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예견한 현대인의 실존적 고독과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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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의 문학카페> 18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7월도 하순으로 접어든다. 장마가 걷혀가면서 어느덧 매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며칠 눅눅한 방에 갇혀 지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밀린 빨래에 마음이 안달 난 여느 주부들처럼 밀린 일감에, 처리해야 할 문서들에 머리는 한사코 쉬질 않으니 말이다. 자꾸만 시계에 눈이 가고, 쌓아둔 책에 눈길이 치인다. 쉬면서도 쉬질 못하니 이게 일중독이 아니고 무엇인가 반문해보기도 한다.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책들은 하나같이 느리게, 쉬엄쉬엄 가라고 충고한다. 소탐대실이라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쭈욱 쉬어버릴까, 다 놓아버릴까 하고 독한 마음을 먹어보기도 한다. 독한 마음이라니……. '이럴 때 독한 마음이라 쓰는 게 맞나?' 하고 또 시비를 걸어본다. 다시 생각해도 '독한 마음', 그게 맞다. '나 편하자고 쉬어버리면 남은 가족들 생계는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부메랑처럼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레고르다.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말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두 형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맏아들이 된 카프카는 죽을 때까지 맏이로서의 역할을 의식하며 살았다. 카프카는 영적이고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기질을 타고났다. 아버지는 자신의 대를 이어 상인이 되길 바랐으나 기질이 보이지 않아 법학 공부를 시켰다. 문학과 글쓰기에 심취해 있는 카프카를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도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법학 또한 카프카의 기질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1906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상해보험회사에서 죽기 2년 전까지 일을 했고, 퇴근해서는 거의 새벽 2시까지 글을 썼다고 한다.

「변신」은 카프카의 1915년 작품이다.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라는 주인공이 어느 날 벌레로 변하면서 겪는 실존의 고독과 불안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쩌면 기계처럼 일만 하며 사는 현대인의 실존 문제를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통해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현대인의 실존 문제를 다루다니, 정말 명작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지금에 와서 카프카의 「변신」은 과연 천재적인 작품이라 칭송하지만 그 시대에는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성이라는 전차를 타고 앞만 보고 달려야만 살아남는 시대의 불문율에 개인의 실존을 들먹거리는 것은 불안을 증폭시키는 위험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달려야 하냐고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면 그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불온한 사상을 가진 자라고 치부할 것이다. 불온하기보다는 어쩌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레고르 잠자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빚 때문에 집안의 생계를 담당하는 상점의 외무판매원이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불안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기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서 일을 해야 하는 그가 출근을 하지 않자 가족들은 "7시 15분 전이야."라며 재촉한다. 그 또한 시계를 자꾸 보면서 "5시 기차를 타야 하는데 벌써 6시 반이다."를 되뇌인다.

하지만 몸뚱이에 비해 너무도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가 눈앞에서 힘없이 흔들거린다. 그레고르가 출근하지 않자 상점의 지배인이 집으로 찾아온다. 그는 문을 열어 주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한참만에야 문을 연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본 지배인은 뒷걸음질쳐 도망가고 어머니는 실신한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곧 옷을 갈아입고 샘플을 챙겨 출근하겠습니다."였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방에 갇혀 지내면서 그가 가장 아끼던 누이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누이는 먹을 것을 주고 방청소를 해주며 그레고르가 편히 벽을 기어오르게 가구를 치워준다. 한 번도 방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던 어머니도 누이와 함께 가구를 옮긴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일을 하지 않게 되자 돈 걱정이 늘어간다. 도중에 어머니는 오히려 가구를 치우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그레고르 자신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벽에 붙은 그림 위에 올라앉는다. 그걸 본 어머니는 실신하고 은행 수위가 되어 일을 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화가 나서 그레고르의 등에 사과를 던진다. 등에 박힌 사과 때문에 그레고르는 근 한 달을 고생한다.

 가족들은 생활의 유지를 위해 모두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에 자신이 벌레가 되어 일 못할 것을 걱정하던 그레고르는 벌레의 생활에 익숙해져 잠을 자거나 엎드려서 소일한다. 누이는 바빠지면서 그레고르를 돌보지 않고 어머니마저도 그레고르를 보살피지 않는다. 가족들은 돈 때문에 집에 하숙을 치기 시작하는데, 하숙인들의 물건과 부엌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이 그레고르의 방에 쌓인다. 어느 날 그레고르가 누이의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하여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를 본 하숙인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밀린 하숙비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더 이상 벌레 같은 오빠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겠어요. 우리는 저것을 돌보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어요." 이 말은 그레고르가 음악학교까지 보내주겠다고 마음먹었던 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가족들은 그날 밤 그레고르를 쫓아내자고 한다. 다음날 청소하는 할머니가 그레고르의 시체를 발견하고 가족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작품 속 책갈피...

           
작품 속 책갈피... 작품 속 책갈피... <아이고 하느님 맙소사!> 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벌써 여섯시 반이 아닌가. 시곗바늘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30분을 지나 벌써 45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혹시 자명종이 울리지 않은 것은 아닐까? 네 시에 정확히 맞추어져 있는 게 침대에서도 보였다. 자명종이 울린 게 분명했다.

다음 기차는 7시에 있었다. 그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부리나케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견본모음집을 꾸려 놓지도 않았다. 그리고 설령 기차를 잡아탄다고 해도 사장의 불호령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환 녀석이 5시에 기차에 대기하고 있다가 그가 타지 않은 사실을 진작 일러 바쳤을 테니까. 사장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그는 줏대도 사리분별도 없는 녀석이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몸이 아프다고 하면 어떨까? 하지만 이는 지극히 곤혹스러운 일이고 수상쩍은 핑계인지도 모른다. 그레고르는 5년 간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은 의료보험조합의 의사를 대동하고 나타나, 게으른 아들을 두었다고 부모님을 질책할 것이 뻔하다.

(중략)

이제 그들은 그레고르가 고른 이 집보다 더 작고 더 싸긴 해도 보다 위치가 좋고 더욱 실용적인 집을 얻고자 했다.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잠자 씨 부부는 딸의 얼굴에 점점 생기가 도는 것을 거의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최근에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두 뺨이 창백하게 변했던 딸이 아름답고 탐스러운 처녀로 활짝 피어난 것이다. 부부는 점차 말수가 적어지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눈길로만 의사를 교환하더니, 이젠 딸에게 착실한 신랑감을 구해 줄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프카는 1907년부터 한 보험회사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카프카는 지적이며 유머 있는 사람이었으며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일반 보험회사의 긴 근무시간과 엄격한 요구사항들 때문에 글쓰기에 몰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낮에는 일상적인 회사 일을 해야 했고, 밤에는 글을 써야하는 고된 이중생활은 그에겐 극도의 고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1908년 프라하의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상해보험회사라는, 그나마 조건이 좋은 준국가기관의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도 얼마 못가 병으로 1922년 연금을 받으며 은퇴했고, 2년 후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게 된다.

「변신」은 그의 고된 노동자로서의 경험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그처럼 정해진 규칙에 맞춰 가족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일반적인 현대인의 삶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다. 시계에 맞춰 정해진 시간 안에 일어나야 하고, 돈 되는 것이라면 기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매출을 맞춰야 하는 삶. 그런 삶이야말로 돈 버는 기계에 불과한 기계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다는 것은 소설적 장치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벌레처럼 제 몸 하나 자유롭게 노닐지 못하는 결박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벌레가 되어 그가 외치는 소리를 가족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소통은 그 이전부터 불가능했지만 벌레가 된 이후로는 그의 말이 쇠쇠거릴 뿐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마저 처음에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청소도 해주는 척하지만 나중에는 "내쫓아야 한다!"고 소리친다. 결국 그가 죽자 가족들은 감사의 성호를 긋는다. 이제 겨우 짐 하나가 버려진 셈이다. 그러면서 잠자 씨 부부는 그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딸의 눈을 지그시 쳐다본다. 나는 그 후가 사뭇 궁금하다. 그레고르의 여동생 또한 벌레가 돼버릴 것이 아닌가해서이다.

아, 그레고르 잠자여,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말지어다. 등에 박힌 사과 알 만큼이나 '나는 인간이로소이다!'를 외치는 그대의 절규는 이미 불편한 진실이 되고 말았으니, 바이올린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영원히 잠들어지어다. 째깍, 째깍, 째깍…… 벌써 일어날 시간이다.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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