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지고 매화 피는 뜻은…
동백 지고 매화 피는 뜻은…
  • 강은미 (-)
  • 승인 2012.03.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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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의 문학카페> 6 루쉰의 「아Q정전」
   

흔히 쓰는 말 중에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너무 엄청나거나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다'는 뜻이다. 주로 황당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살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기도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거나, 애를 써서 쓴 글이 자판을 잘못 누르는 실수로 모두 사라져버렸다거나 할 때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작은 실수는 어찌어찌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으나 이보다 더한 문제 앞에서는 망연자실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어처구니없음'을 절감하게 되는가. 이를 테면 축구시합에서 자책골을 넣어 예선 탈락 위기에 처한다든지, 펀드매니저의 말만 믿고 큰돈을 맡겼다 손실을 본다든지, 감기인 줄 알고 동네의원만 열심히 다니다 병을 악화시켜 손쓸 수 없게 되는 등의 문제는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가는 위중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문제를 대수롭게 보는 데서 오는 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보다 더한 상황은 아마 개인의 생명, 한 나라, 인류의 미래와 직결되는 상황이 아닐까 한다.

문학작품 중에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인물을 통해 인간상의 부조리를 고발한 작품들이 많다. 근‧현대에 이르러 인간의 윤리와 도덕성의 상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간의 허위의식, 인간관계의 물질화, 무지와 무감각에 의한 현실지각 상실 등은 인간사회의 대표적인 부조리 현상들이다. 이런 부조리의 단면을 풍자적 필치로 고발하면서 "민중이여, 제발 깨어나라"고 외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루쉰의 「아Q정전」이다.

중국의 근대 문학가 루쉰(迅)의 「아Q정전」은 쑨푸위안이 편집하는 《신보부간》에 연재됐던 중편소설이다. 루쉰은 "병적인 사회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병의 원인을 드러내어 치료에 주의하도록 각성시키기 위해서" 문학작품을 사회를 개조하는 도구로 삼았다. 실제로 「아Q정전」이 잡지에 연재되자 그 당시의 상위 계층 및 정객들과 관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발하는 줄 알고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아큐(阿Q)는 청나라 말기에 중국 남부의 가난한 농촌에 사는 날품팔이꾼이었다. 그는 부잣집 허드렛일을 하며 웨이장에 있는 사당에서 기거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간다. 문맹에다 외모도 볼품없고, 자신의 이름도 생일도 모른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만은 누구보다 세서 마을사람들이 대머리라고 놀리거나 때려도 다 자신을 시기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이 일로 자신이 더 유명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일종의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인물이다. 우스꽝스러운 면모에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몰매를 맞기도 하는데, 비구니의 볼을 꼬집어 놀리거나 자오 씨 집 하녀 우마에게 수작을 걸다가 금 2천문과 이불을 그 대가로 지불하기도 했다.

그런 사건 이후로 그는 마을에서 완전히 '왕따'가 되었으며 더 이상 밥벌이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마을을 떠났다 어느 날 다시 돌아왔는데, 번듯한 옷차림의 장물장수로 변모해 있었다. 수중엔 돈이 있었으며,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와서 마을사람들에게 한동안 환심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도둑이의 앞잡이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에 대한 흥미는 다시 사그라지고 만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해였다. 혁명당이 마을에 들어온다. 아큐는 혁명당을 알고 있었고, 혁명당에 가입하고자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자오 씨의 집이 습격을 당한다. 아큐는 자오 영감의 집이 습격당한 것을 은근히 기뻐했다. 자신을 마을에서 내쫓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누가 누명을 씌웠는지 아큐가 자오 영감의 집을 습격한 장본인이라며 체포당하고 만다. 아큐는 생전 처음 붓을 들어 서명 대신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아큐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군중 속에 서 있는 우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보지 않고 있었고, 군인들이 메고 있는 총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큐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을 받는다. 그럼에도 군중들의 여론은 총살형은 목을 자르는 것보다 볼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작품 속 책갈피...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두세 차례 힘껏 후려쳤다. 화끈거리고 아팠다. 실컷 때리고 나자 그때서야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사람은 남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자기가 남을 때린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아직 화끈거리고 아팠지만 그는 승리감에 도취해 자리에 누웠다.

(중략)

일반 여론으로 보면 웨이장에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당연히 모두들 아큐가 나쁘다, 총살을 당한 것은 그가 나쁜 증거이다, 나쁘지도 않은데 총살까지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성안의 여론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총살이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얼마나 시시한 사형수인가? 그렇게 오랫동안 거리로 끌려 다니면서도 끝내 연극 대사 한 구절 부르지 못하다니 구경꾼들은 헛걸음만 쳤다고 불평들이 대단했다.

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는가. 아무 죄도 없는 아큐는 총살을 당하고 말았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목을 자르는 것보다 볼만한 것이 못 된다고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 루쉰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간상을 두고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루쉰은 일본 유학 시절, 자신의 진로를 바꾸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일명 '환등기 사건'인데,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스파이 혐의를 받은 중국인을 처형하는 장면이었다. 동족의 처형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는 중국인들을 보며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 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밖에는 될 수가 없었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런 일은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라고 개탄한 바 있다. 그래서 루쉰이 찾은 해법은 '문예'였다. 몸의 병을 고치는 게 의학이라면, 정신을 고치는 것은 문예가 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자신의 현재를 보지 못하고 아군마저 적군으로 공격하는 무지몽매한 민중, 이념과 지식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권력의 하수인으로 군림하는 지식인, 사랑이니 죽음이니 허무맹랑한 자기감정만 배설하는 작가들을 향해 그의 글은 과감한 비수가 되었다.

의사의 꿈에서 작가, 사상가로 진로를 바꾼 루쉰은 '아Q정전'을 통해 '공허한 영웅주의'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민중의 우매함에 직격탄을 날리고 싶었던 것이다. 죄 없는 사람이 죽어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와서 마을을 약탈해가도 함께 묻어가자는 식으로 동조하고, 돈이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태세이니 이 어찌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루쉰은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조건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보아야 할 것을 볼 줄 아는, 아닌 것은 아니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아는 것을 기꺼이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루쉰은 그런 자를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곧 4월이다. 벌써 사방에서 꽃소식이 들려온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매화, 산수유 꽃밭에서 벌 나비가 춘광을 희롱하듯 정신이 아득할 일만 남았다. 이런 즈음에 돌담 위로 댕강댕강 목이 떨어지며 지는 꽃도 있나니, 이름 하여 4월 동백. 아무 죄 없이 사라져간 이 땅의 기막힌 원한이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한 까닭에 동백은 제 머리를 싹둑 잘라내어 통울음을 울고 있다. 한 마디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제 몸 안에 울음을 가둔 채 역사를 통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시절에 꽃구경 갈 생각에만 마음이 부산스럽다면 이 또한 '아큐'와 다름없지 않을까. 동백 지고 매화 피는 그 경계에서 먼저 가신 이들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무지몽매한 자, 나 아니고 그 누구랴. 다 하지 못한 말을 아래의 시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 자신만 모를 것이다
                          김석교

토벌대의 총에 부모친척 처형당하고 조부 슬하에서 자랐어도 보수꼴통으로 성공한 모씨가 말했다. 자신은 4.3 피해자 유족 신고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4.3은 국가발전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이제 들추어 본들 무슨 소용이냐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그만 덮고 넘어가자고.

(중략)

그러나 그는 모를 것이다. 학살당한 부모친척과 양민들을 그가 학살하고 있음을. 4.3원혼들이 저승에서까지 죽임당하며 구천에서 울부짖고 있음을. 그 자신 토벌대보다 더 불쌍하고 더 나쁜 놈이 되어버렸음을 보수꼴통 그 자신만 모를 것이다.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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