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제주도예워크샵 '흙의 기운'…허벅장 신창현 선생 공개 시연

“그 땐 헐께 어서났주. 밥 안 굶젠허난 헐수셔. 경핸 시작헌게 오늘까지라” - 허벅장 신창현 선생
(그 때는 할 것이 없었지. 밥 안 굶으려면 어쩔 수 있냐.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야)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크리스마스 아침. 행여 늦을까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제주전통도예의 뿌리와 원형을 찾기 위해 쉼 없이 작업해 온 제주도예원이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4호 허벅장과 전수자 및 제주전통도예학회 도공들과 관련기능인들과 함께 하는 워크샵 ‘흙의 기운’이 열리는 제주도예원을 찾은 것이 25일 오전 9시35분께.

워크샵은 허벅장 신창현 선생의 시연으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 건애장 박근호 선생.ⓒ제주의소리
행사가 준비되는 동안 건애장 박근호 선생(75)과 불대장 강신원 선생(74)과 이야기를 나눴다.

“옹기를 만드는 것은 어느 것 하나 대충해서는 안 돼. 흙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가마에서 꺼낼 때까지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거지”

“흙은 노란흙과 회색흙을 사용하는데 노란흙은 화력에 강하고 회색은 점성이 좋지. 이 두가지를 적절히 잘 배합해서 반죽해야 좋은 옹기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는 셈이지”

옹기가 만들어지면 10개월 이상을 움집에서 건조시키는데 이때 빚과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해서 움트면서 건조시킨다.

행여 빛이 움집 안으로 들어갈까 싶어 문틈까지 일일이 막고 사람의 출입도 금한다. 이 과정은 ‘어린 아기 보는 것보다 더 명심해야 된다’는 표현을 쓸 정도니 어느 정도의 정성을 들이는지 짐작이 간다.

옹기를 구울 때도 이만저만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

“습기가 많은 나무로 가마를 떼면 옹기가 다 쪼개져 버려. 불이 너무 세면 암 녹는다 하고 불이 너무 약하면 옹기가 덜 익어. 이렇게 되면 이건 못 쓰게 되는 거니까 불 조절도 신중을 기해야 해”

제주가마는 검은굴과 노랑굴이 있는데 검은굴에서는 검게, 노랑굴에서는 노랗게 구워진 옹기가 나온다. 이렇게 색깔이 다른 이유는 가마 지붕 부위에 있는 구멍이 있고 없음으로 인해 연기에 그을려서 검은굴에서는 검은옹기가 노랑굴에서는 노란옹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노랑굴에 있는 이 구멍은 독새기 구멍이라고 칭한다.

▲ 불대상 강신원 선생이 가마에 불을 놓고 있다.ⓒ제주의소리
가마에 옹기를 재임하기 전에 빈 가마에 불을 놓아 가마를 건조시킨다.

“가마안에 옹기들을 재임하고 나면 말똥이나 쇠똥, 또는 고시락(보릿겨)으로 피움불을 하지. 피움불을 놓은 것이 오후 5시다 하면 다음날 오후 5시까지 계속 불을 놓는 거야. 그리고 나서 5시간은 약한불(굴 입구에서 떼는 불)로, 이후 2시간 정도는 중불(굴 중간까지 떼는 불)로 계속 떼. 가마 전체에 불길이 가득하게 하는 큰불은 13~14시간 가량 놓은 후 재로 인해 옹기가 못 쓰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잿불(독새기 구멍으로 장작을 넣어 태우는)질을 5~6시간하면 불 짚이는 것은 끝나”

잿불질까지 끝나면 가마를 하루동안 식힌 후 가마의 뒤쪽부터 독새기 구멍을 1~2개씩 시간 간격을 두고 10개 가량 열고 또 하루를 식힌 후 드디어 완성된 옹기를 꺼낸다.

“일단 가마에 옹기를 재임하고 불을 붙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불이 꺼지면 안 돼.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옹기가 다 구워질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고 불을 지펴야 하는 거지”

빈 가마를 건조시키기 위해 놓은 불에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먹는 맛이 또 일품이었다. 가마 안에 옹기가 들어있다면 꿈도 꾸지 못할 불경한(?) 일이었기에 더 맛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예정된 시간을 조금 넘긴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신창현 선생(66)의 허벅장 시연이 이뤄졌다.

▲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허벅장 신창현 선생이 시연을 보이고 있다.ⓒ제주의소리
먼저 물레에 동그랗게 재를 바른다. 그리고 허벅의 바닥이 될 흙을 둥그렇게 편 후 긴 직사각형의 흙 반죽을 기둥으로 세운 후 바닥과 기둥을 눌러 봉합한다.

신발을 신고 물레를 돌리던 신창현 선생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내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놓고 맨발로 물레를 돌린다. 섬세한 작업이라 정확한 감각으로 일정하게 물레를 돌려야 하기 때문이란다.

“물레와 몸이 하나가 돼서 움직여야 제대로 된 옹기가 나오는 거야. 전기물레와는 하나가 되지 못하겠더라고. 빠르게 돌 때와 느리게 돌 때 등 리듬 있게 몸으로 그 박자를 타야 되는데 전기물레는 그런 것이 없으니 어쩌겠어. 내 몸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물레를 써야지”

   
15살 시절부터 옹기를 만들었다는 신창현 선생. 어떻게 옹기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묻는 기자에게 그저 웃기만 하며 쉽게 말을 않다 한 마디 던진 말.

“밥 먹엉 살젠허난 시작했주”(밥 먹고 살려고 하니까 시작했지)

“그 당시에는 할 게 없었지. 밥은 먹고 살아야 하고 어쩌겠어. 그렇게 옹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20년 넘게 옹기만 만들었지. 젊은 시절에는 하루에 40~50개씩 만들었으니 대단하지?”(웃음)

생계를 위해 시작한 허벅장. 고되고 힘든 길이었지만 지금은 보람이 있다고.

20년 넘게 옹기를 만들던 신 선생은 다른 지방의 값싼 옹기와 플라스틱 제품들이 제주에 들어오면서 더 이상 옹기를 만들지 않게 됐다.

그러다가 최근 제주전통문화의 뿌리를 찾고 이를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 다시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 허벅장 신창현 선생이 완성한 제주 전통 허벅.ⓒ제주의소리
“기력이 다할 때까지 옹기를 만들면서 이를 다음 세대에 전수해 주고 싶어. 기력이 다해 내 손으로 옹기를 만들 수 없으면 그 때는 또 입으로 이를 전수하면 되고. 여하튼 죽을 때까지 옹기를 만들거야”

하지만 신 선생의 이런 열정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승할 젊은 세대가 없어 늘 안타깝다고 한다.

“허벅은 일단 가볍고 물을 많이 담을 수 있어야 하니까 배가 불룩하게 나온 것이 좋아. 그리고 부리(허벅의 입구)는 손으로 쥐면 딱 한손에 잡히는 것이 좋은 허벅이지”

▲ 전통도공 고원수 선생의 공개 시연을 아이들이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다.ⓒ제주의소리
허벅에 부리까지 모두 만들고 무늬 넣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뽀로롱뽀로롱’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보로롱(대나무를 얇게 깎아 만든 대나무칼)으로 옹기에 무늬를 넣기 위해 옹기벽에 갖다대니 무늬가 새겨지면서 그 마찰음으로 ‘뽀로롱뽀로롱’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이는 제주흙을 갖고 옹기를 만들 때만 나는 소리라 한다. 다른 지방의 흙으로 옹기를 만들고 그에 무늬를 넣을 때는 이와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는데 이는 제주의 흙이 딱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강창언 제주도예원장.ⓒ제주의소리
강창언 제주도예원 원장은 보로롱 무늬를 넣을 때 나는 소리를 ‘비를 부르는 소리’라고 했다.

“‘비를 부르는 소리’를 내며 만들어진 무늬를 자세히 보면 흡사 비가 내리는 문양 같다”며 “그렇게 만든 허벅에 또 물을 담으니 너무 오묘하지 않냐”고 말한다.

강 원장은 “이처럼 독특한 제주의 전통옹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생활이고 삶으로 옹기를 만들어오던 제주의 도공들이 몇 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를 빨리 계승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들다 보니 전수하려는 젊은 세대가 없다”고 걱정했다.

강 원장은 또 “제주옹기를 빚는 기술을 다음 세대가 전승한다고 해도 그것은 원 세대들이 빚어내던 옹기와 같을 수는 없다”며 “정말 순수하게 생활로 빚어내던 옹기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넋 놓고 허벅장 시연을 바라보느라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솔직히 가마에서 구워낸 감자 한 개와 고구마 반 개를 먹어서 시장끼는 없었지만 때가되면 또 밥을 먹어줘야 하는 법. 도예원에 계시는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말아주신 국수를 김치와 함께 한 그릇 뚝딱 비웠다.

▲ 제주도예원에 계신 아주머니가 끓여주신 따뜻한 국수로 점심을 하고 있다.ⓒ제주의소리
오후 3시. 전통 불대장 강신원 선생의 ‘제주전통가마 노랑굴 소성방법’, 허벅장 전수자 허은숙씨의 ‘제주전통옹기에 나타난 문양의 종류 고찰’, 강창언 제주도예원장의 ‘제주전통도기의 변천’에 관한 학술발표가 있었다.

오전 내내 추운 곳에 있다가 들어온 석유난로가 켜진 따뜻한 실내. 국수에 한 그릇에 배도 부르고 발표를 위해 낮춰진 실내조명. 졸음이 쏟아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문 하나를 열고 나오니 졸음이 싹 가실 정도의 찬 기운이 또 엄습한다. 1분 정도 바람을 쏘이고 다시 들어갔다.

학술발표가 끝난 후 일정이 끝났나 싶었는데 이번은 또 삼겹살 파티란다.

“이 돼지고기는 특별하게 맛있는 고기니까 꼭 먹고 가야 한다”는 강 원장의 말에 혹해서 또 자리 잡고 앉았다.

▲ 워크샵을 마치고 가마에서 나온 숯으로 삼겹살 파티를 했다.ⓒ제주의소리
가마에 불을 놓던 숯으로 구워서 그런 것인지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함께 먹어서 그런지 강 원장의 말대로 ‘특별히’ 맛있었다.

‘흙에서 흙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때려서 만드는 타공기법으로 제작되는 제주옹기. 척박한 화산섬의 딱딱한 흙으로는 어떠한 옹기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그 일을 해냈다. 그 빛깔과 문양, 옹기 자체에 신비로움을 가득 담고 있는 제주옹기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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