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대학생 아카데미] 정호승 시인의 ‘시와 인생’ 이야기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입니다. 삶을 져버리는 포기의 힘을 키워선 안 됩니다. 견딤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감성시인으로 꼽히는 정호승(61) 시인이 4일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열린 ‘JDC대학생 아카데미’ 강단에 섰다.

등단 40여년, 10권의 시집을 낸 정 시인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시어에 담아내곤 했다.

이날 강연도 취업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20대 청년들을 가장 시인답게 응원하는 자리였다.

▲ 정호승 시인.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정 시인은 그의 시를 직접 낭독하고 시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하며 이해를 높였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로 시작하는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낭독하는 것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나무 그늘에 앉아/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50대 초반에 만든 시라고 했다. 정 시인은 “모든 사람은 살아온 세월만큼 눈물과 그늘을 갖고 있지만 그 가치를 폄하시키곤 한다”며 “하지만 삶의 눈물과 고통은 그 자체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정호승 시인.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그는 “모두가 인생이란 땅에 항상 햇빛이 비치길 바라나, 햇빛만 비친 땅은 황폐한 사막이 돼 버린다”며 “인생의 고통이란 사막화되지 않게 만드는 비바람과 눈보라”라고 했다.

정 시인은 “내 삶의 그늘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나의 그늘에 누군가 찾아와 눈물을 흘린다면 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 시를 썼다”고 동기를 밝혔다.

절망에 부닥친 사람들을 위한 시 ‘바닥에 대하여’도 소개됐다.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에 대하여’ 중에서)

정 시인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내 인생이 바닥에 떨어졌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서 “나 역시 그러한 순간에 바닥에 대해 생각한 것을 옮긴 것이 이 시”라고 소개했다.

그는 부처의 ‘인간의 행불행은 관념’이란 이야기를 소개하며 “내 인생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란 깨달음이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어느 순간 바닥은 너무나 감사한 존재가 됐다. 그 바닥이 없다면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모든 인생은 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 산 정상에서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그는 또 “여러분이 정말 바닥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땅 위에 넘어진 자 땅 짚고 일어서라’는 말이 있듯이, 그냥 딛고 일어서면 된다”고 응원했다.

이어진 시 ‘산산조각’ 역시 ‘바닥에 대하여’와 같은 맥락의 시였다. 정 시인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시 중 한 편이라고 했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부처님이 말씀하셨다/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산산조각’ 중에서)

정 시인은 “부처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네팔 룸비니에서 사온 흙 부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면 어떻게 하나 괜한 걱정을 달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면서 “그때 상상 속 부처가 나에게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되지’라고 말씀하셨다. 이 같이 견딜 수없는 일들이 생기면 오늘도 산산조각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귀띔했다.

▲ 정호승 시인.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정 시인 자신도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이 구절을 항상 가슴 속에 넣고 다니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고 밝혔다.

정 시인은 “시는 많은 역할이 있지만 인간의 삶을 위로해주는 역할도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의 대표작이자 가장 대중적인 시로 꼽히는 ‘수선화에게’는 가수 양희은이 부른 노래 시로 소개돼 감동을 더했다.

정 시인은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어서 쓴 시”라고 소개했다.

그는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로 인한 자살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견딜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패 없는 성공이 어디 있냐”며 “우리에겐 인내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왜 이리 외로운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은 ‘사람이 왜 죽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혼자 외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같이 외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정 시인은 또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며 “견딤의 힘을 키워야 한다. (삶을) 포기하는 힘을 키워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오늘 소개한 시들이 고통의 청춘 속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힘과 위안이 됐기를 바란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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