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 김석범씨, “숨겨진 역사의 진실 밝히기 위해 글 썼다”

“내 나름대로 (제주4.3의) 진상을 밝히는 한편 피고석에 앉힐 범인을 잡고,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글을 썼다”.

제1회 4.3평화상을 수상하는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씨(90)가 1일 오후 시상식에 앞서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한 평생을 글쟁이로 살아온 그지만, 이날만큼은 할 말도 많은 것 같았다.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 그는 192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제주시 삼양 출신이다. 지금도 그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조선인’ 신분으로 살고 있다.

4.3이 침묵과 금기의 시대였던 1957년 당신의 최초의 4.3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해 일본 사회에 제주4.3의 진상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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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씨. ⓒ제주의소리

이러한 공로로 제주4.3평화상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로부터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씨는 “4.3평화상은 제주에 국한된 상이 아니다. 앞으로 세계 평화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갖게 되는 성격의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4.3평화상을 고향 땅에서 받게 돼 대단히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6년 소설 <화산도>를 일본 문예 춘추사 ‘문학계’에 연재하기 시작해 1997년 원고지 3만매 분량의 원고를 탈고, 새로운 문학사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양한 창작 활동으로 일본 아사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상(1984년)과 마이니치 예술상(1998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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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씨. ⓒ제주의소리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왜 4.3을 배경으로 한 <화산도>라는 소설을 썼을까.

그는 “해방이 되고 48년 말부터 (일본으로) 밀항을 온 제주 출신들로부터 얘기를 들으면서 4.3을 알게 됐다. 고향에서 발생한 처참한 사건을 접하고는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면서 “내 나름대로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잡고,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이번이 네 번째 제주 방문이다. 조선적이라는 이유로 1998년 제주에서 열린 4.3 50주년 기념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 참석이 거부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입국하기도 했다.

그는 “고향에 대한 얘기를 하면 한이 없다. 그제 제주에 도착했는데, 비행기에서 한라산을 바라봤는데, 구름 때문에 보지 못했다. 왜 얼굴을 숨겨버렸는가 섭섭하기도 했다”면서 7년만의 고향 방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그는 “제주에 도착한 후 4.3평화공원에 갔는데, 7년 전에 비해 공원도 넓어지고 행방불명인 묘비도 생겼더라. 이 모든 게 투쟁의 결과”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4.3의 완전한 해방까지는 갈 길이 멀다”며 4.3이 여전히 진행형임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오히려 말을 아꼈던 것일까. 그는 수상식에서의 그의 모습은 더 꼿꼿했고, 눈빛은 더 형형했다.

그는 왜 자신이 ‘무국적자’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속에 품어왔던 말을 꺼냈다.

“저는 한국 국적도, 북한 국적도 가지지 않은 무국적자다. 90 평생 서울과 제주를 합쳐 3~4년 밖에 조국에서 살아보지 못한 디아스포라다. 남과 북으로 두 동강 난 반쪽이 아닌 통일 조국의 국적을 원하는 나에게는 ‘국적’으로 뒷받침되는 조국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원래 조국은 하나였고, 식민지 시절에도 남·북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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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나고 자란 김석범씨. 어떻게 4.3을 배경으로 한 소설 <화산도>를 쓰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다. ⓒ제주의소리
그는 또 “이제 4.3 67주년, 3년 후면 70주년이 된다. 4.3의 완전 해방이 남·북이 하나될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고도 했다.

분단 조국의 청산이야말로 4.3의 완전 해방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해방 70년, 우리는 역사를 재검토할 시기에 도달했다”며 “해방 공간의 역사 바로 세우기와 4.3진상규명을 병행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3에 역사적 이름을 짓자는 정명(正名) 운동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기념관에는 백비(白碑)가 누워 있다. 백비에는 “언제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는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의 힘으로 ‘올바른 역사적 이름’ 정명을 찾아야 한다. 정명한 이름을 똑똑히 백비에 새겨 이름 있는 기념비를 일궈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3의 정신인 ‘화해와 상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그는 “나치스 독일이 범한 홀로코스트, 인도상의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지금도 독일의 수사당국은 세계 각처에 신분을 숨겨 살고 있는 나치 범죄자 추궁에 손을 뻗고 있다”면서 “4.3가해자에 대한 재판은 보복, 원한을 갚는 것이 아니다. 정의의 구현, 희생자의 마음의 치료 구제”라고 말했다.

대규모 양민학살에 대한 미국(당시 미군정)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그는 “범죄자가 없는 자리에서 국자적 양심과 노력으로 진상보고서를 작성했는데, ‘피고자가 없는 자리에서 피고자를 대상으로 한 재판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때는 피고석에 미국도 앉아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에둘러 미국의 책임을 꼬집었다.

김석범 옹은 4.3전야제와 추념식 등 4.3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고향인 제주시 삼양동 소재 조상 묘를 참배하는 등의 일정을 마치고 오는 7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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