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막가파 해법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증권의 파산. 그로부터 정확히 만 4년이 지난 올해 9월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6일부터 18일까지 유럽중앙은행(ECB), 미국 연준(Fed) 및 일본중앙은행은 각각 일주일 간격을 두고 대대적인 채권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유럽과 미국이 그 매입규모와 관련 "무제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장 개입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에 대해 유럽중앙은행의 경우는 스페인 등 여러 나라 국채들의 시장가격이 정상을 되찾아 이들의 신규 채권발행 금리가 안정적인 수준으로 될 때까지라고 했고, 미국의 경우는 실업률이 낮아 질 때까지라고 못 박았다.

주택모기지 담보부 증권을 매달 400억달러씩 시장에서 매입을 하면 그 파급효과가 고용시장에 까지 미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유럽 내 구제금융을 취급할 유럽안정기금(ESM)에 독일이 출자하는 것에 대해 야당에 제기했던 위헌소송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시장에 돈을 푸는 것을 막을 장애는 거의 없어졌다.

정부가 돈을 풀겠다는데 일단 누가 싫어하겠는가? 주식, 부동산, 상품 등 자산가격이 오를 것이므로 이들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는 호재임에 틀림없다. 거의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독일 연방은행의 젊은 총재 옌스 바이드만이었다.

그는 인쇄기로 돈을 찍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원론적으로 반대하면서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나오는 한 장면, 즉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종이돈을 발행하는 묘안을 가르쳐 주고 황제가 돈을 사방에 뿌리자 모든 이들이 즐거워하는 이야기를 언급하며 간접적으로 유럽중앙은행의 결정을 '악마의 수작'으로 비유했다.

ECB 결정을 '악마의 수작'에 비유

이제 유럽과 미국의 금융위기 해법은 갈 데까지 갔다. 중앙은행들은 위기해법의 다음 단계를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줄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은행과는 달리 정치에서의 해법은 의례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여기에 정치의 존재가치가 있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유럽과 미국에서 정치적 해법을 필요로 하는 항목들을 몇 가지 요약해 보았다.

첫째,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국가간 집합체에서 금융감독을 통합해 담당할 기구 창설은 당연하다. 각국 입장에서는 통화금융정책 등 주권 일부를 양도해야 하는데 이를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이런 장치가 없는 금융지원은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와 다를 바 없다.

둘째, 그리스 등에 대한 구제금융 수혜국에 요구되고 있는 조건들이 그 강도와 시기 면에서 과연 현실적인가라는 의문이다. 프랑스가 쟝 마르끄 에로 수상의 입을 통해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그리스 정부와 국민의 개혁의지가 분명하기만 하다면 구조조정 이행 시한을 2년 정도 연장해주자고 제안했다.

독일 등이 자기들이 제시하는 조건의 비현실성을 알면서도 자국의 여론에 떠밀려 강경일변도의 요구를 해대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의 정치적 나약함을 내보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미국의 경우 소위 재정 낭떠러지가 연말로 다가오는데도 의회 합의가 대선 후로 미루어지고 있다. 대선 후에도 민주 공화 양당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경우 연방예산은 강제적으로 전 항목 균등 자동삭감 당하게 된다.

끝으로 하버드 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의 지적을 들어 보자. 1933년 글래스 스티걸 법은 총 37페이지였음에도 불구하고 70년 동안 미국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담보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2010년의 월 스트리트 개혁법은 그 자체로 848 페이지이며 거기에 각 관련 부처가 마련할 시행규칙을 더하면 무려 3만 페이지에 달하게 된다. 이런 법률이 제대로 집행될까를 그는 묻는다.

정치로 넘어간 공

월 스트리트 개혁법의 핵심 중의 하나인 볼커 룰도 의회 청문회 등 온갖 절차를 장기간 거쳐오면서 당초 볼커 전 연준의장의 소박한 아이디어가 수백 페이지에 걸친 난해한 법률용어들에 몰입되면서 물타기를 당하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모임인 지난달의 잭슨 홀 회동에서도 영국중앙은행의 금융안정 담당 집행이사 앤디 할데인은 은행감독규정 문장의 단순화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물론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중앙은행들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많은 부분 앞으로 각국 의회의 몫으로 남는다.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인 재정 및 금융 위기는 아직 반환점을 돌지 못한 것 같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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