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5월의 마지막 저녁, 강정마을 의례회관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을행사에 자주 얼굴을 참석하신 어르신들과 생명과 평화를 위해 전국순례를 떠났다가 강정에 ‘발목 잡힌’ 활동가들 틈에서 재잘거리는 청소년들도 여럿 보였다. ‘샨티학교’(경북 상주 소재, 교장 정호진)라는 대안학교에서 온 학생들이다. 이 학교 전교생 30명과 교사들이 강정마을로 평화 기행을 왔다가, 마침 희망제작소 박원순 이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의례회관에 자리를 틀고 있던 것이다.
“경제효과 어지러운 소리 말아
전복에 오분작에 물구럭(문어)에 구쟁기(소라)에
후손들 물려줄 우리 바당(바다) 제일이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런 거 어실 때도’라는 해군기지 반대 노래를 전진택 이사(생명평화마을)의 기타반주에 맞춰 불렀다. 제주도 방언이 섞인 노래가 생소할 만도 한데, 노래를 처음 불러보는 학생들이 더 흥겨워했다. 대담이 시작할 때까지, 학생들은 감춰진 끼를 한없이 발산했다. 그중에서도 한 여학생의 춤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대담은 공식적으로 7시 30분부터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앞풀이’ 시간을 가진 후 8시에 대담을 시작할 계획이었다”고 귀띔을 해 줬다.
시계가 저녁 8시를 넘기자마자 박이사가 의례회관으로 들어왔다. 대담에 참여하기 위해 기다리던 강동균 마을회장, 조영배 교수(제주대학교), 송강호 박사(사단법인 개척자들) 등이 박이사장을 맞았다.
전진택 이사의 사회로 ‘강정마을의 오늘과 내일’을 위한 대담이 진행되었다.
박이사는 “강정마을에 관해 소식으로만 듣고 있었는데, 멀리에 있던 지라 죄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제주희망열차에서 제안을 해 와서 오게 되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조영배 교수는 자신의 고향이 강정임을 내세우며, “강정은 물이 아름다운 마을이라 예로부터 ‘일강정’이라 불렀다. 그 때문인지 우리 할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지을 때, 헤엄칠 영(泳)자를 넣었다. 그런데 오늘 내 이름을 누가 조용배로 바꿔 버렸다”며 행사장 현수막에 이름이 잘못 적힌 것을 바로잡았다. 객석에서 폭소가 쏟아져 나왔다.
강동균 회장이 많은 이들이 찾아와 지지해주니 “살맛나는 세상이 오는 것 같다”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송강호 박사도 “유신시절 박원순은 그 이름만으로도 희망 그 자체였는데, 이렇게 옆에 앉게 되니 영광”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동균 마을회장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를 요목조목 설명했다. 강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1퍼센트이지만 그 1 퍼센트가 대한민국의 보석이라 칭송하며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고”, “제주도가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군사기지는 제주도에 들어서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지적했다.
강회장은 또, 해군이 해군기지를 추진하면서 “물밑 행정으로 주민들을 이간질 시켜 마을 공동체를 붕괴” 시켰기 때문에, “마을 안에 200여개에 일던 친목조직이 이젠 하나도 남지 않았다”라고 하소연 했다. 그러면서 강회장은 “국책사업이라 하면 국민들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사업이어야 하는데”, 강정에 추진하는 해군기지는 “국책사업을 빙자한 해군의 밥그릇 늘리기 사업”이라고 비난했다.
조영배 교수는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지금 해군기지가 필요한지, 그게 제주도에 지어져야하는지, 왜 하필이면 강정마을인지 하나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또, 국제자연보호연맹 회의가 내년도에 제주도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 바다에 콘크리트를 발라 놓겠다는 게 이해가 되는 일이냐고 되물은 뒤, “제주도지사와 해군이 도민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교수는 해군이 해군기지를 추진하면서 1500백 명 정도 되는 주민 들 중에서 80명을 모아놓고 찬성안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해군과 제주도가 마치 주민총회를 통해 결정한 것처럼 오도했다며, 이는 ‘방법상의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송광호 박사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해군과 그 가족을 포함한 7000명 정도의 인구 유입이 이뤄지고, 사업을 우해 3000명 정도가 들어와서 합계 1만 명 정도의 새로운 인구가 새로 들어올 텐데, 그럼 강정마을 공동체는 사라져 버릴 것 아니냐”고 역설했다. 송박사는 “철조망 그늘에서 주눅 들어 살지 말고 강정마을을 이시대의 희망으로 만들고, 평화를 나눠주는 희망의 마을로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대담자들의 발언을 들은 박원순 이사는 “1500명 중 80명만의 찬성으로, 그것도 충분한 토론을 통하지 않고 추진하였다면 불법임에 명백하다”고 규정했다. 박 이사는 국민주권, 국민의 행복추구권, 적법절차의 원칙 세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주 방폐장에 대해서도 박이사장은 처음에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80퍼센트 넘는 주민들이 찬성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반대하는 주민들이 더 많아진 것을 예로 들면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데, 해군기지를 짓지 말아야할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박이사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일관되게 반대하면 해군기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정의롭고 당당한 요구는 세력을 얻게 되고 승리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도 박이사장은 “이후 공동체를 회복하고 희망과 평화의 고장으로 만들고자하는 대안과 새로운 컨텐츠가 필요하다. 지금 여유가 없더라도 그렇게 해야 연대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또, “반대투쟁과 더불어 유엔평화대학이나 유엔평화센터 등의 유치를 통해 강정이 한반도와 세계에서 평화에 기여하는 곳으로 태어나길 바라고, 그런 걸 위해서라면 함께 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송강호 박사도 “유엔국제평화대학이 코스타리카와 요르단 등지에 설립되어 있고, 일본에도 유엔대학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캠퍼스는 없지만 삼청동에서 유엔대학 강의가 이뤄지고 있고, 강원대학 안에 에코피스 지도자 센터가 마련되어 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말고 이런 평화와 생태를 소재로 한 인재양성 기관이 들어섰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혔다.
조영배 교수는 박원순 이사의 ‘대안과 새로운 컨텐츠’에 대한 요구에 대해 “강정마을회 내에 ‘보존전략위원회를 구성했고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교수는 “지금까지는 주민들이 몸으로 싸우느라 지쳐있는 게 사실이지만, 외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도, 주민들이 주체로 활동할 것이다. 강정마을이 이제 하나의 소중한 상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청석에서도 발언이 이어졌다.
배종렬 평통사 상임의장은 대담자들과 조금 다른 제안을 펼쳐 방청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배의장은 “순천만 보전을 강조하면서 강정마을에 유엔대학 등을 유치하겠다는 발상은 다소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했다. 배의장은 “유엔질서 하의 서구적 방식의 평화는 우리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동북아 정서에 맞는 대안을 찾아야 하며, 외부에서 돈을 갖고 와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강정을 올바로 살리는 길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샨티학교 정호진 교장은 “하루하루 긴급하게 진행되는 일이 있고, 공사는 조금씩 진행되어 기지는 넓어져간다. 언론을 이끌어내고 정치권을 동원시켜내야 하고,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단합시켜야하는데, 그러려면 박원순 이사장이 불도저 앞에서 드러눕는 정도의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박이사는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오늘 토론하면서 강정마을의 지성이 크게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얼마 전에도 티벳 망명정부의 지도자 다라이 라마를 만났는데 위기와 고통은 늘 사람을 위대하게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주민들을 응원했다. 유엔평화대학 등 교유기관의 설치안에 대해서 박이사장은 “큰 규모는 의미가 없고 영국의 슈마허 대학처럼 규모가 작지만 훌륭한 지도자를 많이 육성하는 대학으로, 우리식의 제대로 된 대학을 설립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혔다.
박이사장은 그러면서도, “무엇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주민들이 갑자기 풍요로워지지는 않는다. 자기 발아래를 잘 살펴 소중한 민속 자원을 잘 발굴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우리는 엄중한 현실과 대면하는 위기상황에 있기 때문에” 이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7월 20일부터 백두대간을 걷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시간이 되면 일주일 정도를 강정에서 지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주민들의 투쟁에 힘을 보탤 뜻을 밝혔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고통이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박 이사장은 “트위트 상에서 내 팔로워가 7만3천 명 정도 된다. 방금 전 강정마을 상황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벌써 반응이 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나보다 팔로워가 많은 사람이 약 200명 정도 된다. 연예인들이 대부분이지만, 마을회장님이 이외수씨 같은 분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하면 마을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대담 말미에 필자와의 짧은 대화에서 박이사는 "강정마을에 처음 왔고, 제주 해군기지에 대서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전국적인 명망가가 강정 주민들과 함께하겠다니 주민들로써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9시에 끝나기로 한 대담은 결국 10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대담이 끝났지만 입구에서는 주민들이 박이사장과 못 다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 일정이 을 제대로 소화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