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 작가가 발간한 <설문대 할망, 어떵 옵데가?> 도서출판 각. 278쪽. 1만5천원. ⓒ제주의소리

치마 폭에 흙을 날라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설문대 할망. 이때 치마 자락에서 흘린 흙들이 오름이 됐다고 해서 ‘창조의 신’이라 불린다.
 
한라산 백록담 위에 걸터앉아 빨래를 했을 만큼 거신(巨神)이었다고 전해지는 그녀는 거대한 체구 만큼이나 왕성한 출산력을 자랑해 오백장군을 낳은 제주 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수천 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제주 섬 창세 신화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 밖을 나섰다. 제주출신 이성준(51) 작가의 입을 통해서다.

▲ 이성준 작가가 발간한 <설문대 할망, 어떵 옵데가?> 도서출판 각. 278쪽. 1만5천원. ⓒ제주의소리

제줏말로 쓴 창작본풀이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가 최근 발간됐다.

이 책에선 널리 알려진 신화의 틀을 벗어나 설문대 할망의 인간적인 고뇌를 본풀이의 형식을 빌려 풀어낸다. 자신이 겪었던 제주 섬에서의 일과 제주 사람들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수천 년을 말과 글에 갇혀 살던 그녀가 손자와 대화를 나누듯 툭 툭 말을 뱉는다. 

이 작가가 이번 책을 발간하기 까지는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오히려 그는 “30년 가까이 그의 가슴에 얽혀있던 설문대 할망”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 어디선가 얻어들은 설문대 할망 이야기는 그의 가슴에 들어앉아 똬리를 틀었다. 잊힐 듯 잊히지 않고 어슴푸레 그의 가슴을 맴돌았지만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박사논문을 ‘설문대할망’에 대해 쓰면서 설문대 할망과 연이 닿았다.

설문대 할망의 이야기엔 신인(神人)으로서의 품격과 능력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의 고난과 팍팍한 환경을 애처롭게 여기며 인간들을 아끼고 사랑한 어머니의 모습이 담겼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본풀이는 제주어로 쓰여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붙들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표준어 해설도 덧붙었다.

시인이자 설화연구가인 박희순 씨는 해설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오래된 미래’를 펼쳐 보이고 있다. 제주인의 자긍심과 자존 위에 꿈꾸는 미래는 현실이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과 희망을 노래한다. 이 본풀이를 계기로 박제화되어가는 신화들이 하나씩 생명의 꽃을 피워나가리라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저자 이성준 작가는 제주 조천 출신이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힘든 삶을 글로 그려내고자 국어국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저서로는 <억새의 노래>, <못난 아비의 노래>, <나를 위한 연가>와 소설집 <달의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 출판기념회는 9일 금요일 오후 6시 제주시 중앙로 도서출판 각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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