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수상한 <지슬>의 오멸 감독과 영화 관계자들이 20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멸 감독이 <지슬> 4관왕 수상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멸 감독이 <지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BIFF 4관왕 '지슬' 오멸 감독 "제주에서부터 시작해 4.3 토론 이끌고 싶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수상한 <지슬>의 오멸 감독과 영화 관계자들이 20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지슬>이 4관왕을 받은 건 우리 힘이 아니라 4.3영령들이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오멸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을 ‘귀신’ 덕분이라 했다. 20일 오후2시 제주시 아라동 간드락소극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오멸 감독을 비롯해 고혁진 프로듀서, 양정원(용필 역), 김동호(순덕 아방 역), 문석범(원식이 삼촌 역) 등 세 주연배우가 둘러앉았다.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끝나지 않은 세월II-지슬>은 지난 13일 막을 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감독상, CGV무비꼴라쥬상 등 4관왕을 휩쓸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기록을 남겼다.

먼저 세 주연 배우가 한 마디씩 소감을 털어놨다. 양정원 씨와 문석범 씨는 몇 차례 오멸 감독과 작품을 같이 하면서 얼굴을 알려왔지만 김동호 씨는 카센터를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말 그대로 동네 삼촌인 셈이다.

<지슬>은 4·3당시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동굴로 피해있던 마을 주민 수십 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제목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를 뜻한다. 영화는 잔혹하고 처참했던 4.3의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당시 상황을 마을 주민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냈다. 때로는 웃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흑백 화면으로 더듬은 당시의 기억은 가슴 가까이 훑고 들어온다.

BIFF 개막 전 오멸 감독은 “매 맞으러 간다”고 했을 정도로 부담감이 상당했다. 제주도민 모두가 4.3전문가인 상황에 혹여 영화로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가능성은 확인받은 셈이다. 이제 남은 건 상영관 ‘개봉’을 통한 전국민적 공감대 확산이다.
 
이 영화에는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4.3을 처음으로 필름에 옮겼던 故가 김경률 감독의 뜻을 잇기 위해서다. 가진 것 없이 일부터 벌였다. 10개월에 걸친 제작 기간 번번이 ‘예산’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때로는 중단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번 영화제에 올릴 수 있었던 것 도민들의 관심과 소셜펀딩을 통한 후원 덕분이다. 때문에 ‘도민이 만든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 오멸 감독이 <지슬> 4관왕 수상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고마운 마음 한 편에 눌러뒀던 서운함을 드러냈다. 수상 소감에서도 제주도가 아닌 제주 섬이라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행정에 대한 아쉬움. 그동안 오 감독은 네 편의 장편을 통해 제주의 문화를, 제주인들의 삶을 다뤄왔다. 그러나 오히려 육지부 로케이션 프로젝트에 비해 지원금이 훨씬 적었다고 했다.

오 감독은 “이번 BIFF를 통해 이미 몇몇 배급사에서 개봉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서울 상영은 지금이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에 수상한 CGV 무비꼴라쥬는 3000만원 상당의 배급·마케팅 등을 지원하고 무비꼴라쥬 전용관에서 최소 2주간의 상영하는 부상이 뒤따른다. 그러나 제주에 먼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러한 제안을 몽땅 미뤄뒀다. 제주인으로서의 자존심이자 고집이다.

이어 오 감독은 지역 영화 개봉시스템을 지적했다. “현재 지역에는 개봉할 수 있는 극장도 없고 개봉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건 영상문화예술센터인데 매표 시스템이 없다. 센터에서는 한 편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을 갖출 수는 없다고 하더라. 가능성이 있는 영화가 나왔으니 이제라도 시작했으면 어떨까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주 관객들 입에 오르고 토론이 시작이 돼야 대한민국 전체로 퍼질 수 있는 촉발제가 될 것이다. 영화 본 사람에게는 그런 반응들이 나왔다. 제주에서 시작을 해서 서울로 인천으로 퍼져나가면 또 거기서 외부까지 나갈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故 김경률 감독이 <끝나지 않은 세월>을 들고 서울을 다니며 고군분투하던 때와 달라진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제는 개봉 하자며 먼저 손을 내밀고 있는 현실. 프랑스의 한 제작자는 지원금을 댈 테니 다음 작업을 같이하자고 제안한 상태라고 밝혔다.

 

▲ 오멸 감독이 <지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지슬>은 당초에 내년 4.3기간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다. BIFF 아시아영화펀드(ACF) 장편독립영화 후반작업 지원펀드 부문에 선정되면서 상영 시기가 바투 당겨졌다.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잘된 일이지만 첫 선을 제주도민에게 보여주지 못한 건 못내 아쉬운 듯 했다.

오 감독은 영화제 반응 등 뒷 이야기도 전했다. 영화 상영 후 GV(Guest Visit)에서 들었던 관객들의 질문은 4.3이 지닌 과제를 실감케 했다.

오 감독은 “4.3에 대해 아직도 몰랐다는 반응도 더러 있었고 외국인들 반응도 흥미로웠다. 제주도도 다녀왔고 4.3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왜 모르냐는 질문들을 했다”며 “아직 제주에선 4.3이 현재진행중이라고 하나 밖에선 묻혀버릴 수 있는 역사”라고 말했다.

오 감독은 네 개의 상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상으로 ‘시민평론가상’을 꼽았다. “시민들이 주는 상이이어서 의미가 남달랐다. 가장 냉정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BIFF웹진에 올라온 시민 평론도 열심히 챙겨 읽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영화가 4관왕을 이룬 건 우리 힘이 아니다. 그만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라며 “이 영화를 통해 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많이 했다. 영화 찍는 동안에도 귀신들이 도와준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쟁쟁한 영화들 사이에서 잘 되니 4.3 영령들이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기에 우리를 도와주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들은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제주 개봉을 이끌 수 있도록 배급서포터즈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지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제주에서 만들어질 영화들을 보여줄 창구를 틔우기 위해서다.

오 감독은 “주변 영화 도와준 분들을 기반으로 서포터즈를 꾸리려고 한다. 큰 극장도 의미가 있겠지만 300여명 개개인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이분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찾아보고자 한다. 어떤 방식으로 개봉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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