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상흔 간직한 비자림로에 더 적당한 이름을 찾아줘야

문대림 의장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지방정치인이다. 문의장이 2009년 이후 제주해군기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시종일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적 기본기가 든든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비자림로에 대한 입장이 필자와는 확연하게 다름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이 길에게 적합한 이름을 찾아주는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 필자 주 

▲ 비자림로.

비자림로(1112번)는 현재 평대리에서 시작해 제주시 봉개동 절물휴양림을 지나 5·16도로로 연결되며 총 길이 27.3km의 왕복 2차선 도로이다. 길가에 삼나무 숲이 우거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2002년에는 건설교통부가 실시한 '제1회 아름다운 도로' 평가에서 각 지자체가 추천한 88개 도로 가운데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도로 인근의 숲은 노루와 오소리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도로의 명칭이 비자림로인 이유는 이 도로의 동북쪽 끝에 해당하는 구좌읍 평대리에 원시절경을 자랑하는 비자나무 숲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문대림 도의회의장이 공식석상에서 비자림로를 정운찬로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문의장은 정운찬씨가 제주도가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되는데 크게 고을 세워 그 뜻을 기릴 필요가 있는데, 마침 정운찬씨가 비자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비자림로’를 ‘정운찬로’로 개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지금 비자림로가 있는 자리에 조선시대에는 숲과 국마를 키우는 목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1702년(숙종 28)에 이형상 목사가 화공 김남길의 손을 통해 만든 탐라순력도에는 이목사 일행이 조정에 진상할 동물을 얻기 위해 사냥을 열었던 상황을 그린 교래대렵(僑來大獵)이 남아 있다.  

해방이후 4.3사건이 일어나자 중산간 일대에 많은 마을들이 군경에 의해 소개되면서, 일대는 무장대의 투쟁 근거지가 되었다. 당시 무장대를 지휘했던 이덕구의 산장은 물찻오름 인근에 있었는데, 비자림로는 그의 산장 인근을 지난다. 그는 49년 6월 8일에 교전 중에 사살되어 시신이 관덕정에 매달린 채 행인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끝까지 빨지산으로 남았던 마지막 무장대원 오원권의 고향 마을인 장기동도 바지림로 변에 있다. 그는 공교롭게도 57년 4월 2일에 생포되었었다. 4·3사건이 일어난 지 꼭 9년이 되었던 1957년 4월 3일에 언론은 제주도 '공비'들이 괴멸되었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지금의 비자림로는 한국 현대사의 혼란이 제주의 산천을 휩쓸고 지나간 뒤에 만들어졌다. 1967년에 조천읍 교래리에서 5·16도로를 연결하는 6.8km의 구간에 원시림을 베어내어 축산용 도로를 만들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구간이 점점 연장되어 1979년에 평대에서 5·16도로로 이어지는 현재의 구간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름은 '동부축산관광도로'였는데, 1985년에 '비자림로'로 이름 지어졌다.  

몇 해 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손석춘 원장은 필자에게 “이 길을 지나가가 산천을 향해 술을 올렸다”고 전한 적이 있다. 더 좋은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산천초목에 피와 살을 보탠 무장대원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은 뜻에서였다고 한다.  

홍세화는 저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서 1930년대 프랑코에 쫓겨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하여 기약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망명지에서 삶을 마감한 스페인 좌파들을 향해, 비록 혁명은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고 칭송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자림에게 더 적당한 이름이 주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혼란스럽던 대한민국 여명기

▲ 장태욱. ⓒ제주의소리
를 함께 기억하는 공간으로,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노래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적당한 이름을.  

문의장은 이 길에 정운찬씨의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했지만, 이 길에게 한때 유행한 캠페인 수장의 이름을 갖다 붙이기엔 피 흘린 자들의 영혼이 너무도 고귀하고 그들이 못다 부른 노래가 너무 아름답다.

80년대 한참 유행하던 노래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길에 산천이 기억할만한 멋진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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