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제주 지질 기행' 연재를 준비하며…

 

▲ 항해에 지친 제주 토박이에게 망망대해에서 한라산과 제주도 전경이 전해준 감흥이란 이루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20여 년 전, 대학교 실습선을 타고 부산을 출항하여 태평양을 항해한 후 되돌아온 적이 있다. 생애 첫 해외 나들이였기에 사뭇 설레기도 했지만, 잠시 동안의 해외생활 가운데 고향에 대한 향수 또한 적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동안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뱃머리 너머로 아스라이 한라산 봉우리가 내다보였는데, 당시 한라산과 제주도 전경이 전해준 감흥이란 이루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제주 토박이가 망망대해에서 바라본 제주도는 바람과 억새꽃, 노루, 새, 설문대할망 등이 살아 춤을 추는 대자연의 선물보따리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자연은 불과 물을 빚어 제주섬을 만들고, 바람과 파도를 도구로 이 섬을 깎고 다듬었다. 그리고 자연은 구석구석에 섬을 만들고 조각해가는 과정을 담은 거대하고도 난해한 벽화를 남겼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그 벽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이를 무참히 훼손하고 있다. 오늘날 관광안내 책자에 소개된 대부분의 구경거리가 이 같은 훼손에 가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자동차를 타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다니며 ‘남국의 정취’를 체험하는 관광 상품이란 대개가 거대한 콘크리트 문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벽화를 보존하고 그 비밀의 열쇠를 풀고자 하는 노력도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이루어진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학자들의 꾸준한 연구는 제주도의 형성과 관련한 많은 의문들을 해소해주고 있을뿐만 아니라, 제주섬의 가치를 천하에 자랑하고 있다. 2010년 유네스코가 제주를 지질공원으로 지정한 것도 섬의 생성과정을 이해하는 비밀열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2012년 새해에 <제주의소리>와 ‘제주도 지질 기행’을 기획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농촌에 박혀 세월을 흘려보내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졌기 때문이고, 사회적으로는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은 지 1년이 넘었는데도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태순은 기행문집 <국토와 민중>(1983, 한길사)의 서문에서 “국토는 자연으로서는 ‘금수강산’이고 인문지리로서는 ‘민중의 역사’”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관광하는 자들은 ‘민중의 역사’는 내동댕이친 채 ‘금수강산’을 부박한 눈요기로만 삼으려고 하고, 이른바 ‘건설’이니 ‘개발’이니 하는 이름 밑에서는 금수강산뿐만 아니라 민중의 역사마저도 뿌리 뽑아버리려는 것처럼 보인다”며 국토의 참된 가치를 찾지 못하는 세태를 아쉬워했다.

지질기행을 기획하면서 시종일관 가슴에 새겨야 할 엄중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만 년 동안 대자연이 이 섬을 만들고 깎고 다듬어온 과정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빌레못동굴에 흔적을 남긴 구석기인들과 송악산 발자국화석의 주인공들 이래로 이 섬을 삶의 무대로 삼았던 사람들의 자취를 조금이라고 더듬어야한다는 책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또한 비전공자가 감당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한지질학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 발표된 논문들을 공개하고 있어서, 자료로 긴요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출간된 지질관련 대중서적들 또한 크게 도움이 되어준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 완주할 수 있을지가 여전히 걱정이다. 그래도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애써 위안을 삼아볼 수밖에......,

새해에 사랑하는 딸 진주, 아들 우진이와 더불어 제주의 들녘을 누비고 다닐 것을 상상하니, 새해 벽두부터 가슴이 설렌다. ‘지질기행’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흔쾌히 받아주시고 용기도 북돋아주신 <제주의소리>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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