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진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심포지엄②]관동대진재와 제주4·3의 유사성

'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에서는 관동대진재 88주기를 맞이하는 올해 제주에서 3박 4일간(8월 27~30일)의 일정으로 기획전시회와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관동(간토)대진재'에 대하여 4회에 걸쳐 소개해 그 이해를 돕고자 한다. / 편집자주

지금으로부터 88년 전인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토(関東) 지방에 최대 진도 7.8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대규모의 지진은 화재와 해일, 토네이도로 이어지며 도쿄의 60%, 요코하마의 80%를 파괴했다. 우리에게 '관동대지진' 혹은 '간토대진재'로 알려진 사건이다.

관동대진재 화가 가야하라 하쿠도가 그린 관동대진재
 
지진이 일어나던 당시 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군수물자의 조달을 위해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일본의 민생을 쥐어짜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쌀파동 사건이 일어났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국민들이 늘어갔다. 또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일본 노동자와 이주조선노동자들과 연대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조선에서의 3·1운동을 경험했던 야마모토 곤노효우에 내각은 지진으로 인한 재난이 엄습한 상황에서도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일망타진하고 정국을 장악할 계기와 명분에 골똘했다.
 
결국 지진발생 6시간이 지나면서 야마모토 내각은 군대와 경찰, 그리고 민간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엄령 발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야마모토 내각은 군 무선망을 통하여 터무니없이 "제도(帝都)에 적(敵)이 나타났다. 그들은 우물에 독을 풀고, 지진으로 혼란해진 틈을 타 살인·강도·강간·방화를 일삼고 떼로 몰려다니며 마을을 습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했다.
 
신문은 또한 이 유언비어를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조작해 그야말로 조선인 폭도들이 간토지방에서 내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왜곡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선인에 대한 불안한 민심을 조장하는 데 성공한 야마모토 내각은 결국 이를 빌미로 계엄령을 발포하고 각 마을마다 자경단을 조직하여 '제도의 적'을 색출하였고, 반항하면 그 자리에서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다.
 
관동대진재와 제주4·3의 유사성

제주4.3항쟁 제주4.3항쟁으로 희생된 제주시민의 유골들
 
이번 행사의 실행위원이며, 지난 5년간 이 문제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던 '1923 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의 한국상임대표 김종수 목사(49)는 이번 간토특별전시회와 국제 심포지움을 제주4·3평화공원에서 기획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간토조선인학살사건과 제주4·3사건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첫째, 이 두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는 점, 둘째, 반공 이데올로기로 진실을 왜곡하여 학살에 이르게 하였다는 점, 셋째, 내셔널리즘(국가주의, 민족주의)으로 분파를 조성하여 민중에 의한 학살을 조장하였다는 점, 넷째, 일본에서는 간토조선인학살사건을 계기로 민중들의 민주화의지를 말살하는 치안유지법을 만들었으며, 한국에서는 제주4·3사건을 계기로 치안유지법을 모델로 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는 점, 다섯째, 동 사건들은 아직도 규명해야 할 진실들이 너무도 많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입니다.
 
일본은 대지진으로 혼란에 빠진 국가적인 상황을 타계하는 방편으로 조선인 학살을 택했으며, 이승만은 제주 4·3을 통해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제주도민들의 학살을 방조했다. 두 사건은 명백한 '국가공권력에 의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였던 것이다.
 
또한 '제노사이드'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아직도 그 진상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공권력에 해당하는 가해자들이 역사적인 진실규명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특정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한 면이 있는 것이다.

관동대진재 지진현장을 시찰하는 일왕 히로히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다"는 역사적인 경고가 있다. "잘못된 역사청산에는 시효가 없다"라는 경구도 있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분단상황에서 레드 콤플렉스를 확산해 가는 대한민국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제주 4·3에 대한 평가나 일본 극우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독도 문제 같은 것들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기억되지도 않고,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은 역사, 희생자들은 있는데 가해자는 애매모호한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무감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제6차 관동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기획전시·국제 심포지엄'에서 다루는 '내셔널리즘과 민중학살'이라는 주제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가족들을 꼭 찾아 조국 고향에 그분들을 모시고 싶습니다
 
제주에서 이 행사를 기획한 또 다른 이유를 김종수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학살유족을 찾기 위해 노력해 오면서 새로운 자료가 일본 회원으로부터 전해져 왔습니다. 그것은 도쿄의 한 경찰서에서 학살 당한 조선인 명단 중에 제주도 대정읍에 살던 분들(다음 기사에서 다룹니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의 유족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단순히 지진으로 인해 사망했을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유족을 찾는다면 유족들과 함께 '일본군대의 척살로 인한 사망사실 확인 소송'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억울하게 희생된 재일동포들의 넋을 위로하는 일이고, 일본국가에 의한 책임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 김종수 목사 관동대지진관련 조선인학살의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일본) 자료사진

사이타마에는 학살된 조선인 두 분의 묘비가 있다.  강대흥 그리고 구학영. 특히 고 구학영님의 묘비에는 일본에 오기 전 고향의 주소가 '朝鮮 慶南 蔚山君 上面 山田里'남아 있었다. 이 주소를 울산시청에 보내 유족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곧 유족을 찾을 수 없다는 통고를 받은 일이 있어 이번만큼은 꼭 찾아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6차 관동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기획전시·국제 심포지엄'의 개괄

▲ 제6차 관동대진재 국제심포지움 관련 포스터 2011년 8월 27-30일, 제주4.3평화공원과 강정마을 일대에서 기획전시회와 심포지엄이 열린다.
 
이번 심포지엄 발표자 및 토론자로는 일본에서 타나카 마사타카교수와 마에다 아키라 교수가 참석한다. 타나카 마사타카교수(센슈대)는 '간토대진재조선인학살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 일본 상임대표'이고, 이 사건에 대한 '(일본)국가책임을 묻는 시민모임'의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는 간토제노사이드사건의 전문연구자이다. 마에다 아키라교수(죠케이대학)는 세계 제노사이드학을 연구하는 분으로서 간토코리안제노사이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국가책임을 알리고자 유엔에서 활동하고 있다.
 
토론자로는 제주4·3평화재단의 이사이며, 전 제주4·3연구소장이었던 박찬식 제주대학교수가 맡아 진행될 예정이다.
 
8월 27일부터 3박 4일간 진행되는 이번 일정에는 일본인들도 다수 참여할 예정이며, 이들은 28일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29일에는 제주4·3학살현장을 찾아가고, 강정마을현장도 찾아 지지하고 격려할 예정이다. 또한 8월 27일부터 9월 10일까지 간토특별기획전시회를 통해 제주시민,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할 것이며, 이 기간 중 간토조선인학살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제정청원 서명 운동전개 그리고 제주출신 학살희생자 유가족 찾기 캠패인 등의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문의사항 :  1923 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의 한국상임대표, 본 행사 실행위원장, 김종수 목사 010-5382-2406)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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