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악인 '30년전 약속' 한라산 종주등반
광복30주년 시발 "100주년 2045년에 만나자"

▲ 1975년 종주등반을 끝내고 고산수월봉 정상에서 ⓒ 오현등고회 제공
광복 30주년이었던 지난 1975년 한라산을 동서로 종주등반하고 타임캡슐을 묻은 후 30년 후에 다시 종주등반을 하자는 약속이 당시 종주등반에 참여했던 원로산악인과 후배들에 의해 지켜지게 됐다.

제주산악회와 함께 제주산악의 효시인 오현고등학교 산악부 출신들로 구성된 오현등고회(회장 고영진)가 제주산악연맹(회장 고충홍)과 함께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30년전 선배들이 했던 약속을 지키고, 또 다시 40년 후의 약속을 하기 위해 한라산 동쪽 끝자락에서 서쪽까지를 잇는 종주등반 '30년전의 약속' 등반에 나선다.

이제는 제주산악계의 원로가 된 안흥찬(75·제주도산악연맹 초대회장) 고(故) 김종철(초대 제주도적십자 산악안전대장·오름나그네 저자) 김승택(71·한라윈드앙상블 상임지휘자) 김현우(73·전 적십자 제주도혈액원장) 등과 오현등고회 소속인 안상옥(53) 서봉준(53) 고석봉(51·사망) 임시영(50) 김창영(49) 이용진(49) 등 10명의 산악인은 광복 30주년을 맞는 1975년 8월 15일을 기해 아름다운 제주산하를 몸으로 체험하며, 제주산악인의 기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한라산을 동서로 잇는 종주등반에 나섰다.

▲ 성산일출봉에 타임캡슐을 묻는장면 ⓑ오현등고회 제공
당시 길이라고는 일주도로 밖에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지도와 나침반만으로 종주등반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으로까지 비쳐졌으나 이들은 결국 첫 한라산 중주등반에 성공해 제주산악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금처럼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변변한 자료도 없는 이들의 첫 등반은 2년에 걸쳐 이뤄졌다. 첫해인 1975년에는 성산포를 출발해 4박5일에 걸쳐 오름을 다 오르면서 한라산 정상을 정복한 후 서귀포로 하산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제주시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 후 서쪽으로 내려오면서 수월봉까지 잇는 2년에 걸친 동서남북 종단을 마무리 지었다. 이들은 단순히 등반에 그치지 않고 식생과 오름도 일일이 조사했다.

이들은 당시 첫 출발지인 성산일출봉에 제주 최초의 타임캡슐을 묻고 30년 후인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다시 동서 종주등반에 나서자고 약속을 한다. 타임캡슐에는 참가자들의 사인이 담긴 태극기와 등반계획서가 묻혔다. 

당시만 해도 평균 수명이 60세 안팎인 상황에서 40대 였던 이들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 지는 극히 불투명 했으나 "만약에 그 때도 살아 있다면 조국광복과 제주인의 기상을 드높이기 위해 후배 산악인과 함께 다시 산에 오르자"며 '30년 후의 약속'을 하게 된다.

무모하기만 했던 이들 산악인의 의지는 2년 후인 1977년 9월 제주산악인의 상징인 고 고상돈씨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해 대한민국의 기상을 세상에 떨치게 됐으며, 1982년 제주대학 산악부 김성택씨의 안나푸르나 트래킹, 1985년 오현등고회 정용선씨의 동계 에베레스트 서능 등반, 서봉준씨의 동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1986년 서귀포 백록산악회 배종원씨의 K2 등반으로 이어지면서 제주산악계의 큰 발전을 다지는 디딤돌이 됐다.

▲ 타임캡슐에 들어갈 부장품에 참가자들이 사인하는 모습 ⓒ 오현등고회 제공
제주산악회와 오현등고회는 당시 선배산악인들이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8월12일 오전8시30분 성산일출봉을 출발해 3박4일 일정으로 한라산 서쪽 끝단인 고산 수월봉을 잇게 된다.

'30년 후의 약속'에는 이제는 고인이 돼 버린 김종철 선생을 제외하고는 당시 참여했던 산악인들과 오현등고회 회원 30여명, 그리고 제주산악회 회원 10여명 등 모두 30여명이 참가해 30년전 선배 산악인들이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이번 동주등반에 나서게 되는 산악인들은 또 한 번의 약속을 하게 된다.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 8월 15일 당시 산악인들과 함께 제3차 한라산 동서 종주등반을 나서겠다는 '40년 후의 약속'을 할 계획이다. 30년전 선배들의 약속을 지키고 이제 또 다른 약속을 후배 산악인들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다.  

이들은 8월12일 성산일출봉에서 타임캡슐이 묻힌 땅을 확인 한 후 종주등반 종착지인 고산 수월봉에 또 하나의 타임캡슐을 묻을 예정이다. 

타임캡슐에는 참가자 전원의 서명과 소망이 담긴,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대형 한반도기가 묻히게 된다. 여기에는 일반인과 관광객들도 서명을 할 수 있다. 또 제주산악연맹 산하 단체들의 기와 종주등반을 기록한 등반지도, 이번 행사 책자, 그리고 참가자들이 봉안하고 싶은 기념품 1~2점을 함께 묻게 된다.

8월 15일 수월봉 광복 60주년 기념식 현장에는 30년전 제주도 최초의 종주등반을 기록한 사진전도 마련된다.

▲ 1975년 성산일출봉에 타임갭슐을 묻고 나서 ⓒ 오현등고회 제공
'30년전의 약속' 종주등반을 기획한 오창현(오현등고회)씨는 "이번 행사는 30년전의 세대와 40년 후의 세대를 조국 광복과 한라산을 매개로 산악인의 끈끈한 정과 우애를 보여주게 될 것"이라면서 "제주산악인의 정신을 깨치게 하고, 제주인의 마음속에 제주의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또 "선배들이 약속했던 '30년 전의 약속' 을 되새기기 위해 광복 70주년과 80주년, 그리고 90주년이 되는 광복절에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 종단행사를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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