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3장편영화 '지슬' 오멸 감독, 후반부작업 비용 '소셜펀딩'으로 모금

독립영화의 성공 기준은 모호하다. 누군가는 1만은 넘어야 한다고도 하고, 손익분기점은 넘어야 한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단 한 관이라도 개봉만 된다면 성공이라고 말한다. 국내 독립영화판 사정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제주산 토종 독립영화 두 편이 전국 영화판에 신선한 파동을 일으켰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오멸 (41)감독의 <뽕똘>과 <어이그 저 귓것>.

 500만원과 800만원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뽕똘>과 <어이그 저 귓것>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거듭한데 이어 서울, 수도권 상영관에서 개봉되며 주목을 끌었다. 곧이어 내놨던 <이어도> 역시  호평을 끌어냈다.

 

▲ 오멸 감독(41).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지난해 겨울, 오멸 감독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최초로 4·3사건을 장편영화로 스크린에 옮긴 선배(故 김경률 감독)의 뜻을 이어 ‘끝나지 않은 세월 2’을 만들겠다는 소식을 알렸다.

오멸 감독의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두 번째 이야기’는 4·3 당시 동광리 큰넓궤 동굴로 피해있던 마을주민 수십 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미 고인인 돼 버렸지만 故 김 감독을 총 제작·지휘자로 올려 놓았다. 4.3 영화화와 지역 영화에 대한 고 김 감독의 고민이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당시 예상 제작비는 총 1억 원. 이들은 손에 쥔 돈 없이 “못 먹어도 일단 GO”를 외치며 지난해 12월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뜻을 전해들은 도민들이 조금씩 정성을 보태며 겨우겨우 촬영은 마쳤다.

산넘어 산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니 후반 작업을 할 돈이 없었다. 지난 7월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아시아 영화 발굴 제작 지원프로그램 ‘아시아영화펀드’(ACF)의 후반제작 지원에 선정돼 희망의 빛줄기를 만났지만 영화가 완성되지 않으면 이 역시 소용없는 상황이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더니 방법이 없진 않았다. 때 마침 '온라인 펀딩'이 유행하고 있었던 것. 이들이 진행하는 텀블벅 프로젝트는 결제예약을 걸어놓고 목표금액이 채워져야 실제로 돈이 빠져나가는 후불제 시스템으로 1천원부터 20만원까지 형편대로 후원할 수 있다. 금액에 따라 답례품도 제공된다.

40일 동안 1천만원을 목표로 현재(32일째)까지 모은 금액이 750여만원. 1천만원을 손에 쥐는 것도 중요하지만 1천만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민들의 관심이 이들에겐 절실하다. 행여 공든 탑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는 텀블벅 프로젝트. 종료가 채 열흘도 남기지 않은 가운데 제주시 아라동 간드락소극장에서 오 감독을 만났다.

▲ 오멸 감독.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 영화 작업은 얼마나 진행이 됐나.

"촬영은 이미 끝났다. 10월 3일에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려면 적어도 9월 15일까지는 완성을 해야 한다. 색감 보정하거나 CG작업, 음악 삽입 등이 남아 있는데 돈이 모자라서…. 촬영은 누구나 비슷하게 할 것이다. 후반부 작업이 결국 영화를 결정짓는다."

- 앞으로 영화를 완성하려면 얼마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가.

"얼마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다. 돈을 들인 만큼 작품은 좋아진다. 작품성을 가르는 것은 예산이다. 이번 텀블벅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 음악제작비 정도로 쓰이게 될 것 같다. 다행히 부산국제영화제 후반부지원사업에 선정이 돼서 한시름 놨다."

- 소셜펀딩 ‘텀블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1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제주에서 흔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실은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 채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개인에게 우리 이런 영화 찍는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도움을 받게 된다면 더 좋고. 초반에는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도와줘서 금액이 쉽게 채워졌는데 알만한 사람들 다 하고 나니 좀 주춤해졌다."

- 세 편의 장편 영화가 연이어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이제 이름 좀 알려 먹고 사나 했다. 그런데 4·3을 택했다. ‘끝나지 않은 세월 2’를 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경률이형 막 작업하던 때는 4·3을 영화로 옮기는 시작이어서 관심이 많았지만 실질적인 도움 없이 이뤄졌다. 그때 현실을 깨닫게 됐다. 남들 30억, 50억 가지고 찍는 영화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었고 지금 역시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도 투자를 하지 않을뿐더러 인프라도 없다. 찍어야 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감독이 맡아야 한다. 4.3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아직은 미흡하지만, 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상황 역시 미흡하다. 때문에 경률이형 역시 4.3희생자라고 생각 한다. 영화로 4.3을 겪은 사람이고, 현재도 4.3이 연관이 돼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나. 이제쯤 (내가 영화를 만드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지역의 영화판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라는 걸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경률이형과 작업할 때 서로 방식이 맞지 않아 나는 나왔지만 영화를 찍는 상황을 보면 늘 안타까웠다. 이제와서 내가 찍으려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블록버스터급까지도 원하기도 하더라.  내 이전 영화들처럼 영화로 제주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기는 ‘4.3’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특히 4·3의 경우는 이념적인 것도 얽혀 있고, 제주도민들만 해도 4.3 전문가지 않은가. 여러 가지로 지뢰밭같다. 텀블벅으로 후원금을 모아보고 있지만 역부족이긴 하다. 기대치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제주도에서 작업하는 사람들 중에 나보다 더 여건 안 좋고, 인지도도 낮은 사람들은 더 힘들 것 아닌가. 나도 이렇게 힘든데. 때로는 비겁해지기도 한다."

▲ 오멸 감독(41).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 고 김경률 감독이 만든 '끝나지 않은 세월 I'과 오 감독이 만드는 '끝나지 않은 세월 II'는 무엇이 다른가.
" 내용도 다르고 형식도 다르다. 서울에서 데려온 친구들이 있기도 하다. 경률이형 작업과 우리의 작업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예술을 경쟁처럼 평가를 하는데 경쟁자가 아니라 이 섬에 있는 이야기를 알려보려고 하는 동등한 입장이다."

- ‘끝나지 않은 세월’이 제주에 남긴 의미는 무엇인지.

"경률이형의 작품 50% 성공이라 본다면 50%는 실패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가 우리에겐 고스란히 경험이 됐다. 이게 역사다. 영화라는 장르가 제주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시기에서 형의 작업은 우리에겐 너무나 큰 중요한 자산이 됐다."

- 이번 영화가 김 감독을 껴안기 위한 작업이라고 봐도 되는 것인가.

" 앞에서 말했듯이 경률이형 역시 4·3 희생자다. 예술가들이 4·3에 손을 대면서 거기에 휩싸여버리니까. 아직도 4·3은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작업을 통해 4·3에 희생된 영령들과 조우하는 거다. 그러다가 경률이형이 갔다. 죽는다고 영혼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다 모여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경률이형이 우리의 상황을 더 많이 알고 갔기 때문에 4·3희생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그 가운데 경률이형이 중간역할을 해 주면 어떨까, 그래서 총지휘자에 경률이형 이름을 넣은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감독의 입장에선 제사를 지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영화라는 장르로 제의적 행위가 가능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도 했다. "

- 가제였기는 했지만 초반 제목이었던 ‘꿀꿀꿀’에서 ‘지슬’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네 편의 장편 영화를 찍으면서 사전에 찍는다는 소식을 알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달랐다. 후원이 필요했고, 관심을 모아야 했기에. 미리 관객들에게 ‘이렇다’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사실 영화는 현장 분위기에 따라 써놓은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제목도 마찬가지고. 달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 오멸 감독(41).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 영화에서 ‘지슬’은 어떤 의미로 해석되나.
" 감자는 전세계의 소울푸드다. 어떤 지역이든 감자가 나는 지역에선 생명과도 관련됐다. 제주도에서도 뗄 수 없다. ‘지슬’이 사투리지만 원래는 지실이다. 땅의 열매라는 뜻이다. 우리가 먹는 개념만이 아니라 땅이 내놓는 열매라는 개념이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서 4.3이 희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많은 지역주민이 공포로 떨었지만 영화 안에서는 어떻게든 고통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들에 맞춰보려고 신경을 썼다. 통증을 드러내는 작업은 자제했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면 ‘4.3사건’이 세계에도 알려지는 발판이 되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다.
"애초에 세계에 알리겠다 이런 거창한 목적이 아니고 내 뿌리를 알리는 작업이어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바람처럼 영화라는 장르로 지역의 이야기를 하기엔 힘든 부분이 너무나 많다. 금전적인 부분이 특히 그렇다. 오히려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면 제주에서 지원받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보면 1억씩 대주기도 하지 않나. 내가 4.3을 알리지 못한다면 여기서 포기해야하는 걸까. 혹시 내가 실패한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감히 누가 나서서 할까 싶다. 나 역시도 누가 한다고 해도 말리고 싶다. 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하려면 작업이 가능하게끔 연결해주는 고리가 절실해진다. 돈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돈 때문에 얽매이는 상황이 오면 뜻대로 하기가 참 어렵다."

- 지역에서 영화하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이었나.
"내가 운이 좋아 상을 몇 번 받았다. 영화가 잘 되니 사람들이 지역의 여건이 바뀐 줄 안다. 육지 사람들은 가끔 내가 부럽다고들 한다. 영화하는 것 자체에 꺼풀이 씌워지면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여건과 상황 안에서 경률이형이 작업을 해왔고, 우리도 마찬가지 상황에서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오멸이 1천만원 지원받아 상을 받아왔으니 너희들에게도 1천만원' 줄게 이렇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영화라는 건 투자에  따라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장르인데 틀에 맞춰서 하라고 할까봐."

- 이전에 두 작품은 영화사에 선택받아 개봉까지 이어졌다. ‘지슬’ 역시 개봉이 될까.
"보통 개봉하는 데 마케팅 비용이 10억이 든다. 영화를 만드는 데 든 비용이 1억인데 개봉에 쓸 돈이 있을까. 다만 영화의 질을 높여 영화가 개봉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딪혀봐야 알겠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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