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연대, 부산형무소 터에서 57년만에 4.3영령 '진혼'
"매일 30여명 끌어가 총살"…순례단 '4.3해결 건의문' 채택

   
"부산형무소는 도살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매일 죽음의 행렬을 지켜보고, 자신의 차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고봉원 할아버지는 부산형무소터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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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무소에서 살아남은 고봉원.고윤섭 할아버지가 추념하고 있다.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가 순례 이틀째인 30일 부산시 남구 대신동에 있던 '부산형무소 터'를 찾았다.

삼익아파트단지로 변해 버린 부산형무소터에서 57년만에 처음으로 부산형무소와 마산형무소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4.3 희생자 67명에 대한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진혼제'를 치렀다.

김종혁 도민연대 운영위원이 '초혼', 윤춘광 공동대표가 '고유문'을 , 김평담 공동대표가 '주제사'를 했다.

김두연 4.3유족회장은 '추도사'에서 "지독한 형극의 세월을 살아온 이제 환갑이 넘은 후손들이 님들이 옥고를 치렀던 형무소 옛터를 찾아 제물진설하고 삼가 재배한다"며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4.3의 완전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번 순례에서 부산형무서에 수형생활을 했던 희생자는 고봉원(79).고윤섭(79).고성화(90) 할아버지 등 3명.

   
특히 고봉원.고윤섭 할아버지는 부산형무소에서 마산형무소와 진주형무소로 이감돼 이번 4.3 유적지 순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고봉원 할아버지는 이제는 아파트단지로 변해버린 부산형무소 수감생활을 증언했다.

   
고 할아버지는 "군사재판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형무소로 이감됐을 때 당시 형무소에서 수감중이던 수형인들은 제주도에서 사상범들이 들어왔다고 말을 했었다"며 "전쟁이 계속 불리하게 진행되면서 매일 30여명의 사람들이 한밤중에 끌려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고 할아버지는 "당시 저는 28방에 있었는데 전날 27방까지 트럭으로 끌려가 '오늘 죽겠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끌고 가지 않아 기적적으로 살았다"며 "형무소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이승만 박사가 더 이상 처형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목숨을 건진 사연을 설명했다.

담담하게 증언하던 고 할아버지는 "당시 부산형무소는 도살장이나 다름없었다"며 "죽음을 피하고 살아남은 나에게 먼저 가신 님들을 생각하면…".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며 더 이상 얘기를 하지 못했다.

1949년 불법 군법회의로 대구형무소에 갔던 제주출신 수형자는 모두 300명. 이들은 부산형무소로 이감되고, 이감 후 대부분 '총살'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 할아버지의 증언으로는 150여명이 살아남아 마산형무소로 이감됐고, 마산형무소에서 살아남은 제주출신 수형자는 41명이다.

진혼제를 마친 순례단은 '완전한 4.3 해결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순례단 일동의 명의로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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