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편집국-여기는 강정] 고권일 반대대책위원장 “어느덧 3000일, 처음엔 너무나 외로웠다”

생명평화마을 제주 서귀포시 강정. 지난 2007년 4월26일, 강정마을에서 주민 1200여 명 중 불과 87명만이 참석한, 그것도 마을 정관까지 어겨가며 소집된 임시총회를 통해 ‘박수’로 해군기지가 유치 결정된지 어언 3000일. 강정을 생명평화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길고 험난한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범국민문화제-함께 온 길! 강정평화 3000’ 평화콘서트 현장에 이동편집국을 마련해 강정마을의 생생한 생명평화 기운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정말 외로웠다. 주민들만 발바닥이 갈라져라 걸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이번에 1천명이 모였으니, 내년에는 2천명, 내후년에는 4천명이 모여 제주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꾸자”.

2007년 봄 평화롭기만 하던 ‘일강정’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불행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당시 윤태정 마을회장을 중심으로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한 것. 그것도 “마을주민 만장일치로 찬성했다”는 거짓말까지 붙여서….

하지만 마을주민 70~80%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만장일치 찬성’이라는 말에 “혹시 나만”이라는 생각에 숨 죽여야 했다.

그러나 거짓은 금방 탄로 났다. 주민들이 알음알음 이게 사실이 아니란 걸 알게 됐고, 삼삼오오 모이면서 “우리라도 반대의 목소리를 알려야하지 않느냐”고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이 33명이었다. 그렇게 강정해군기지반대책위원회는 만들어졌다. 그런데 언론에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농사나 짓던 사람들이 기자회견 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외부에 반대대책위원회 출범을 알리기까지 또 보름이 지났다.

언론을 통해 강정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 출범을 공식적으로 알린 게 2007년 5월18일이었다. 그로부터 이들은 30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구럼비에서, 중덕 삼거리에서, 공사장 출입구에서 해군들과 맞서 싸웠다. 경찰에 끌려가기도 수차례, 물어야 할 벌금만도 억대가 넘어갔다.

그래도 이들은 매년 여름이면 걷고 또 걸었다. 일행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7월27일 제주시청 출발해 제주도를 동-서로 나눠 걷기를 엿새. 8월1일 오후 1시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다다르자 평화대행진 일행은 출발 때보다 더 불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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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권일 강정마을 부회장. ⓒ제주의소리

고권일 반대대책위원장은 “반대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마을에 도착하니 우리를 환영해주는 주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3000일을 싸워오게 됐다”고 해군기지 투쟁 3000일을 뒤돌아봤다.

초기 반대투쟁에 대해서도 그는 “처음에는 강정마을 철저히 고립되어서 혼자였다”면서 “당시 도정에서 월평, 도순, 하원, 법환 등 강정마을을 둘러싼 모든 마을을 포섭해서 해군기지 유치 찬성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철저히 고립되어서 혼자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3년간 우린 고립됐고, 죽어갔다. 처음 강정주민들만의 평화행진은 너무 외로웠다. 도 일주를 하는 동안 도민들은 외면했다. 주민들만 발바닥이 갈라지면 걸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여러분들이 우리의 손을 잡아줬다. 여러분 곁을 봐라,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나. 이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힘줘 말했다.

제주와 비슷한 일본 오키나와에서 보고 느낀 점도 전했다. 오키나와는 미 해군의 동북아 전진기자나 마찬가지다.

고 위원장은 “오키나와도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평화행진을 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미군기지에 대해 찬·반으로 반반 나뉘어 늘 여론은 두 쪽으로 나뉘었다고 한다”며 “그러나 어느 순간 3천명이 넘는 순간 오키나와의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이 때부터 고 위원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 위원장은 “여론이 바뀌고, 반대투쟁에 힘이 실리면서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시의원과 시장이 선출되고, 현지사(제주를 예로 들면 도지사)까지 만들어 냈다”며 “이제는 평화대행진에 이제 10만이 모인다. 일본의 1%밖에 되지 않는 오키나와 일본의 여론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의 1%, 제주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다”고 힘주었고, 이에 1천여 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은 “맞다”고 환호했다.

일부에서 강정평화대행진이 올해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축했다.

그는 “매년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에 걸친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은 항상 열릴 것”이라며 “내년에도 미리 올 수 있도록 1년 전부터 비행기 표를 예매해달라. 그리고 한 명씩 더 데리고 와 달라”며 “그렇게 해서 내년에는 2000명을 넘기고, 내후년에는 4000명을 넘기자. 그러면 제주도가 바뀌고,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고 호소했다.

해군기지 투쟁의 선봉에 섰던 고 위원장의 외침이 늦었지만 3000일이 되면서 평화를 향한 거대한 울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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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권일 강정마을 부회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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