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의 즐거운 변신] ① 식당-정육점 '도원결의' 대박으로
썰렁했던 식당마다 북적북적...자구노력-시장 전체 활성화 과제

▲ 지난21일 서문시장 내 한 정육점 앞에 제주산 한우고기를 사기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목요일인 지난 21일 제주시 서문재래시장. 오후 들면서 시장 내 삼거리 모퉁이에 자리잡은 한 정육점에 손님이 한 두명씩 몰려들더니 퇴근 무렵에는 한 무리가 도열했다.   

값싼 제주산 한우고기를 구입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고객맞춤형 메뉴'로 대박 난 사연('제주의 소리' 6월22일 보도)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달만에 시장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두 달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이곳을 찾았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할 만큼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고객맞춤형 메뉴란 손님들이 정육점에서 신선한 한우고기나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필요한 만큼 구입한 다음 인접한 음식점에서 직접 요리해서 먹을 수 있게 개발한 '원스톱 메뉴'. 정육점과 식당이 의기투합해 선보인 야심작이다.

정육점이나 식당은 손님을 유치해서 좋고, 손님은 믿을 수 있는 고기 요리를 제값에 즐길 수 있는 1석2조의 효과를 노렸다. 식당들은 4인기준 한 테이블에 1만원을 받고 불판과 밑반찬을 제공한다. 일종의 자릿세다. 무료로 제공되는 밑반찬엔 다양한 야채도 들어있다. 주류, 음료, 식사값 등은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대히트였다. 파리가 날리던 음식점마다 손님들이 꽉 들어찼다. 정육점 앞 줄서기는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 제주시 서문시장 내 한 고깃집에 손님들이 꽉 들어찼다. 평소에는 못보던 풍경이다.
고객맞춤형 메뉴를 처음 개발한 '한아름 정육마트'는 요즘 하루평균 400만~5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했다. 그 전에 비해 50% 가량 늘었다.

이곳에서 장사한지 23년 된 주인 장선희씨(50.여)는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시장은 손님끼리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북적였으나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며 "오랜 기다림 끝에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상가건물 안 식당으로 들어서니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평일인데도 나란히 붙어있는 식당 대부분이 만석이었다. 처음엔 정육점 1곳과 식당 1곳의 '도원결의'(桃園結義)로 시작한게 넘쳐나는 손님들로 소화를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이웃한 식당으로 번져갔다. 지금은 정육점 3곳, 식당 9곳이 죄다 참여하고 있다.     

▲ 접시에 담긴 제주산 한우고기. 밑반찬은 무료다.
신선함 때문인지 고기맛은 일품이었다. 제주시내 여느 유명가든 못지 않았다. 정육점 주인 장 씨는 "1등급이상만 고집한다"고 했다.

손님마다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의 80~90%는 한우고기를 즐긴다고 했다. 마침 돼지고기값이 오를대로 오른데다 한우고기를 비교적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성인 4명 기준으로 10만원이면 족했다. 고기값에 자릿세, 주류.식사값을 다 합친 금액이다. 그것도 자릿세 1만원에 미안함(?)을 느낀 손님들이 일부러 주류나 음료 등을 더 주문하는 '센스'를 발휘했을 경우다.

물론 고기로만 배를 채우려면 지갑을 좀 더 열어야 한다. 거꾸로 한우고기는 모자란 듯 먹고 식사를 곁들일 때는 7만~8만원대로 떨어진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문주영씨(34.여.제주시 연동)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번째 찾았는데 정말 싸고 맛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번쯤은 계속 찾겠다고 호언했다.

'한우요리 1인당 2만원의 비밀'은 뭘까. 장 씨는 "남편이 축협 공판장 중매인"이라고 귀띔했지만, 그것만으로 비밀이 속시원히 풀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글쎄요. 저는 받을만큼 받는다고 보는데요"라고 털어놓았다.

유통상의 거품을 걷어낸 탓도 있지만, 키는 자릿세에 있었다. 식당들이 마진을 최소화한 것이다. 이른바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인 셈이다.     

'샘이네 식당' 주인 김숙례씨(61.여)는 "매출이 그 전 보다 30%쯤 늘었다"며 "한여름에 이 정도면 겨울에는 손님이 더 몰리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김 씨는 IMF가 터지기 직전에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햇수로 15년쯤 됐다. 시장이 침체될 대로 침체된 시기였다.

그동안 얼마나 장사가 안됐으면 "한여름에 사람 구경하는 거 처음"이라고 했을까.

그랬다. 불과 1년전 여름, 이곳 식당가의 풍경은 '부침개'로 대변됐다. 손님이 너무 없으니까 상인끼리 부침개를 부쳐놓고 넋두리나 늘어놓기 일쑤였다. 

침체가 워낙 길어지다 보니 모든 상인이 의기소침했다. 누구 하나 변화를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번성기를 누렸던 30년전의 모습은 과거의 영화일 뿐이었다. 

관(官) 주도로 변신을 꾀하던 시절도 있었다. 주차장, 화장실 등 각종 시설을 현대화하고, 기반시설을 갖췄다. 상인들은 자구책으로 공연이나 이벤트를 마련했다. 공무원들이 재래시장을 살린다며 반 의무적으로 부서별로 회식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꺾인 흐름을 되돌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공무원 회식'도 한달을 넘기지 못했다.

상황 반전의 출발은 작은 아이디어 하나였다. 강원도 한우마을을 벤치마킹한 학사식당 주인이 정육점에 손을 내민 것이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파리가 날리다보니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꺼놓곤 했는데 지금은 에어컨을 추가로 들여놓거나 종업원을 둬야할 정도가 됐다.

상인들은 아직도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반신반의하는 듯 했다.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는 것이다.

식당 주인 김 씨는 "솔직히 손님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부터 너무 싸게 시작해서 걱정이라고도 했다. 채소값은 계속 오르는데 언제까지 무료로 제공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얘기였다.

그래도 해법은 상인 스스로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정육점 장 씨는 "아무리 재래시장이라지만 친절, 청결은 기본이다. 상인들도 자구노력을 펴야 한다"며 "정육점, 식당 뿐 아니라 시장 전체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김성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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