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현길언 작가 장편소설 '낯선 숲으로 난 길' 발간
일흔을 넘긴 노교수. 그가 끄집어낸 유년의 조각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꽂힌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삶의 모양새가 있다고 넌지시 말을 건넨다.
<전쟁놀이>,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못자국> 등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제주 4·3사건, 6·25전쟁까지 3부작 청소년 소설로 훑었던 현길언(72) 작가가 이번엔 장편소설 <낯선 숲으로 난 길>로 유년의 기억을 세상 밖으로 꺼냈다.
6·25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작은할아버지인 세철이 남긴 기록을 손자인 재범이 읽으면서 시작된다. 집안의 막내로 자라 자기밖에 모르고 지기 싫어하던 열다섯 살 세철의 모습을 뒤바꿔 놓은 네 계절, 1년이라는 시간이 담겼다.
‘사랑과 이별, 흔들림, 그리고 상실. 삶의 부침이 만들어낸 여러 만남을 통해 더 큰 사랑을 배우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는, 언뜻 평범한 이 플롯은 6·25전쟁이라는 비극 가운데 놓이면서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띠게 된다. 겪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시대’의 결이 세철의 눈을 따라 오늘에 닿는다.
손자인 재범의 눈에 비친 작은할아버지 세철은 ‘서울 할아버지’ 혹은 ‘교수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할아버지 역시 재범이 자신의 손자로 입적할 것을 알면서도 살갑게 대해준 적이 없었다. 목사로, 선교사로, 또 교수로 봉사하는 삶을 사신 할아버지는 재범에겐 그저 먼 존재였다. 그런 할아버지에게도 나와 다르지 않은 청소년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재범은 할아버지와 마음의 거리를 바투 좁혀가게 된다.
줄곧 제주를 문학에 녹여내는 데 시간을 쏟았던 현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도 이 둘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또한 제주 사회에서 기독교가 어떤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있는지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책 말미에 덧붙은 '작가의 말'은 책뿐만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맡는다.
현 작가는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출신으로 제주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1980년 소설가로 등단해 제주도 민간설화를 재구성한 소설 ‘용마의 꿈’ 등 많은 단편과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자음과모음.255쪽.1만1천원.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