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의 즐거운 변신] ②두 억척 아줌마의 '한우결의'
‘맛.가격’ 승부수 던져...파리 날리던 시장 ‘시끌벅적’ 물결

25일 오후 5시. 제주시 서문시장 ‘학사식당’ 취재를 시도했다. 저녁손님을 맞기엔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손님들이 식당 절반 가까이 채우며 북적였다.

임연수(61.여) 학사식당 사장은 기자에게 연신 “죄송합니다”만 연발했다. 손님들의 성화에 인터뷰는 고사하고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취재는 불가능했다.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득했다.

동반자인 ‘한아름 정육점’도 바빴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구이용 고기를 제공하는 곳이다. 손님들이 줄을 서며 고기를 사고 있었다.

최근 서문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몇 달 전만 해도 파리만 날리던 이곳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박 비결은 ‘원스톱 메뉴’. 서문시장 내 정육점에서 신선한 고기를 사오면 음식점에선 4인기준 1만원을 받고 불판과 밑반찬을 제공한다.

고기값의 거품을 없애 손님은 저렴한 가격에 맘껏 맛볼 수 있고, 정육점과 식당은 동시에 살리는 일석삼조의 아디어였던 셈. ‘학사식당’과 ‘한아름 정육점’의 도원결의로 시작된 ‘원스톱 메뉴’에는 현재 정육점 3곳과 음식점 9곳이 참여하고 있다.

▲ 임연수 학사주점 사장(왼쪽)과 장성희 한아름마트 사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26일 오전 서문시장을 다시 찾았다.

‘원스톱 메뉴’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장본인인 임 사장은 서문시장이 있는 용담1동에서 40년을 살았고, 33년 한 곳에서 장사를 했다. 임 사장을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한아름 정육점의 장선희(50.여) 사장도 한 곳에서만 23년을 장사했다. 둘 다 서문시장의 흥망을 경험한 산증인인 셈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서문시장은 지금의 대형마트 못지않은 영화를 누렸다. 임 사장은 “1979년 처음 이곳서 장사 시작할 땐 할머니들이 ‘당일바리’ 장사를 오고, 지나다닐 틈이 없을 정도였죠. 제주대학교가 근처에 있었는데, 학생들 과 모임을 여기서 많이 해서 이름도 처음엔 ‘학사주점’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로 북적여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다닐 정도였죠. 지금이야 한산하지만 당시엔 통로가 비좁게 느껴졌어요”라며 장 사장이 덧붙였다.

서문시장에 사람이 떠나기 시작한 것은 주변 관공서가 떠난 시점과 일치했다. 임 사장은 “제주대학교가 아라동 캠퍼스로 옮기고, 시청과 경찰서가 떠나면서 사람도 없어졌어요. 이후 20년간 이곳 상인들은 파리를 쫓거나 낮잠을 자고, 고스톱 치고, 모여서 수다 떨기 바빴죠”라고 말했다.

장 사장은 대형마트를 원인으로 꼽았다. “신시가지로 인구가 빠져나갔고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했어요. 이후 장사를 포기하거나, 집에 있느니 시장에라도 나와 있겠다는 식의 자포자기한 상인들이 많아졌죠”

오후 8시면 시장 점포들은 문을 닫았다. 하루 매출 2-3만원에 그치거나 마수걸이를 못하는 곳도 많았다. 그나마 제주시 공설시장이어서 점포 임대료가 싸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마냥 푸념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상인회 부녀회장인 임 사장은 “상인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어떻게 해야 재래시장이 살아날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딜 가든 재래시장에 대해 ‘달라져야 한다’ ‘비싸다’ ‘지저분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게다가 서문시장은 공설 시장이란 것 때문에 ‘시민 혈세가 들어가는 곳인데...’라며 욕 많이 들었죠”라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 재래시장 내 한 식당이 고기를 구워먹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대박 아이디어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왔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임 사장은 “가게를 찾은 지인에게 서문시장 정육점이 100% 신선한 한우고기를 파는데 거기서 고기만 사오면 술값만 받고 반찬을 내주겠다고 했어요. 정식메뉴에도 없던 거였죠. 여기에 주변 손님들이 ‘그거 뭐우꽈?(제주어로 그것은 뭡니까?)’라고 물어오며 관심을 보였던 게 ‘한 번 해볼까’하는 고민으로 이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정직하게 신선한 고기를 대줄 정육점이 필요했다. 평소 ‘언니’ ‘동생’하며 지내던 정 사장에게 아이디어를 냈고 그가 “한 번 해봐”라고 힘을 실어준 것이 시작이 됐다. 이렇게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됐다.

정 사장은 “사실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어요. 승부수를 던졌던 게 적중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임 사장도 “메뉴 개시 후 한두 달 지나니까 이 메뉴만 나가는 거예요. 손님들이 많아졌고 가게에서 다 수용 못할 정도가 돼서 다른 가게에 권유했죠. 이후 만복식당, 평화식당, 경태식당에서도 시작했어요”라고 했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활황을 맞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하는 임 사장 가게의 하루 매출은 30만-40만 원가량. 정 사장도 한 주에 1마리 반을 도축했다면 지금은 3마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스톱 메뉴’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제주도내 일부 점포에서 먼저 시도를 했었지만 실패 했었다. 이유는 ‘맛’이었다. 가격 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했던 것. 때문에 정 사장은 1등급 쇠고기만을 고집한다.

정 사장은 “고기는 잡아봐야 등급을 알 수 있어요. 우리 가게에선 1등급 이상의 고기만 판매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고 품질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축포가 될까 우려했다. 그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해요. 시작했던 마음을 잃지 않고 좋은 품질로 승부수를 던진다면 앞으로도 지금 추세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임 사장에겐 아쉬움도 있다. 서문시장이 ‘육고기 시장’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서문시장의 고기 식당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품목에도 관심을 돌려주길 바랐다.

그는 “가게마다 장사 한지 30-40년은 되기 때문에 잘 하는 메뉴가 각각 있었어요. 우리가게는 새끼회 전문이고, 영미식당 같은 경우는 40년 전통의 자리물회, 가오리회 전문점이었죠. 지금은 자체 메뉴 보단 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고기 전문집’이 돼버렸단 게 안쓰럽죠”

‘육고기 시장’의 한계를 벗기 위한 시도를 준비 중이다. 손님이 없어 폐업한지 3년 만에 처음으로 활어가게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던 서문시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한 목소리다. “고기 식당 뿐 아니라 서문시장의 모든 품목이 활성화되길 바라요. 일부의 성공으로 서문시장 전체가 성공했다고 비쳐질까 우려돼요. 여전히 재래시장은 어렵습니다. 다만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을 한 번 와서쯤 와서 봐주길 바라요”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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