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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한 마을의 골목길. 도로 일부가 자신의 소유로 확인되자 토지주가 도로에 콘크리트 벽을 쌓았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현장] '수십년 도로' 소유권 주장 잇따라...“사용료 달라” 부당이득금 소송도 급증

제주시 한 마을의 안길 도로. 차를 타고 골목길을 지나 일주도로로 진입하기 직전, 느닷없이 도로 한가운데 콘트리트 벽이 등장한다.

맞은편에서 진입한 차량이 급하게 방향을 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칫하면 건물로 들어설 수 있는 도로구조였다. 건물 앞에는 공사장에서 봄직한 경광등이 설치돼 있었다.

최근 부동산 광풍으로 토지 개발을 위한 측량이 이뤄지면서 오래전부터 도로로 쓰인 토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토지주가 사유재산권을 행사한다며 도로를 막는가 하면, 자신의 땅을 허가없이 도로로 사용했다며 당국(제주도, 행정시)을 상대로 거액의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소송까지 빗발치고 있다.

콘크리트벽이 등장한 제주시 한 도로의 경우 지난해말 토지주가 자신의 땅을 측량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도로로 사용되는 사실을 확인했다.

▲ 도로 한가운데 콘크리트 벽이 생기자 제주시는 부랴부랴 도로 구조를 변경한 뒤 위험도로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토지주는 자신의 땅을 허가없이 사용할 수 없다며 토지 경계선에 콘크리트 벽을 쌓았다. 제주시는 주민들의 통행권 확보를 위해 해당 토지를 매입하려 했으나 토지주는 협의 매수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제주시는 사유지 경계선의 토지를 확보하고 부랴부랴 경계지에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통행로는 확보했지만 도로구조가 기형적으로 변하면서 수개월째 통행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제주시에 따르면 읍면지역을 중심으로 토지주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도로 사용을 막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토지주 변경 이후 측량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다.

최근에는 토지주들이 민원을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도로 사용료를 요구하며 제주도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토지주들의 동의를 얻어 도로를 만들었지만 이를 입증할 공문서가 없어 당국이 애를 먹고 있다. 법원에서도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추세여서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다.

제주시 관계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토지주와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도로를 개설한 곳이 많다”며 “당시 대부분 구두로 동의를 얻어 이를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토지주가 자신의 땅으로 확인된 도로에 콘크리트 벽을 쌓자, 제주시는 인근 토지에 부랴부랴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이어 “최근 후손들의 부동산 매매로 토지주가 바뀌면서 분쟁도 덩달아 늘고 있다”며 “토지를 매입하려고 해도 땅값이 올라 이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제주시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제기한 토지만 10여필지에 이른다. 최근 소송이 증가하면서 제주시가 토지주들에게 지불해야 할 연간 사용료만 수천만원에 달한다.

법원이 도로의 사유권을 인정하면 제주시는 공시지가의 일정 비율로 도로 사용료를 토지주에 지급해야 한다. 토지 매수를 제안해도 거부 당하기 일쑤다.

제주시는 이처럼 도로로 쓰이는 사유지를 매입하거나 토지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올해 본예산에만 3억8000만원을 편성했다. 이마저 대부분 소진돼 새해에는 추가 예산을 확보해야 할 처지다.

제주시 관계자는 “토지주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속수무책이다. 관련 예산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며 “현재로서는 땅을 사들이는 수밖에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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