은 오늘날에도 본보기로 삼아야"

그러나 김 교수는 "당시 만덕의 명성은 드높아 세상의 귀감으로 오래 기억될 것으로 예견됐고 고려때 스님 혜일과 어승마 노정과 함께 제주에서 태어난 세가지 특이한 존재로 탐라 사기에 기록됐으나 만덕의 삶이 오늘날에 전국적으로는 물론이고 제주에서 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승환 교수는 김만덕이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행수기생이 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고, 경제행위에 대한 감각이 빨랐으며, 사람을 다루는 인사관리가 출중했을 뿐아니라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평생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거나 장학금으로 내놓거나 장애인들을 위해 쓰는 등 자선사업을 하게되면 언론에서 대서특필한다"고 비교한 뒤 "조선후기의 거상 김만덕 역시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아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도민을 구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교수는 김만덕을 훌륭한 인물로 성장시킨 18세기 제주도의 상황과 그런 인물을 어떻게 문학화시키고 있는지를 체제공의 '김만덕전'과 20세기에 이를 확대 재생산한 작품들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김만덕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했다.

제주국제협의회 제17차 학술대회인 이번 토론회에선 '역사와 설화를 통해 본 제주국제자유여성' '제주국제자유도시와 여성경제인' '평화의 섬과 여성시민활동가' '제주특별자치도와 여성정칟행정인' '21세기 제주국제자유도시와 여성문화' 등 6가지 주제가 다뤄진다. '세계화시대 전문여성의 사회적 역할' 특강과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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