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EU재정정책 변화 불러올 올랑드 당선

'유럽재정협정'이 25개국 정상들이 서명했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존폐 위기에 봉착했다. 적어도 프랑스 대선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걱정이 그러한 듯하다. 유럽재정협정의 재협상(renegotiate)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회당 후보 올랑드의 대통령 당선을 좌파의 판 뒤집기 내지는 포퓰리즘, 즉 쓴 약을 삼키기를 거부하는 다수의 대중들의 편에 선 정치세력의 승리로 보고 유럽의 장래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부채 줄이기 일변도의 처방으로는 재정위기를 벗어나기는커녕 유럽을 더블딥의 불황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그 동안 없지 않았고 실제로 아일랜드나 스페인의 경우는 긴축을 강행할수록 시장의 신뢰 회복은 요원할 뿐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메르켈에게 힘이 되어 주는 올랑드

하버드대학 유럽연구센터의 아트 골드해머(Art Goldhammer)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평론을 했다. "나는 독일의 메르켈 수상도 지난 2년 간의 사태진전을 봐 오면서 상당한 사고의 전환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의 정권 기반인 기독교민주당과 자유민주당 연합세력의 대다수는 부채 줄이기 최우선 원칙에서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다. 이러한 메르켈에게 올랑드는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그 동안의 파트너였던 프랑스의 새 대통령이 성장 카드를 강력히 들고 나온다는 것은 메르켈에게 이들 세력들의 주장을 누그러뜨릴 구실을 주는 것이다."

전 벨기에 수상이자 유럽의회 의원으로 있는 기 버로프슈타트(Guy Verhofstadt)는 블룸버그 TV에서 "이제까지 우리들은 재정규율이라는 이름의 1차 트랙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장이라는 제2의 트랙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며 지금의 유럽의 문제를 설명했다.

올랑드의 정책 방향을 버로프슈타트의 공식에 대입하여 이해하면 재정협정 재협상이라는 그의 협박(?)은 하나의 정치적 수사(rhetoric)에 그칠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재정협정에 재정긴축만 있고 성장에 관한 처방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트랙을 하나 더 만들면 되지 먼저의 트랙을 없앨 필요는 없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올랑드의 승리는 기회'라는 제목의 17일자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특히 6월의 총선을 남기고 있는 시점에서 올랑드의 포퓰리스트적 작은 제스처들은 시장이 용인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더 큰 공약은 2017년까지 프랑스의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는 데 있다.

이것은 대단히 큰 고통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6월 총선에서 하원까지 석권하게 되면 사회당은 상원과 지방선거를 모두 장악하게 되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기에 유리한 입장이 된다. 그는 이 황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성장을 위한 그의 처방이 재정지출의 증가에만 의존하려는 것이 아닌 점은 분명하다. 지출을 계속 늘리면 2017년 재정균형 공약은 허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채의 증가 없이 성장 동력을 가동하는 길, 그것은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수상이 내놓았던 "성장하라 이탈리아(Grow Italia)"라는 이름의 메뉴, 즉 노동시장의 경쟁력, 공공부문의 경쟁력, 그리고 행정의 경쟁력을 높이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재정규율과 성장은 상호배타적이 아닐 수 있어

유럽 정상들이 어렵사리 이루어 낸 재정협정을 프랑스 새 정부가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독일이 재정협정의 재협상에 응할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등이 공조하여 재정협정을 보완할 이른바 성장협정(Growth Pact)의 장을 마련할 가능성은 있다.

▲ 김국주 前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이런 희망이 현실화 된다고 해서 유럽재정위기의 해소가 크게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긴축 강요에 대한 반발이 가장 격렬한 그리스를 포함하여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도 재정규율과 성장은 결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닐 수 있음을 알게 하는 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김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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