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1] 영실 오백장군오름

▲ 안개 낀 오백장군오름(영실기암) ⓒ 제주의소리

11월 첫날, 이른 아침에 오름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바람이 제법 세차다. 영실입구에 도착하니 걱정하던데로 세찬바람이 분다. 제주의 북쪽에는 안개가 잔뜩 껴있어 금방이라도 백록담을 넘어올듯한 태세다. 

오백장군오름은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한라산 동쪽을 넘어가는 1100도로의 한라산 등반로인 영실코스에  있다.  백록담과 물장오리(오름)와 더불어 오백장군은 제주의 3대성소(三大聖所)로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 안개 ⓒ 제주의소리
▲ 안개 ⓒ 제주의소리

오백장군오름은 해발 1,639.3m  비고 389m 이다.  한라산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을 찌를듯이 솟구쳐 있는 약 2천여개의 기암으로 둘러싸여 있다.   제주창조의 여신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는 여신들의 천국이다.  그중에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없는 곳이 없을 만큼 제주를 창조한 여신으로  제주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설문대할망에 관한 전설을 몇가지를 소개하면 한라산을 쌓을 때 흙을 치마폭에 담아 날랐는데 뜯어진 치마구멍사이로 떨어진 흙이 오름이 되었다거나 한라산을 만들고 보니 봉우리가 너무 뾰족해서 주먹으로 가볍게 툭 치니 백록담이 생겼다는 등 그리고 한라산을 베개로 삼고 서귀포 고근산에 엉덩이릏 걸치고 앞바다에 떠 있는 범섬에 다리를 걸치고 잠을 잤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오백장군에 관한 것이다.

▲ 안개 ⓒ 제주의소리
▲ 안개 ⓒ 제주의소리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오백명이나 자식을 둔 설문대할망은 자식들을 위해서 끼니를 마련하는게 항상 걱정이었다.  이날도 예전처럼 커다란 솥을 걸고 자식을 위해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솥위에 올라가서 국자로 저어가며 죽을 끓이다 그만 발을 헛디뎌 죽솥에 빠지고 말았다.  자식들이 돌아와 보니 죽은 끓고 있는데 어머니는 보이지 않자 어머니를 기다리다 배고픔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죽을 먹으면서 어머니를 기다리기로 했다.  형제들은 평상시와는 다르게 죽이 맛있다고 하면서 먹었으나 이중에 효성이 지극한 막내는 어머니가 오셔야 먹겠다며 기다리다 솥바닥에 뼈가 나오자 어머니의 뼈임을 직감하고 통곡한다.

▲ 영실계곡 ⓒ 제주의소리

어머니의 살을 먹은 형제들은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몇달을 통곡하다 그자리에서 바위가 되었으며 그들이 흘린 피눈물은 봄이 되면 한라산을 붉게 물들이는 철쭉꽃이 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번뇌를 구도하는 고행자의 형상이라 하여  오백나한(吳百羅漢)이라 부른다.  한편 막내는 슬피 울며 달려가다 차귀도에서 제주를 지키는 장군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의 또다른 죽음은 이외에도 물장오리에서도 나온다.

▲ 볼레오름과 삼형제오름 ⓒ 제주의소리
▲ 윗세오름 삼형제와 백록담 ⓒ 제주의소리

전설을 뒤로 하고 영실등반로를 따라 오른다. 세찬 바람에 안개가 곧 넘어 올듯한 기세다.  능선을 오르다 잠시 뒤를 돌아보면 수많은 오름들이 보인다.  가까이 볼레오름을 비로하여 이스렁, 어스렁오름, 저멀리 산방산, 삼형제오름, 쳇망오름, 사제비동산등 한라산 자락에 펼쳐져 있는 오름들을 보면 난 이미 그들의 품에 안겨 있다.  영실계곡의 아름다움과 오름들의 파노라마는 영실계곡과 오백장군오름만의 멋이다.

▲ 볼레오름과 삼형제오름과 이스렁오름 ⓒ 제주의소리
▲ 쳇망오름과 사제비동산 ⓒ 제주의소리

한라산 단풍은 이미 지기 시작하고 겨울을 준비하는 듯 했다.  날씨가 좋을때면  돌기둥과 절벽사이로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화음을 맞추고 영실계곡에 걸친 안개와 비만 오면 날리는 비폭(飛瀑), 봄에는 초록의 향연이 가을엔 온갖 단풍이 웅장한 대자연의 교향악이 되어 한라산의 위대함을 알린다.

▲ 영실계곡 ⓒ 제주의소리
▲ 영실계곡과 볼레오름 ⓒ 제주의소리

오백장군오름은 옛 영실등산길로 가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한라산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어 일반인은 출입을 할 수가 없다.  한라산의 명물인 구상나무숲을 이리저리 헤치며 도착한 오백장군오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마치 설악산의 기암괴석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설문대할망의 슬픔인지 오백장군들의 통곡인지 몰라도 짙은 안개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설문대할망은 굳어버린 자신의 자식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가 보다.  원래 설문대할망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조그마한 소리에도 안개를 뿌린다고 하지 않던가. 아쉽기만 하다. 

▲ 백록담과 구상나무 숲 ⓒ 제주의소리
▲ 백록담과 방애오름 ⓒ 제주의소리
▲ 주목나무 열매 ⓒ 제주의소리
 
오백장군오름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영실계곡의 동쪽은 5백여개가 넘는 형형색색의 모양을 한 돌기둥이 울창한 숲사이를 뚫고 서 있고  서쪽벽 역시 천여개의 바위기둥이 한데 붙어 서있어 병풍바위라 부르며  둘러친 모습이 마치 석가여래가  불제자에게 설법하던 영산(靈山)과 비슷하다 해서 영실(靈室)이라고 불리워졌다고 한다.  꼭 그러하지 않는다해도 영실은 설문대할망과 그의 오백 아들의 영혼이 모여 제주사람과 한라산을 수호하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 한라산으로 향하는 이들은 이러한 영혼의 바램을 알까.  어쨋든 이곳을 지날때면 조용히 하고 볼 일이다.

▲ 안개 ⓒ 제주의소리
▲ 안개 ⓒ 제주의소리

매서운 바람과 안개는 곧 겨울을 알리는 신호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이제 곧 이곳에 눈도 내리리라.  겨울의 한라산은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설문대할망이 만들어낸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를 알 것 같다.  신과 인간의 소통은 인간과 자연의 소통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 자연은 영원히 보존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어야할 사람은 바로 한라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한라산의 진정한 주인은 후손이 아니라 한라산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새들과 곤충,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설문대할망의 영혼이기 때문이다.<제주의소리>

▲ 구름 ⓒ 제주의소리
▲ 단풍 ⓒ 제주의소리
▲ 단풍 ⓒ 제주의소리
▲ 백록담 ⓒ 제주의소리
▲ 열매 ⓒ 제주의소리
▲ 열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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