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녕마을 입산봉에서 바라본 김녕마을의 전경이다. ⓒ 장태욱 김녕 곡식이 익어 가을 들판을 누렇게 물들이고, 억새가 활짝 피어 들녘을 하얗게 수놓았다. 수확을 앞둔 귤이 부끄러운 듯, 돌담 너머로 볼 일부만 노랗게 분칠한 얼굴을 내민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자기 전 아침이 기다려지고, 잠에서 깨면 어디론가 떠나야 직성이 풀리는 계절이다. 시원한 바닷바
▲ 알뜨르 알뜨르는 상모리 해안 가까운 곳에 있다. ⓒ 장태욱 알뜨르 대정읍 상모리 해안 가까운 곳에 '알뜨르'라는 곳이 있다. '알'은 아래쪽을 '뜨르'는 마을 혹은 동네를 말한다. 과거 이곳에는 알오름동, 저근개, 골못, 광대원 등의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지금은 그 마을들이 모두 사라지고, 넓은 평원에 농지가 자리 잡고 있다
▲ 송악산 전망대 근처 끝에 보이는 곳이 전망대다. 전망대 주변 평지에서 주민들이 말을 방목하고, 농사를 짓는다. ⓒ 장태욱 제주도 서남쪽 지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정표는 해안 가까운 곳에 우뚝 솟은 산방산이다. 이 산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형제섬이 내다보이는 절경으로 인해, 전국에서도 아름다운 도로로 손꼽힌다.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3km쯤 가
제주섬의 모습은 서남단 끝에서 남쪽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그 돌출부의 동쪽 해안에 '상모리'라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로 되어있다.최근에는 송악산과 산방산 일대의 자연절경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두 산을 연결하는 해안벨트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 와중에 상모리 산이수동 마을과 그 동쪽 사계리를 잇는 도로는
▲ 월대천 도근천이 바다와 만나기 전에 깊은 연못을 이루는데, 사람들을 이 곳을 월대천이라 부른다. ⓒ 장태욱 제주시 서쪽에 있는 '외도동'은 도근천의 바깥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라산 근처에서 발원한 도근천은 외도동에서 바다에 이르기 직전 큰 연못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이 연못 주변에 월대를 만들었기에, 그 연못을 월대천이라 부른다. 월대천은
▲ 월대 도근천 하류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 이 일대에 비친 달빛이 아름다워 주민들은 월대를 만들었다. ⓒ 장태욱 월대 제주시 외도동은 시내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7~9km정도 이른 곳에 있다. 과거에는 마늘과 보리를 재배하던 작은 농촌이었는데, 10년 전 쯤 이 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제주시 도심의 기능을 분담하는 베드타운으로 떠오르는 곳이
성읍민속마을은 제주 정의현의 옛 모습을 비교적 잘 본존하고 있어서, 제주에 처음 방문한 관광객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찾게 되는 곳이다. 이 성읍민속마을에서 서쪽으로 가면, 이 마을과 인접한 가시리에 이르게 된다.4·3 당시 가시리에는 400여 가구에 1700여명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주민 500명 정도가 희생을 당하여 남제주군에서 가장 피해
▲ 수월봉 제주섬 가장 서쪽에 해당한다. ⓒ 장태욱수월봉은 바다에서 높이가 77m밖에 되지 않은 낮은 오름이다. 그 정상에 고산기상대가 있어서, 꼭대기까지 찻길이 포장되어 있다. 그런데 길이 시멘트로 포장된 이 낮은 오름을 사람들은 영산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찾아 온다. 수월봉에는 다른 오름에서 볼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수월봉 정상에서
▲ 고산리 해안 용수리 마을에서 바라본 고산리 해안절경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이 차귀도이고, 가운데 있는 것이 눈섬이다. 가장 왼쪽에 돌출한 봉우리가 당산봉이다. ⓒ 장태욱 고산리 제주도는 섬 가운데에 한라산이 솟아 있다. 남북으로는 길이가 짧게, 동서로는 길게 뻗어 있다. 따라서 섬은 마치 고구마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고구마 모양의 동쪽
현재 제주에서 재배되는 귤은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밀감(중국의 온주지방이 원산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으로, 이들이 제주 농가에 본격 보급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귀포를 방문한 자리에서 '서귀포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은 오직 감귤이다'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도민 사회에서 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서귀포 시내에서 1132번 도로를 따라가다 신효마을과 하효마을을 지나면, 효례교에 이르게 된다. 효례교는 하효마을과 남원읍 하례리의 경계에 해당하는 효돈천이 1132번 도로를 가로지르는 지점에 건설됐다. ▲ 남쪽에서 바라본 쇠소깍 관광객들을 실은 테우가 계곡을 떠다니고 있다. ⓒ 장태욱 효돈천 상류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천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천이다. 효
서귀포시는 반경 3km 이내에 인구와 행정이 집중되기 때문에 도심이라고 해봐야 매우 좁은 영역에 제한된다. 이 서귀포시 도심을 벗어나 동쪽으로 향하면, 양 길가에 귤을 재배하는 마을들이 성산포까지 약 40km 정도 이어진다. 그중 첫 번째 나타나는 것이 토평동이고, 그 다음 나타나는 것이 효돈동이다. 서귀포 도심에서 효돈동까지 거리가 불과 4km 남짓하다.
비양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고종 13년(1876년)에 서(徐)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입도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이전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잠시 군인들이 머물렀던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비양포구 섬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주민들은 이 포구를 기반으로 삶을 지탱한다. ⓒ 장태욱 비양도 해방 전후로 이 섬에는 80여 가구에 주민 3
비양봉은 한림항 서쪽 4.5km 지점에서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오름인데, 그 오름이 인근 육지와 떨어져 바다 위에 있으니 사람들은 비양도라 부른다. 그리고 그 비양봉에 의지해서 오름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 비양리다.비양도에 들어갈 때는 이 섬의 정 남쪽에 자리잡은 포구를 거쳐야 한다. 주민들이 섬 남쪽에 포구를 만든 것은 비양봉에 의지해 겨울철 북쪽에서 불
장마 기간 동안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았다. 농민들이 장마 기간에 가뭄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놓였다. 제주는 정말 무더운 여름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동반하고 제주시 한림항 서북쪽에 위치한 비양도를 찾기로 했다.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 약속과 식언을 반복하는 동안 방전되어 버린 머리를 충전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에서다. 한림항을 통해 비양도로 가는
지루했던 장마가 그 명을 다하고 예년보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무더위에 도심을 떠나 시원한 바다나 산으로 떠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제주도가 사람 살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부를만한 이유는 어디에서든지 10여분만 차를 운전하면 쉴만한 자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일주도로를 따라 10Km쯤 지난 길가에 화북주공아파트 단지가
제주 섬의 모양은 서귀포 시내에서 동쪽으로 조금 벗어나 정방폭포를 지나는 지점에서부터 남쪽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보목 마을은 그 돌출한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그 때문에 제주의 해안 마을들을 경유하며 섬을 일주하는 1132번 도로도 보목 마을은 지나지 못한다. 마을이 이렇듯 감춰져 있어서인지 4·3사건 당시에도 마을은 큰 화를 당하지 않았다.
서귀포항은 동쪽으로는 외돌개와 북쪽으로 천지연폭포 그리고 남쪽으로 새섬과 마주대하는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귀포항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향하는 해안도로는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데,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새섬, 문섬, 숲섬이 한편의 풍경화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태를 자랑하는 섬들을 감상하면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정
▲ 제주돌문화공원 교래리 북쪽 경계 지점에 있다. ⓒ 장태욱 제주 시내에서 표선을 향해 뻗은 동부산업도로(1137번 도로)는 회천에서 남조로(1118번 도로)와 만난다. 남조로 검문소에서 오른쪽으로 남조로를 따라 4Km쯤 지나면 길 오른쪽에 우뚝 솟은 오름이 보인다. 끝이 뾰쪽하기가 마치 바늘과 비슷하다 하여 바농오름(바농은 바늘을 이르는 제주 방언)이라
용담 해안가에 있는 레포츠 공원은 공원이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축구나 농구를 하려는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데이트를 하려는 연인들도 즐겨 찾는다. 이 공원은 넓은 주차장이 갖춰져 있어서 자동차로 용담해안도로를 지나다가 잠시 차를 세워두고 해풍을 맞으며 정다운 대화를 나누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 용담레포츠공원 주차장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