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영 칼럼, 마약같은 반공 향수병

빈 깡통일수록 시끄럽다. 생각이 깊고 가슴이 넓은 자는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음정도 박자도 제대로 짚지 못한 무리들이 마구 불어대는 음악아닌 정치공해의 나팔소리에 귀청이 째질 지경이다.

국민여러분께 필독의 도서 세 권을 권유하고 싶다. 전국의 대형 서점에 나와있을 것이다. 한 권은 1960년 미국에서 사제수품, 한국의 선교사로 파견된 제임스 시노트(James P. Sinott)신부가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에서 한국의 1975년 4월 9일을 어째서 세계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는지의 경위를 서술한 『1975년 9월 4일』(빛두레 2004년 발간)이다.

또 한 권은 소위 인혁당 재건사건이라 하여 마른하늘에 생벼락치듯 여덟명의 지식인들을 지구 밖으로 떠밀어 죽여버린, 헌법을 유린하고 국가권력을 멋대로 휘두른 박정희의 야만적인 행태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 당시 연루되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집, 『1975년 4월』이다.

쿠데타로 세력은 잡았지만 박정희가 신경이 쓰이는 게 앞서가는 양심의 엘리트 집단 언론기관이다. 박정희는 민족일보를 공중분해, 한창 미래의 꿈에 부풀어 있었을 30대의 조용수 사장을 누워서 떡먹듯 쉽게 해치웠다. 간첩 빨갱이라는 도구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절여진 국민정서에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현재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검찰권을 훼손했네 어쨌네 떠들어 대는 족속들(물론 소장파는 논외로 하고)이 납작 엎드려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했을 때, 한 언론학도가 민족일보사건에 의문과 의혹을 갖게 되었다.

끝내 그는 그 사건을 추궁, 진상을 파헤쳤다. 현재 경향신문 전국부 원희복 차장의 조용수 평전이다. 초판이 1995년 발간되었고 2005년 증보판이 발간되었다. 조용수 평전은 이 땅에서 부당하게 죽음을 당한 모든 이들에 대한 해원의 애도사요 정치음모에 대한 언론의 비수이다.

2005년 10월 18일 정오 YTN 뉴스에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양의 기자회견을 바라보며 어째서 나는 근엄하게 앉아 있는 내노라하는 정치권력의 인사들을 마치 1970년대 오지 마을회관에 쪼그리고 앉은 노쇠한 노인들의 초라한 모습으로 보았을까.

반공 이데올로기의 유령들을 불러내고자 발버둥치는 박근혜양이 너무 안스러웠기 때문이다. 필히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이라도 시켜 약물치료라도 받게 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를 하다가 ‘옳지, 그렇구나. 그 애비 박정희의 쿠데타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붕어빵이구나’ 무릎을 탁 쳤다.

그대들이 떠받드는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이 세운 전통을 왜 총칼로 뒤엎었는가. 쿠데타 당시는 대한민국 헌법이 유럽여행이라도 떠났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대들은 침묵을 하였던가.

   

김제영 선생(77)은 서귀포시 신효동 출신으로 현재 충남 조치원에 거주하는 원로 소설가이자 미술칼럼리스트이다. 1946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석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민국일보 문화부기자, 무용한국 편집고문, 음악저널 편집고문, 미술21 편집고문, 미술세계 객원편집인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현재는 아트코리아와 음악저널에서 고정필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소설작품집 '거지발싸개 같은 것'(1981), '라흐마니 노프의 피아노 협주곡'(1990) 등의 저서가 있다.

김제영 선생의 칼럼은 인터넷신문 '청주기별'(http://www.cjgb.net/)에도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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