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대학생아카데미] (7)여성산악인 최초 14좌 완등 오은선 대장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 8000m 히말라야 14좌 등반에 성공한 ‘철녀’ 오은선 대장.

그가 등산복이 아닌 검정색 가죽 재킷과 치마, 롱부츠를 입고 26일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열린 ‘JDC대학생 아카데미’ 강단에 섰다.

“등산복과 정장 사이에서 고민하다 가장 예뻐 보이는 치마를 입었다”는 오 대장은 “바다를 앞에 두고 한라산이 버티고 서 있는 곳에 사는 여러분은 세계적인 특혜를 받는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한라산은 오 대장이 즐겨 찾는 훈련 장소기도 하다. 그는 “산악인들이 원정 등반을 떠나기 전 1월과 2월 사이에 한라산 겨울 산행에 오른다. 많은 눈과 강풍이 동반될 때는 히말라야의 ‘화이트 아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라산에서 훈련 중에 유명을 달리한 분이 많은 이유”라고 말했다.

‘화이트 아웃’은 심한 눈보라로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등반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라산은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고 했다.

▲ 산악인 오은선 대장이 25일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열린 'JDC대학생아카데미' 강단에 섰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대학 산악부 활동을 통해 산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1993년 우연한 기회에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오를 기회를 맞게 된다. 당시 서울시 교육위원회 전산직 공무원이던 그는 사표를 던지고 산으로 향했다. 14좌 등반을 위한 17년 간의 고행이 시작된 셈이다.

오 대장은 “산을 향한 열정에는 밥줄도 상관 없었다”고 말해 산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했다.

처음부터 14좌 정복이 목표는 아니었다. 기회가 날 때마다 한 산 한 산 오를 뿐이었다.

오 대장에게 산은 ‘나와 자연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낯선 곳에서의 고독함과 외로움, 눈사태와 화이트아웃, 크레바스 등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위협, 마의 구간, 날씨에 대한 기다림 등이 그렇다.

그렇게 17년 동안 14좌를 완등하기까지 히말라야 산맥을 20여회 넘었다. 그 동안 수많은 동료와 셰르파(에베레스트 등 고원지대에 살면서 등반가들의 등정을 돕는 사람)의 죽음을 보고, 사고 소식을 들었다.

이때마다 오 대장은 “자연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지나친 욕심은 안 된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 대장은 “베이스캠프에서는 정상을 목표로 삼지만, 최후의 목표는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상에 올랐을 때의 환희만을 상상해서는 정상에 설 수 없다. 다만 한 걸음 한 걸음 욕심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했다”고 말했다.

▲ 산악인 오은선 대장이 25일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열린 'JDC대학생아카데미' 강단에 섰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오 대장은 모여 있는 학생들을 향해 “여러분도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환상에 젖어선 안 된다”며 “목표에 다가서기 위한 루트와 방법을 정하고 자기 욕심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가지려 노력하면 분명 꿈을 이룰 것”이라고 격려했다.

지난해 4월 히말라야 8000m 14좌 중 마지막으로 정복한 안나푸르나 등정 이야기도 풀어놨다. 당시 KBS 중계팀이 함께 올라 역사적인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오 대장은 “50여명의 스텝이 함께 했다. 이들이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함께 생활하기 위한 물량이 실시간 생중계 위한 위성기계를 포한해 20톤 분량이었다”고 당시 등정 규모를 설명했다.

고달픈 생활이 시작된다. 새벽 5시에 기상, 오전 7시에 출발한 후 8시간에서 10시간을 운행하는 강행군이 매일같이 이어진 것이다.

바닥이 2-30m 깊이로 갈리는 크레바스와 집채만 한 눈덩이가 떨어지는 눈사태의 위협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게다가 안나푸르나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눈사태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오 대장은 “사실상 중반에 포기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라도 먼저 정상에 서겠나고 베이스캠프에서 이틀 먼저 나선 것이 오산이었다”며 “오금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추워 포기하려던 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 그의 옆에 나타난 것은 산 등정 때 언제나 오 대장 뒤에서 걸어오던 걸음이 느린 폴란드의 여성 산악인이었다.

▲ 산악인 오은선 대장이 25일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열린 'JDC대학생아카데미' 강단에 섰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오 대장은 “저 걸음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비웃었다. 분명 훨씬 뒤에서 나를 따라왔었고 내가 앞장 서서 가고 있는 내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느린 걸음이지만 나를 앞질러 가고 있었고,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도 2-3미터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만했고, 마음이 앞서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 등반 중 유념했던 것이 욕심을 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마음이 발걸음보다 앞서 가면 안 된다. 발 보다 마음이 한 걸음 뒤에서 좇아가면 정상이 어느덧 생각지도 못한 순간 나타난다”고 말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오 대장은 “세 명이 함께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다”며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 영감을 준 것이 내가 한심하게 생각했던 산악인”이라고 말했다.

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등정이 대단한 기록은 아니”라고 짐짓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1974년 이탈리아 출신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인류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한다. 이후 히말라야 8000m 14좌의 신비는 끝났다. 그는 단독 등정, 무산소 등정 등 이미 여러 가지를 시도해 성공했다”고 했다.

오 대장은 또 “우리나라에서도 나 보다 세 분이 먼저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랐을 뿐이다. 그들의 발자취가 선명해, 따라가기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것이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며 “꿈을 키우고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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