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유기 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공론화 없는 추진, ‘절차의 폭력’

마침내 30일 제주도의 특별자치도 기본계획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본계획안이 공개된 즉시 이곳 저곳에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특별자치도 추진과정에서, 특히 지난 5월 20일 정부의 기본구상안이 매우 제한적이나마 공개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소위 ‘3+1’로 얘기되는 교육과 의료부문의 개방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김태환 지사가 지난 8월30일 양우철 도의회 의장과 함께 특별자치도 기본계획안 마련에 따른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제주의소리
이번 도의 기본계획안에서는 이의 추진을 전제로 노동규제완화,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 기업규제 완화책 등도 선명하게 제시되었다.

전통적인 논란대상인 ‘토지수용권’도 제한적이라는 모호한 형태로 도입계획임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환경부문이나 평화의 섬 정책 등은 제주지역 특성상 미래발전상 정립에 가장 핵심적인 바탕이 될 터인데, 위의 개방정책을 위한 ‘여건’수준으로 취급하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그 동안 이미 예고된 논란에 대해 해법을 만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지난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특별자치도 구상 선언 이래로 2년에 가까운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정부와 제주도는 제대로 된 정보의 공개와 공론에 나서기보다는 마치 ‘크레믈린’처럼 ‘비밀작업’에 몰두하는 모습만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정상 예정된 국회입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내용을 공개하였다.

일정을 고려했다면 적어도 도는 특별자치에 대한 전반적인 도민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쟁점이 되는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올해 초부터라도 폭넓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거를 것은 거르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는 한편, 새로운 대안발굴에도 나서야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러한 과정을 회피한채 그들은 '자기들만의 공론화'에 몰두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러한 도의 태도는 지난 1991년 개발특별법제정과정 이래 그나마 형성돼 온 '제주의 공론문화'에 역행하는 것일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특별자치도 추진자체를 더디고 어렵게 만드는 꼴을 스스로 자초한 셈이 되었다.

이에 대해 도는 이른바 ‘제주특별자치도 사회협약위원회’를 구성해 ‘광범위한 참여’를 하도록 하되, ‘다수결 원칙’으로 가면서 ‘미참여 단체의 의견수렴’을 하겠다는 식의 계획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으나, 이는 스스로 내놓은 계획을 형식적 대표기구를 통해 관철시키겠다는 ‘합의방식의 폭력성’마저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더욱 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분권과 자치의 특별성을 만드는 일이 오히려 전혀 분권적이고 참여적이 못한 일방통행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나 제주도는 자치역량의 문제를 스스로에게서 먼저 찾는 성찰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4+1'논의 원점에서 재론되어야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추진과정에서, 이를 매개로 표류하고 있는 국제자유도시 정책을 획기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를 이미 여러차례 보여왔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20일 매우 제한적 수준에서 공개된 정부의 기본구상안은 공교롭게도 도 당국의 의도를 기대 이상으로 만족시켜주었다. 

‘홍가포르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상적 자유시장 경제모델’이 그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제주 프로젝트’로 둔갑해 나타난 제주도의 기본계획안은 이러한 정부의 안을 여과없이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법률형태로 현실화될 경우 제주에게 가져다 주는 실익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진단은 소홀하다.

적어도 왜 ‘3+1’ 전략에 '의료'와 '교육' 개방을 핵심적 산업으로 삼으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타당성 진단결과가 포함된 별도의 계획이 동시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자료나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 특별자치도추진단장도 기본계획안 발표가 있은 30일 모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개방했을때 효과는 없고, 공공성만 훼손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개방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개방했다고 당장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 강화는 나중에 해가면 된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

이러한 '우선 만들고 보자'는 식의 접근이 어떠한 혼란을 초래할지,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 도는 책임있게 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부문의 경우는 개방화 조치에 따라 외자가 들어오는 것과 무관하게 공적의료체계가 일시에 흔들리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당장 도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가시화될 수 있다는게 의료계나 관련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편으로 도가 지역차원의 일방적 개방책을 밀어붙이는 데는, 경제자유구역법을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지역들의 성과가 아직은 미미한 실정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규제완화책을 통해 이른바 ‘선점효과’를 또 다시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이 인천의 송도, 영종, 부산의 항만지구 등 특정지구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반면, 이와 달리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그 질과 내용면에서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당장 지역사회내 관련 집단등에 의한 갈등이 일어나고, 공적체계가 흔들리면서 도민피해가 직접적으로 가시화되면서 지역사회 자체가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정부가 공적부문의 개방물꼬를 제주에서 틔워놓고 차후 전국화하려한다는 의혹을 사실상 가능케 해 제주가 국민기본권과 관련된 교육, 의료와 같은 영역의 시장화, 개방화에 전초역할을 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 분권자치의 입법을 준비하면서, 국가의 산업적 요구를 품고가는, ‘분권의 국가주의와의 동거’라는 기형을 만들어 내는 셈이다.

제주프로젝트상의 의료,교육부문의 개방과 노동특례 등이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제주도 또한 모르지 않았을텐데, 왜 노골적으로 “개방할 수 있는 것은 다한다”는 식으로 이를 공개했을까? 

이는 경제자유구역이 위치한 자치단체들의 견제, 국회차원의 형평성 논란등을 의식해 일단 최대치의 개방폭을 내밀어놓고, 내부의 도민반발과 정부와 국회 등 외부의 문제제기를 감안해 타협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추진전략상의 의도로 보인다.

일정부분 ‘잘릴’수 있음을 감안한 조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나 교육의 산업화, 개방화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관련 단체들은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특별자치도가 이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3+1이라는 핵심산업 선정에 관한 것은 원점에서 재론되어야 할 문제다. 이를 불변의 요소로 위치지우고 특별자치도 추진의 핵심목표로 삼는다면, 특별자치도의운명은 불을 보듯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입지 좁아진 주민자치

도의 기본계획안은 분권분야에 있어서도 일부 문제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자치경찰을 국가경찰과 이원화하고 자치경찰의 위상을 행정시 소속의 특별사법경찰관 정도로 하겠다는 것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현재 정부안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치경찰제의 도입은 우선 국가경찰의 폐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컨대 자치경찰제의 사무범위를 정하는 일은 오히려 국가경찰의 불가피한 몫을 열거한 후 전부 이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야만 효과적이고 지역실정에 맞는 경찰업무가 가능할뿐 아니라, 주민친화형 경찰로 거듭날 수있다.

그러나 기본계획안은 “제주형 자치경찰제”도입 추진을 천명했지만, 내용은 정부안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그 동안 특별자치도 논의과정에서 자치경찰의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이는 분권과 관련한 핵심적인 사안이다.

교육자치와 관련해서도 기본틀은 정부정책에 의거한다는 전제를 달아놨지만, 사실상 교육청의 안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행정과의 통합 등으로 얘기되는 교육자치 문제에  다소 부정적인 교육관련 단체마저도 교육감 직선제 등을 제안하는 상황에서 교육감 선출을 확대된 정도의 간선제로 하고 교육위원회도 현행대로 유지하려는 도의 안은 국민누구나의 최대관심사인 교육문제를 여전히 참여민주주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주민참여제도와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주민소환제의 발의 요건을 30%까지 늘리고, 결정요건도 유권자의 50%까지 늘려놓음으로서 제도의 실효성을 훼손하고 있는바, 소환발의가 있더라도 그 여부는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이상 발의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또한 주민자치위원회에 준자치기능을 부여하는 문제도 사실상 공동체 사업, 축제주관이나 자문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처방은 아니라고 보인다.

좀 다른 얘기이지만, 지방의회 정수등 의회운영 특례와 관련해 미리 논의되는 지방의회 정수가 용역 최종결과 의원정수와 비례대표의 축소로 제시된 것 역시, 정치영역에서 신진인사의 의회진출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민참여의 입지를 제한한 개악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분권자치의 틀을 먼저 완성하자

의료와 교육개방이 포함된 ‘4+1’을 불변의 것으로 하고, 특별자치도 추진의 가장 큰 이유로 삼는다면 이는 현실적으로 두 가지 중의 하나의 행보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특별자치도가 갈등국면에서 한치도 앞으로 못나가면서 자중지란의 회오리로 남든가, 아니면 도민합의를 배제한 일방추진으로 가든가 하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지만, 11월 국회입법을 예정하더라도 남은 2개월여의 시간은 ‘공론-갈등-합의’의 충분한 시간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된다하더라도 사안이 갖는 휘발성을 고려하면 절충과 합의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갈등의 불을 동시에 안고가기 보다는 이를 차후의 과제로 남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도민합의를 바탕으로 특별자치도를 이루는 방안이라 판단한다.

논리적으로도 ‘제주프로젝트’의 추진은 분권이라는 큰 틀안에서 결정되어져야 할 문제로 특별자치도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시에 얘기되는 것은 맞지 않다. 이것의 결정권한만 법률로서 확보하고, 4+1과 같은 핵심산업 설정의 재편을 전제로 법률 제정 이후 다음단계의 논의과제로 돌리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또한 분권분야만 하더라도, 남은 기간동안 공론의 대상이 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앞서 말한 자치경찰제 도입문제, 교육자치의 문제, 지방의회 구성의 문제등. 오히려 이의 논의를 풍부히 하고 지역에 맞는 모델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주도는 지금 과감하고도 열린자세로 도민들의 총의를 모아 특별자치도 추진대의를 살리는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있게 판단해야 한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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